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계급 투표'의 재구성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대선이 끝난 뒤 아파트값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윤석열 후보의 당선으로 부동산 규제 완화 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서울의 아파트값 하락세가 둔화하는 추세다. 강남구와 서초구는 아파트값이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다고 한다.

이런 뉴스를 접하면서 여러 의문이 밀려온다. 첫째, 20대 대선 결과를 두고 대다수 언론이 "집값 급등에 화난 민심이 문재인 정권을 심판했다"고 분석했는데 다시 집값이 들썩이는 현상은 무엇인가? 둘째, 문재인 정부에서의 집값 폭등을 그처럼 격렬히 성토했던 언론들이 대선 이후 부동산 가격 인상 조짐에 대해서는 왜 우려보다는 환영 일색일까? 셋째, 서울의 경우 강남, 서초구 등 아파트값이 비싼 지역일수록 윤석열 당선인의 득표율이 높았는데, 그런 지역의 아파트값부터 상승세로 돌아선 것은 어떤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까?

이번 대선의 승패를 가른 곳은 서울이었다. 강남, 서초, 송파, 용산, 성동, 양천구 등 아파트값이 높은 곳에서는 대부분 윤석열 후보가 승리했다. 반면에 강북구, 금천구 등 아파트 가격이 낮은 곳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앞섰다. 아파트값 상위 5위와 하위 5위 지역의 윤석열 당선인 지지율이 정확히 일치했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결국 아파트값이 높은 서울 중심 지역 유권자들의 윤석열 후보 지지가 아파트값이 낮은 변두리 지역 유권자들의 이재명 후보 지지를 압도하면서 국민의힘은 최대 승부처인 서울에서 민주당을 제쳤다.

그렇다면 '집값 폭등에 대한 불만'이 선거 결과에 깃든 민심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확한 분석인가. "내 집 마련의 꿈이 멀어진 20대와 30대 상당수가 지지 정당을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바꿨다"는 분석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오히려 고가의 아파트 자산을 소유한 유권자들의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와 '세금 혐오'가 더 위력을 발휘한 것이 아닐까. '내가 소유한 아파트의 자산 가치가 높아진 것은 환영하지만, 세금은 내기 싫다. 그리고 앞으로 아파트값이 떨어지는 것은 더욱 싫다.' 이런 심리가 결국 투표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유권자들의 기대와 희망에 부응이라도 하듯 강남구와 서초구를 필두로 아파트값이 오름세로 돌아선 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부동산값 급등을 융단폭격했던 대다수 언론이 대선 이후 부동산 가격 인상 조짐을 긍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은 우리 언론의 이율배반적 보도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윤석열 시대-화색 도는 부동산 시장" "재건축·재개발 봄바람" "재건축 완화와 집값 상승에 기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꼼꼼히 분석한 것처럼, 대다수 언론은 최근의 집값 인상 동향에 대해 긍정 일색으로 보도하고 있다. 집값이 오를 조짐에 오히려 박수를 치며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언론의 태도 역시 선거 결과 분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이번 대선 결과는 부동산, 더 구체적으로는 '아파트'의 소유 여부와 가격의 높낮이가 '정치적 선택'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 상관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과 연구 필요성을 제기한다. 지역·이념·세대 등 기존의 사회적 요인에 덧붙여 '소득과 자산' 등 경제적 요인도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치는 쪽으로 한국 정치 지형은 변하고 있다. 게다가 이번 대선 결과를 보면 한때 완화 조짐을 보였던 지역·이념·세대 등 이른바 '핵심 균열'도 다시 과거회귀형으로 돌아갔다. 선거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소득과 자산에 기반한 '계급 투표'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 결과는 우리나라 선거에서는 소득보다는 오히려 자산이 정치적 선택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확연히 보여준다. 19대 대선 투표 결과를 분석한 한 논문(이지은·강원택)을 보면, 가장 보수적인 집단은 '고자산-저소득' 집단이었고, 가장 진보적인 집단은 '저자산-고소득' 집단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 자산의 대부분은 아파트 등 부동산이다. 무주택자에 비해 유주택자의 정치적 성향이 1.15배 더 보수적이라는 연구 결과(김대환·김보경)도 있다. 소득만으로 보면 '계급 배반' 투표 행태가 나타나지만, 자산을 중심으로 분석하면 대체로 '계급 정합' 투표의 특성이 나타난다는 것이 그동안의 대체적 연구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의 보도 방향은 정치적 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부동산 세금 폭탄론'은 이번 대선에서도 아낌없는 파괴력을 발휘했다. 대다수 언론의 이중잣대도 빼놓을 수 없다. 자신들이 싫어하는 정권 아래서 일어난 집값 폭등은 융단폭격의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자신들이 응원하는 정권의 집값 인상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언론 환경에서 과연 유권자들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국민의힘은 이런 언론의 응원까지 힘입어 선거에서 날개를 단 반면에 민주당은 집 없는 사람들의 지지를 충분히 결집하는 데 실패한 것이 이번 대선 결과의 한 측면이다.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비상식적으로 높은 아파트 가격을 낮추고 집 없는 사람들에게 안정적인 주거권을 보장할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윤 당선인은 재건축·재개발 기준 완화와 용적률 상향을 통한 공급 확대, 유주택자의 세금 부담 경감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동안의 경험을 돌아보면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는 집값 안정보다는 집값 급등을 이끄는 견인차였다. 그리고 그런 조짐은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집값 폭등에 대한 불만의 표를 던진 무자산 유권자들은 과연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일까. 오히려 내 집 마련의 꿈은 더 멀어져 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집값 폭등으로 이미 이득을 본 고가 아파트 소유자들에게는 더 살맛 나는 세상이 오는 게 아닐까. 부동산 부자들이 집 소유를 늘릴 기회와 공간이 넓어지고 자산 가치도 더 높아지는 세상 말이다. '아파트 계급 투표'가 빚어낸 물구나무선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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