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간 격차, 지역 회복력이 우선돼야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성장과 포용, 환경을 동시에 고려해야

1. 전 세계적 의제로 등장한 지역 간 격차

2016년 12월 17일자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일국 내 지역 간 격차의 위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섬뜩하게 지적한 바가 있다. "주류경제학이 지역 간 불평등 문제에 대해 대답을 하고 있지 않으며", "경제학자들이 대답을 제공할 수 없다면 포퓰리스트 반군이 할 것이다."

이후 2018년 지역 정책에 몹시 비판적이었던 오스틴, 글래셔, 서머스 등과 같은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자들도 장소 기반의 지역 정책을 제안하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일국 내 지역 격차 이슈와는 거의 관계가 없을 것으로 기대되는 IMF가 2019년 10월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 보고서 2장에서 선진국의 지역 간 격차를 진지하게 다루었다. 그리고 그 이후 일련의 논문과 보고서를 내놓았다.

무슨 일로 지역 간 격차 문제에 사실상 백안시하던 언론, 학자, 기관이 이 문제에 대한 정치한 분석을 수행하고 정책 처방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선진국에서 1990년대 이후 지난 30여년 간 지역 간 소득격차가 심화되고 있으며, 특히 미국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역 간 경제적 격차가 더 확대되고 있으며, 이러한 지역 간 격차가 정치적 포퓰리즘(populism)과 연결되어 민주적 질서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 2016년 미국 대선, 2016년 오스트리아 대선, 2017년 프랑스 대선, 2017년 독일 총선 등에서 지역 간 불평등 양상이 포퓰리즘을 지지하는 투표 행태로 이어졌다.

IMF 분석에 따르면 선진국 가계의 소득 불평등에서 지역 요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5% 내외이다. 따라서 선진국의 지역 문제에서는 소득의 지역 간 격차도 중시되지만, 삶의 질 및 괜찮은 일자리의 지역 간 격차가 더 강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역 간 격차의 의제는 노무현 정부 시기 강력하게 제기되었다가 그 이후로는 다소 잠잠해졌다. 이는 개인 간 불평등에 비해 세간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2019년 수도권 인구가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서면서, 비수도권이 공동화되는 지방소멸의 위험이 가시권 안에 들어오면서 다시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 중에 86개 본사가 수도권에 위치하고 공장은 주로 비수도권에 있는 이른바 '구상과 실행의 공간적 분업'이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두드러진다. 이는 비수도권에서는 화이트칼라 직종과 같이 미래 전망이 있는 일자리 기회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함의한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지방대의 신입생 정원 미달 사태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저출산 고령화로 기존 농산어촌의 낙후지역이 사실상 지방소멸의 길로 가고 있는 것과 동시에 부울경과 같은 기존의 산업지역이 경제적으로 쇠퇴하여 소위 한국판 러스트벨트(rust belt)가 나타날 소지가 있다. 2010년대 이후 기존 낙후지역의 주변화와 비수도권 산업도시의 경제적 쇠퇴라는 이중의 지역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2. 지역 간 격차가 일으키는 문제

지역 간 격차의 심화는 사회경제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첫째는 형평성 문제이다. 이는 소득 불평등 및 기회의 불평등과 연관되어 있다.

하버드대학의 기회의 형평성 연구(Equality of Opportunity Project) 결과는 미국에서 소득 분배의 하위 20%에 속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어린애는 디트로이트의 비슷한 어린애보다 성인으로서 상위 20%에 속할 확률이 두 배나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어디에서 태어난 것인가가 소득격차와 기회의 창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경제적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 저성장지역의 제한된 기회가 지역 잠재력의 저활용을 낳고, 이는 전체 경제성장을 제약할 수 있다. 이에 대해 EU는 장소 기반의 스마트 전문화 전략을 제시하며 각 지역이 가진 역량의 함양과 발굴을 강조하고 있다.

셋째는 사회적 긴장과 병리를 일으킬 수 있다. 이는 진영 논리에 입각한 정치적 양극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2010년대 중반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는 대도시 엘리트에 대한 지리적 불만(discontent)과 포퓰리즘이 나타나 기존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3. 현 정부가 놓치고 있는 지역 정책의 방향

지역 정책을 적극적으로 입안하고 시행한 정부는 참여정부이다. 그 후에 집권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각각 5+2 광역경제권과 지역행복생활권 구상을 내세웠다. 현 정부는 '지역이 강한 나라, 균형 잡힌 대한민국'의 비전을 제시하고 사람, 공간, 산업을 중심으로 '지역 주도의 자립적 성장기반'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고용률 격차의 감소 등 일부 부문에서 소기의 성과도 있었지만, 주지하는 바와 같이, 생산과 분배소득의 지역 간 격차 확대, 비수도권 대학의 미충원 증가 등과 같은 비수도권 서비스 접근성의 질적 수준이 미흡한 점, 청년층의 인구 이동으로 인한 수도권 인구집중 가속화 등에 따라 수도권 집중 반전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지역 정책은 어떤 공간적 단위에서 어느 정도의 공간적 정주 여건을 갖추어 주는가가 핵심이다. 정주 여건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이번 대선에서 광주 지역에서 '복합쇼핑몰 유치' 문제가 나타난 것은 이를 보여준다.

