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 달째 이어지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사실상 항복하는 상황이 되지 않는 한 협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23일 사단법인 유라시아 21, 한국무역협회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세계경제와 한러 경제협력'을 주제로 공동개최한 정책 세미나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원인, 현황, 전망'을 발표한 강윤희 국민대학교 유라시아학과 교수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협상의 조속한 타결에 목매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진단했다.
강 교수는 "러시아는 양국의 협상이 지연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우크라이나 초토화'라는 러시아의 숨겨진 의도도 있다"며 "우크라이나가 협상에서 러시아의 제안을 수용하게 만들려는 것과 함께 이참에 우크라이나를 초토화 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계속 밀어붙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주민들의 난민화도 러시아가 원하는 것"이라며 "지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우크라이나 인구가 1000만 명이 줄었고 현재도 이미 350만 명이 우크라이나를 빠져나간 상태다. 이는 우크라이나 국력 약화에 주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 의회를 비롯해 다양한 국가에서 화상으로 감동적인 연설을 하면서 외부세계를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지만 사실상 별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군사적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고 우크라이나로의 무기 이전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직까지 러시아군이 결정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무릎 끓게 하는 승리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우크라이나는 결사항전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이 상황에서 결국 어쩔 수 없이 나토 가입 문제나 중립화 등의 발언 등이 (우크라이나로부터) 나오게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강 교수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직접 협상을 요구하기도 했다"면서도 "푸틴 대통령이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지는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항복 수준으로 러시아가 원하는 것을 받아들일 때 푸틴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러시아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물가 상승
러시아가 전례 없는 서방의 경제 제재를 받으면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을 멈추지 않는 데에는 경제적으로 아직 버틸만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날 '우크라이나 사태와 세계 경제 ; 영향과 전망'을 주제로 발표한 신환종 NH 투자증권 FICC 리서치센터장은 러시아의 여러 경제 수치들이 최악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 러시아의 경상수지는 계속 흑자를 보이고 있다. 이전에 수출했던 에너지 자원에 대해 달러와 유로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며 "외환보유고를 보면 위안화가 16%, 금이 20% 정도이고 나머지는 모두 동결됐는데 경상수지로 들어오는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 근근이 버틸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환종 센터장은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러시아 경제 성장률을 1~1.5% 예상했다가 침공 이후 -7%를 예상했고 -15%까지 내려갈 것이라고 했지만, 이건 올해 이야기고 내년부터는 현재 경제 체제에 적응해 나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 결제망에서 배제한 조치에 대해 신 센터장은 "러시아 내의 가장 큰 은행이 이 제재에서 제외됐기 때문에 아직은 꾸역꾸역 버틸 수는 있다"며 "다만 시간이 갈수록 제재가 강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그는 러시아 내의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이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 센터장은 "20~30% 정도 인플레이션을 예상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러시아는 루블화를 시장에 내놓을 수밖에 없다"며 "달러당 200루블까지도 갈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는 "이렇게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면 수입 물가가 높아진다. 따라서 예를 들면 삼성이나 애플의 휴대전화를 쓰지 못하게 되고 중국산 휴대전화가 많이 팔리게 될 것이다"라며 "이처럼 러시아의 인플레이션 때문에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 중국 경제로의 편입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센터장은 "이렇게 될 경우 위안화가 강세를 보일 수 있고 러시아가 이런 시스템의 경제 구조에 적응하게 되면 달러 패권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하지만 그는 "지금은 달러 패권에 대한 신뢰가 여전히 높다"며 "유럽연합 지역에서 스태그플레이션(경제불황과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단기적인 현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전쟁의 장기화, 바이든의 초강력 제재, 여기에 유럽연합의 동참까지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며 "전 세계가 상당히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앞으로 경제적인 계산보다 정치적인 판단이 실제 경제 영역에서 더 빈번히 발생할 것이라며 "지난 40년은 뉴욕이 전 세계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제부터는 뉴욕이 아니라 워싱턴을 봐야할 것으로 본다"며 "자국이 1000억, 2000억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국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상황이 나올 것이기 때문에 경제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그만큼 불확실성이 크게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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