인도 수출 금지로 다시 불거진 식량 우려…"문제는 생산량 아닌 물류"

호주, 풍작에도 수출 시설 미비…"시장 공황 바로 잡아야"

인도가 밀 수출을 금지하면서 식량난에 대한 세계적 우려가 커지자 인도 정부는 당장 밀 부족에 직면한 이집트 등에는 공급을 끊지 않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호주산 밀 등 다른 대안이 거론되지만 물류 시설 부족으로 당장 수출량을 늘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세계 전체로 보면 올해 밀 생산량이 바닥을 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때문에 패닉에 빠져 수출을 금지하거나 금융시장에서 가격을 올리며 식량 부족국에 더 큰 부담을 주기 보다, 창고 부족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외 지역에서 밀 수입이 힘든 북아프리카 지역의 물류 개선에 도움을 주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3일(현지시각) 밤 밀의 국제가격 상승 및 식량 안보를 이유로 밀 수출을 금지한 인도는 밀 수출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아니라며 식량난에 대한 국제적 우려를 불식시키려 애썼다. 15일 인도 정부는 이미 취소불능 신용장이 개설된 나라들과 "식량 안보를 위해 밀 공급을 필요로 하는 나라들의 요구는 충족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최대 밀 수입국이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대한 밀 수입 의존도가 85%에 달하는 이집트 정부는 이날 인도에서 밀 50만톤을 수입하기로 했다고 <로이터> 통신에 밝혔다. 알리 모셀리 인도 국내물자거래·공급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인도 정부와 대화 중이며, 이집트 정부를 포함한 몇몇 정부에 수출 금지가 면제됐다"고 밝혔다.

세계 2위 밀 생산국인 인도는 세계 밀 수출의 거의 3분의1을 담당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가중된 식량난에 구원투수 역할을 해 왔다. 2020년 기준 인도는 세계 밀 수출의 0.5% 가량만을 차지했지만, 지난 3월 마감된 2021~2022년 회계연도에 전년 대비 250% 가량 물량을 늘린 700만톤을 수출로 내놨다. 인도는 2022~2023 회계연도에는 밀 1000만톤 수출 목표를 내걸며 4월 한 달 수출물량만 140만톤에 달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인도가 자국 14억 인구를 위한 "충분한 식량"을 비축하고 있으며 "전세계에 식량을 공급할 준비가 돼 있다"며 안도감을 주기도 했다.

인도가 당장 식량난에 직면한 국가들에게는 수출의 문을 열어 놓겠다고 했지만, 인도의 수출 금지 발표로 추가 충격을 받으며 밀 가격이 들썩이며 이미 높은 곡물가에 신음하는 나라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전망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밀 선물 가격은 15일 장중 한 때 5.9%나 뛰어 올랐다.

G7 농업장관들은 14일 인도의 결정을 규탄했다. 젬 외즈데미르 독일 농업장관은 "모두가 수출을 제한하고 시장을 닫기 시작하면 위기가 심화될 것"이라며 "인도가 G20 회원국으로서 책임있는 자세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서방, 패닉 빠져 곡물값 올리지 말고 운송 고민을"

인도가 밀 수출을 금지하면서 세계 밀 수출의 6% 가량을 담당하고 있는 호주에 관심이 쏠린다. 남반구에 위치한 호주는 지난해 북반구를 덮친 가뭄의 영향을 피해간 생산지로, 올해 미국의 밀 생산량이 10% 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정되고 지난해 캐나다의 밀 생산량이 38%나 감소한 데 비해 작황이 양호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호주 곡물 거래상인 휴이트는 <알자지라>에 "높은 비료값과 연료비에도 불구하고 밀 가격이 오름에 따라 호주와 다른 나라의 재배지가 늘어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부족분을 메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물류 시설 미비로 호주가 당장 밀 부족분을 메워줄 수는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호주 농업종사자 대표 단체인 그래인그로워스 회장인 브렛 호스킹은 지난주 <알자지라>에 "우리에겐 흑해 지역 수출 부족분을 메울만한 수출 관련 시설이 없다. 호주는 홍수와 가뭄의 땅이다. 투자자들은 지난해 작황이 좋았다고 해도 몇 년 안에 다시 가뭄이 올 것으로 봐 도로나 철도 등 추가 물류 시설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새 항만 시설을 건설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산 밀 수출 비중이 95%에 달하는 레바논 등 이 지역 곡물 의존도가 높은 북아프리카 국가들의 식량난에 대한 우려가 높지만, 이는 공급량 자체보다 물류와 비용 문제라는 주장도 나온다. 독립 작물 자문가 사라 태이버는 <포린폴리시>에 우크라이나를 제외한 지역에서 밀 생산량을 늘림에 따라 올해 밀 생산량 자체는 소비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북아프리카 지역의 식량난의 핵심은 오히려 저장고 및 항만처리 시설 등의 미비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등 흑해 지역에서 이 지역으로 밀이 운송되는 데는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지만 인도에서 오는 데는 2주, 호주에서 오는 데는 한 달 가량 걸릴 수 있는데, 이들 나라들은 불안한 국내 정세 등으로 저장고가 많이 파괴된 상태라 가까운 지역에서의 수입 의존도가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레바논의 경우 2020년 베이루트 항구 폭발로 가장 큰 곡물 저장고를 잃었고 예멘과 시리아 역시 계속되는 내전으로 많은 저장고와 운송 시설이 파괴됐다.

태이버는 또 서방이 곡물 재고와 수확 예측을 정확히 하지 않은 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뒤 무턱대고 곡물을 비축하며 곡물값을 올렸다고 비난했다. 곡물값이 오르면 가난한 밀 수입국의 고통이 가중되는 것은 물론이다. 태이버는 "부유한 국가는 1972년 이후 밀 부족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며 "밀 부족은 많은 부분 투자자들의 상상 속에서 존재"하고 그들은 실제 상황에 대해 누구와 이야기해야 할 지도 모른채 패닉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서방이 인도주의적 계획에 운송 수단을 포함해야 하며, 종종 잘못된 정보에 따라 행동하는 시장 공황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도 구르다르푸르에서 봉지에 밀을 포장하는 노동자. 2014년 4월 사진.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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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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