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에 빠진 러, 우크라 '알박기'가 목표…푸틴 뒤 '실로비키'를 봐야한다"

[인터뷰] 정재원 국민대 교수 "반북·반중·친미 내세운 새 정부, 균형적 외교 필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한달(24일), 전 세계는 대립의 당사자가 침략을 강행한 충격적인 사건 이후 '쿠오바디스(어디로 가는가)'를 묻고 있다. 전쟁의 '단추'를 누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행위는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정당화 될 수는 없지만, 전쟁까지 치달은 이 갈등의 밑바닥에는 미국의 패권주의가 깔려 있다는 사실은 감추기 어렵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희생에 관심이 없는 것은 푸틴만이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신냉전 시대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버린 격이라는 사실은 한달 만에 한반도에서 확인됐다. 북한은 우크라 침공 초기 "미국의 패권주의"를 지적하며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었다. 그러나 북한은 24일 오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용병을 불법 파견했다"는 러시아의 '선전전'에 적극 동조하고 나서더니 이날 오후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했다. '레드라인'을 넘어섰다. 미국은 이런 북한의 행위가 유엔 안보리 위반이라며 "강력 비난" 입장을 밝혔다. 우크라이나에서 터진 미국·유럽과 중국·러시아의 갈등의 격랑이 언제, 어떻게 한반도를 덮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여느 정권보다 반북, 반중, 친미적 외교 노선을 공언한 새 정부가 5월 출범한다. 윤석열 정부는 과연 이 파고를 타고 넘을 수 있을 것인가.

어느 것 하나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들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한달을 맞은 24일 정재원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에게 물었다. 다음은 이날 오전 화상으로 진행한 인터뷰의 주요 내용이다.

수렁에 빠진 러시아...큰 희생 치르더라도 우크라 영토 최대한 확보하려할 것

프레시안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한달이 됐다. 벨라루스가 참전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 22일 푸틴과 젤렌스키와 모두 대화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중재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향후 어떻게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하시나?

정재원 : '신냉전'이라고도 하지만 21세기에 대리전은 있었지만 대립의 당사자가 자신의 영토를 침략당한 것도 아닌데 공격한 일은 없었다. 그래서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현재로선 예측이 불가능하다. 소형 전술핵 사용이 과장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드리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22일 미국 CNN과 인터뷰에서 러시아에 "실존적 위협이 된다면 핵무기 사용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설마 그렇게까지 가지는 않겠냐고 다들 생각하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문제에서 믿음을 주지 못했다.

현 상황에서 러시아가 양보를 할 경우에는 내부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미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 지난 8년 동안 제재를 많이 받아서 내부 불만이 크다. 실제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푸틴 입장에선 굉장히 위험한 상황으로 갈 수 있다. 때문에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영토를 최대한 더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체 점령은 불가능하고 현재 (우크라이나 동남부에 위치한) 마리우폴 지역을 초토화시켜 크림반도와 돈바스를 연결해 우크라 동쪽 영토를 최대한 확보하는 선에서 전쟁을 끝내려고 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 러시아 입장에서도 예상보다 피해가 큰 상황에서 돈바스 지역만 확보하고 물러날 수는 없게 됐다. (나토는 러시아군 사망자가 7000-1만5000명 수준으로 전쟁에 투입된 병력의 10% 수준을 잃었다고 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도 수렁에 빠졌고 아주 지루한 싸움이 있을 것 같다. 조지아에 남오세티야 지역(2008년 러시아가 침공해 준영토로 삼은 지역), 몰도바에도 독립을 주장하는 친러시아 지역이 존재한다. 이런 식으로 우크라이나 내에 '알박기 상태'의 영토를 최대한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러시아가 통제에 성공한 지역은 개전 크림반도, 돈바스를 포함해 우크라 영토의 20% 미만으로 추정된다. 수도인 키이우, 마리우폴, 하르키우 등 주요 거점은 수차례 교전에도 아직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 러시아의 폭격으로 무너진 우크라 마리우폴시의 아파트. ⓒTASS=연합뉴스

러시아는 왜 '나토 동진'에 이토록 민감할까?

