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에, 세계 식량위기 '비상등' 켜졌다…"가난한 나라에 더 타격"

아랍권선 밀 50% 이들 지역서 수입…비료값 상승으로 생산량 증대 '난망'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량에 의존하는 이집트 등 아랍 국가를 중심으로 세계 식량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비료값 등 생산 비용 상승으로 다른 지역에서 생산량 증대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식량 위기가 가난한 나라에 더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EU 집행위원회는 23일(현지시간) 전지구적 식량 위기에 대한 대응의 일환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3억3000만 유로 규모의 긴급 지원 프로그램을 발의했다. 집행위는 "러시아가 식량 저장고를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전쟁으로 고통 받는 우크라이나에서, 특히 포위된 도시들에서 식량 안보는 매우 중요하다"며 "우크라이나가 단기 및 중기 식량 안보 전략을 시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농업은 위기에 처했다. 농민들이 군인으로 참전하며 노동력 부족이 우려되고 참전하지 않았더라도 러시아의 무차별 폭격으로 인해 농민들이 들에 나가 안심하고 농사를 짓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 집계를 보면 이달 22일까지 국외 탈출한 우크라이나 난민만 362만 명에 이르고 국제이주기구(IOM)가 21일 발표한 국내 난민 수는 648만 명으로 국내외 난민 수가 1000만 명에 달한다. 총 4300만 명의 우크라이나 인구 중 4분의 1이 정주지를 잃은 것이다.

우크라이나 농업 위기는 국내 상황에 그치지 않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밀 수출의 30% 를 담당하며 우크라이나 단독으로도 전 세계 밀의 10%를 수출한다. 전지구적 식량 위기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이 지역에 대한 식량 의존도가 높은 북아프리카 및 중동 지역의 위기감이 높다. 아랍 전문 싱크탱크인 아랍개혁이니셔티브(ARI)가 11일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2020년 기준 아랍 세계 전체에서 수입한 밀 중 러시아(34.4%)와 우크라이나(15.9%)에서 수입한 비중은 50%가 넘는다. 특히 이집트는 이 지역 수입 비중이 86%, 수단은 92%, 레바논은 96%에 이른다. 

곡물 가격 상승으로 일부 빵집에서 빵값이 25%나 급등하자 이집트 정부는 21일 보조금을 받지 않는 빵 가격을 1kg당 11.5이집트파운드(약 760원)로 동결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레바논 일부 빵집에서 빵값이 3월 들어 70%나 올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ARI는 "밀 및 필수 식량 부족과 가격 인상은 가난한 사람들을 굶주리게 하고 식량 위기를 증대시킬 수 있으며, 이는 폭동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료 가격 급등과 가뭄 등으로 촉발된 2007-2008년 식량 위기 때 이집트, 인도네시아, 세네갈 등 전 세계 40여개국에서 식량 부족으로 인한 폭동이 일어난 바 있다.

따라서 세계적인 밀 생산 증대 필요성이 대두되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일단 생산량 증대에 필수적인 비료값이 상승했다. 광범위한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가 암모니아, 탄산칼슘 등 비료 재료의 주요한 수출국인 것이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네덜란드 금융기관인 라보뱅크를 인용해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지난해 전 세계 탄산칼슘, 암모니아, 요소 수출 비중이 각 40%, 22%, 14%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서방 제재로 인해 러시아의 비료와 작물 수출이 어려운 상황이며, 서구 은행들과 거래자들도 거래를 꺼리고 있다. 해운사들은 안전 문제로 (곡물 수출 통로인) 흑해 운항을 꺼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신은 미 농무부(USDA) 자료를 인용해 비료값이 이미 지난해 17% 오른 데 이어 올해 12%나 더 오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유가 등 에너지 가격도 급등하며 생산 비용 상승으로 농민들이 생산량을 오히려 줄이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로이터>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대두 수출국인 브라질 농민들이 비료값 상승으로 이미 옥수수 생산을 줄였으며 향후 대두 재배에도 비슷한 영향이 있을 것으로 봤다.

더구나 유럽(95%)과 미국(85%)에서 재배되는 밀의 대부분이 가을에 심는 밀이라 이 지역에서는 단기간에 생산량을 늘릴 방도가 마땅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곡물값이 상승했지만 생산 비용도 상승해 당장 농부들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제한적인 데다 시장 불확실성 때문에  아예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현상도 관찰된다. 농부들이 적극적으로 생산량을 늘릴 유인이 적다는 의미다. <로이터>는 미국 캔자스 서부에서 농사를 짓는 반스 엠케가 곡물값 상승을 타고 농작물을 판매하려 했으나 구매자를 찾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켄터키주 곡물 상인인 앤드류 잭슨이 "시장이 공황에 빠졌다"고 말했다며 많은 곡물 구매업자들이 전쟁 상황을 지켜보며 구매를 보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급 부족과 그에 따른 곡물가 상승이 가난한 나라에 더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AP>는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이 전 세계 1억2500만명을 지원하기 위해 구입하는 곡물의 거의 절반이 우크라이나에서 나온다고 지적했다. 앨리슨 벤틀리 국제옥수수밀연구소(CIMMYT) 책임자는 <네이처>에 "부유한 국가는 식품 가격 인상을 가난한 나라보다 쉽게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저소득 국가는 빵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 등이 제한될 것"이라며 "남반구를 포함해 이미 취약한 사람들의 즉각적인 식량 공급 안전을 위해 전례 없는 수준의 국제 정치 및 경제 조치가 필요하다"고 기고했다.

▲지난 17일 이집트 칼리우비아 지역에 위치한 농지에서 한 농부가 밀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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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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