현 정부의 균형 정책에서는 균형 정책의 공간적 단위가 명확하지 않았다. 공간 규모와 관계없이 모든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부문정책과 다를 바가 없다. 사람, 공간, 산업은 부문 정책을 지역별로 분류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각종 부문 정책이 지역 내에서 통합적으로 연계 조정되어야 지역 정책의 효과가 배가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한 제도적 개혁이나 조치는 단행된 것이 없다.

또한, 부울경 같은 초광역 경제권 논의도 중앙정부 차원에서 제안한 것이 아니라 지자체 수준에서 자율적으로 나온 것이고, 정권 말기에 들어서 이를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토건 위주 지역의 숙원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를 회피하거나 지역 뉴딜사업으로 포함된 것이 사실이다. 지역의 장기 비전과 부합되지 않는 토건 위주의 개발사업은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담보하지 못하고 경제적 효율성을 제고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개발사업이 특히 지역의 소수 이해관계자에 의해 좌지우지되면 부정부패와 도덕적 해이가 만연할 수가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EU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정책설계에 참여하여 지역 전략을 공유하고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평가하는 장소 기반 정책을 시행할 것을 권고한다.

현재의 지역 정책은 인구문제(지방소멸), 디지털 전환, 에너지 전환 등 대전환의 시대적 화두와 긴밀하게 연계가 되어 있지 않다. 인구문제는 지역 차원에서도 지방소멸 문제로 인식되어 초미의 관심사이지만, 디지털과 에너지 전환 문제는 부문 정책으로 다루어져 지역정책과는 접점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과소인구 문제로 씨름하는 농산어촌의 경우 로컬 푸드, 지역협동조합, 지역화폐 등 사회적 경제 부문의 확대 등 비시장적인 지역 내 순환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리적으로 상이한 경험기반 숙련을 가지는 지역특산물을 발굴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가 있다.

단지 효율성을 내건 소규모 농산어촌형 지자체의 통합과 폐지를 통한 인구감소지역의 압축 도시화는 과소 농산어촌을 방기하겠다는 것이어서 반발이 심할 수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주민의 이동성을 전제로 한 지역재생은 쉽지 않으며, 장소 기반의 정주 여건을 네트워크 방식으로 연결할 필요가 있다.

원자력과 화석원료를 주로 사용하는 중앙형 에너지원 대신에 분산형 친환경 에너지원을 사용하는 에너지 전환이 지역정책과 맞물려야 한다. 그리고 부울경 지역과 같은 산업지역이 제조역량에만 특화되어 생산자서비스와 융합하여 새로운 기회와 경쟁력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가령, 스마트공장의 구축도 역내에서 독자적으로 구축할 역량이 부족하다. 따라서 디지털 전환은 구상과 실행의 공간적 분리를 지양하는 방향으로 지역에서 추구될 필요가 있다.

4. 지역 회복력이 우선이다

앞에서 선진국의 지역 간 격차에서 처분가능소득의 차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양질의 일자리 전망 부재와 상대적 삶의 질의 악화가 더 중요한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언급한 바가 있다.

지역 간 격차는 특히 진영 논리에 기반한 포퓰리즘으로 이어져 사회경제적 긴장과 갈등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일종의 공간적 물신론이 계층과 계급을 대체하여 민주적인 건설적인 대화와 논의를 가로막을 수 있다. 지역은 강력한 정체성의 기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지역 정책은 글로벌 가치 사슬의 변동과 그에 따른 한국경제의 구조적 전환과 결부된 지역 간 격차 확대를 직시하지도 못해 기존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는 정책 매너리즘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저출산·고령화, 디지털 전환, 에너지 전환 등 시대적 대전환의 과제를 지역 정책에 충분히 투영하고 있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소득 불평등의 심화에 따라 지역 간 격차도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향후 지역 문제는 일자리의 기회 및 전망 문제와 더욱더 결부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역의 삶의 질 제고와 혁신역량의 확충과 연관된 것이기도 하다.

청년층이 대도시를 선호하는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선진국도 마찬가지이다. 대도시는 청년에게 거대한 노동시장의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습득하는 장일 뿐만 아니라 소비 기회와 개선된 인프라를 제공한다. 이러한 선호를 무시할 수는 없다.

따라서 향후 지역 정책은 사회가 합의하는 공간 단위를 설정하여 성장, 포용, 환경 등 삼자를 동시에 고려하고 지역 주민에 대한 역량 투자를 강화함으로써 경제적 쇼크, 기후변화, 전염병 확산 등과 같은 외부 충격에 대한 지역의 회복력(resilience)을 신장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 저자소개

정준호는 강원대 사회과학대학 부동산학과 교수이다. 강원대 부임 전에는 산업연구원에서 동향분석실장을 역임한 바가 있다. 주요 관심 주제는 소득과 자산 격차, 부동산 시장 분석, 지역발전론, 산업·혁신 정책 등을 포함한다. 현재 국무총리 경제 특별보좌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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