프레시안 : 러시아는 이번 전쟁의 명분으로 1)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동진이 자신들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것과 2)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 그룹이 러시아 시민들을 공격해왔다면서 '탈나치화'를 꼽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정재원 : 러시아 입장에서 나토의 동진은 왜 위험할까?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전 세계 지배 전략 변화의 측면에서 꼭 지적돼야 하는 지점이다. 미국은 동서독 통일을 마무리짓는 협상의 일환으로 러시아에 대해 나토를 확대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9년부터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이 나토에 가입했다. 더 나아가 2008년부터 조지아, 우크라이나 등 구소련에 속했던 국가들까지 나토 가입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러시아 입장에선 동유럽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이 줄어들 뿐 아니라 실질적인 안보 불안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문제다.

현재 논의에서 많이 빠져 있는 부분이 우크라이나의 입장이다. 크림반도 분쟁으로 독립할 당시 우크라의 땅으로 보장받았던 영토의 일부를 러시아가 가져갔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영토를 빼앗긴 문제를 유야무야 끝낼 수 없다. 그래서 나토 가입을 통해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 했다. 러시아가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려는 욕망을 인정하기 시작하는 한 그 희생양은 우크라이나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러시아가 얼마든지 똑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다라는 말을 우크라이나는 하고 싶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숨어 있는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었다.

'탈나치화'는 분명 네오나치 문제가 있다. 우크라 민족주의 성향의 그룹과 친러시아 반군들이 동부 지역에서 무력 충돌이 있어 왔고 네오나치 그룹이 친러시아 반군들을 잔인하게 죽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크라 정치권을 네오나치 그룹이 장악할 정도로 정치세력화에 성공했나? 아니다. 친러 정당들이 우크라이나 의회에 진출해 있다. 나치 정당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우크라도 소위 올리가르히(소수의 특권 지배층)들이 존재하지만 네오나치 그룹이 아니다. 볼라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가족으로 둔 유대인이다.

러시아가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운 문제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를 침입한 것도 아닌데 전쟁을 일으킨 일은 정당화될 수 없다. 오히려 러시아가 직면하고 있던 미국과 서방으로부터의 안보 위협 등의 문제를 희석시킨 셈이 됐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미국, 중국과 러시아를 묶어 고립·악마화하려는 전략

프레시안 : 미국을 포함한 서방의 책임 문제는 당장 눈앞에 펼쳐치는 전쟁 때문에 가려지는 측면이 있다.

정재원 :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의 진짜 원인은 미국에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의 변화 과정에서 극대화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서방이 옛 사회주의 진영을 포섭해나가는 과정이 러시아에겐 심각한 위협이었다.

또 미국이 과거와 같이 독점적 지위를 중국의 부상으로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서 러시아가 중국과 더불어 거대한 헤게모니를 갖고 자신의 패권에 도전하는 것을 어떤 형식으로든 눌러야 했다. 그렇다면 중국과 러시아를 분리를 시킬 것이냐, 아니면 이 둘을 묶어서 고립시켜 악마화할 것이냐, 이 중 후자를 택한 셈이다.

프레시안 : 중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도 매우 중요한 변수로 지적된다.

정재원 : 사실 크림반도 사태 이후 이미 러시아와 중국이 하나로 묶여져 가고 있었다. 지금 전세계가 똘똘 뭉쳐서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석유와 가스 부분은 유럽도 혼란이 있다. 유럽은 러시아에 석유와 가스를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금융문제처럼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에 전면적으로 동참할 수 없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의 30% 이상이 중국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싼 가격으로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를 수입하고 러시아의 숨통을 틔여주는 역할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러시아 입장에서 곤혹스러운 지점은 반미-친중(친러)이라는 깃발로 묶을 수 있는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똘똘 뭉쳤던 나라들이 적극적이지 않다. 러시아 입장에선 이 국가들의 침묵이 위협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특히 구소련 국가들도 동조를 안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등 러시아에 상당히 의존적인 국가들 내에서도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고 이를 정부가 허용했다. 이번 사태가 이들 국가에게 실질적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얼마든지 우리도 침략할 수 있겠구나. 그런 흐름 때문에 중국도 '중립' 입장에서 더 나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러시아 국민들도 전쟁으로 인해 엄청 큰 피해를 보고 있다. 러시아에선 세계 2차대전 당시 2700만 명이 죽으면서도 버텼다면서 버틸 수 있다고 하지만, 이미 러시아인들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깊이 편입됐다. 그 맛을 알아버렸다. 특히 지식인, 엘리트층의 불만이 폭증할 수 있다.

이런 측면들을 살펴보면 미국의 전략이 결과적으로 성공했다고도 할 수 있다.

▲ 폴란드 국경 지역의 우크라이나 난민들. 이번 사태로 360만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난민이 발생했다. ⓒAFP=연합뉴스

미국도 우크라 민중의 희생엔 관심 없어...푸틴 뒤에 숨은 세력을 봐야

프레시안 : 일각에선 미국이 정치적 이익 때문에 이번 사태를 부추기거나, 방조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재원 : 현 시점에서 복기해보면 미국은 작년부터 사태를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고 갈등의 한축이기도 했지만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은 하지 않았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민중의 희생엔 관심이 없었다.

미국은 이 사태가 어떻게 종결되든 간에 미국이 주도하기를 원한다. 유럽의 안보는 미국이 담당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러시아는 유럽과 미국 사이를 어떻게든 벌리려고 하고 미국은 이에 저항한다. 이런 상태에서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의 중재를 유럽이 주도하고 있다. 유럽 입장에선 빨리 사태가 해결돼야 한다. 사태가 길어질수록 당면해야할 문제가 커진다. 우크라이나 난민 문제도 유럽 국가들이 감당해야할 문제이며, 이로 인해 이민, 인종주의 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커질 수 밖에 없다. 반면 미국은 타격 받을 게 없다. (유엔 인권사무소에 따르면, 전쟁 한달 동안 우크라이나에서 목숨을 잃은 민간인이 1000명에 육박한다. 또 우크라이나 난민은 약 363만 명에 이른다. 미국은 이들 중 미국에 가족이 있는 10만 명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프레시안 : 미국 등 서방 언론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편향된 시각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한국 언론도 미국의 패권주의 정책 문제에 대해선 크게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균형 잡힌 보도가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다.

정재원 :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푸틴의 책임이 분명 있지만, 지나치게 푸틴 개인에 집중하고 악마화하는 것은 문제다. 개인 행위자에만 집중해서는 안되고 푸틴이 러시아 내부의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지, 누구의 권력을 대변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푸틴이 만든 구조 내에서 부패한 실로비키(러시아 정보기관인 KGB나 군 출신의 정치관료들, '제복 입은 남자들'이란 뜻)나 올리가르히의 문제다. 푸틴 뒤에 있는 힘들을 봐야 한다. 

푸틴 정권이 완벽하게 정보를 차단하고 있는 상태에서도 상당수의 러시아 국민들은 전쟁에 대해 비판적이다. 반전 시위에 참여하면 징역 15년형이라고 겁박하는데도 나서는 시민들이 존재한다. 러시아 일반 국민들과 푸틴 정권은 분리해서 사고해야 한다. 

큰 흐름에서 우려되는 지점은 이번 사태가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함으로써 불이익을 봤다, 고로 핵을 가져야 안전이 보장되고, 정권 입장에서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또 이 사태로 인해 기후위기, 탈탄소 경쟁 등 지난 2년간의 팬데믹 사태로 진전된 선진적 논의들이 사라지고 퇴보할 수 있다. 에너지 수급에 위기가 올 수도 있으니까 핵발전소를 지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이번 사태가 퇴행을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프레시안 :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이번 사태가 한국에 끼칠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일각에선 북한이 이 사태를 계기로 '레드라인'을 넘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인터뷰가 끝난 뒤인 24일 오후에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월 대선을 통해 반중, 반북, 친미 성향의 정치세력이 집권했다. 어느 때보다 한국 정부의 외교 역량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떻게 보시나? 

정재원 : 오는 5월 출범할 새 정부가 반중, 반북 입장이며 어느 때보다 미국의 입장에 크게 동조하는 입장이다. 지나치게 북한, 중국, 러시아와는 대립적 입장을 취하고 미국의 입장에 대해선 의구심을 접고 이로 인해 일본에도 동조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 같아 우려된다. 어떤 국가와도 정상적인 국가가 됐을 때 교류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는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러시아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기 위해 일본처럼 전면적으로 제재에 나서는 방식을 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내부적으로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반중 정서에 혐러시아까지 겹쳐져 우리 사회의 혐오 문제와 이주민 차별 문제가 커질까 걱정이다. 이런 정서는 전반적인 우경화를 야기할 수 있다. 

▲정재원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 ⓒKBS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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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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