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쇠퇴를 맞이하는 자세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지방 소멸은 위기인가?

좁은 국토에서의 지역 불균등 발전

운전하거나 기차를 탈 때 주변 경관을 살피는 일은 즐겁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러한 취향을 가지지는 않는다. 특히 차양을 걷고 창문 밖을 바라볼 때 기차를 탄 주변 사람들은 햇빛에의 노출과 단잠의 방해에 인상을 찌푸린다.

그들에게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풍경은 의미 없는 시각적 공해일 뿐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으려 아주 약간의 공간만 열어놓은 채 차창 밖을 바라보는 모습은 공간에 대한 끈질긴 애정과 관심을 반영한다.

경관을 살피는 행위는 곧 살기 좋은 국토 공간에 대한 소망과 연결된다. 좋은 국토란 사람들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를 적시에 충족시키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전국에 걸쳐 건설된 고속도로, 철도, 그밖에 정보통신 인프라는 각종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킨다는 점에서 좋은 국토를 위한 실천 사항이 된다. 문화적·경제적 서비스로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교통·통신 인프라의 확충은 어찌 보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맞다.

하지만 효율적이고 살기 좋은 국토를 위해 이제는 교통망 확충을 넘어 지역 도시의 질적 성장을 고려할 시기이다. 도시의 질적 성장은 고밀도화된 공간으로부터 비롯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공간의 집약과 응집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부족하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차근차근 살펴보면 공간 낭비의 습관이 우리 주변에 만연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곳곳에 파헤쳐지고 있는 국토를 보면 이러한 아쉬움은 더 커져만 간다. 공간 집약의 실행 없이 이어지는 교통 인프라 확충과 연결성 향상은 오히려 이러한 공간의 비효율을 심화시키고 있다.

여기서는 우리나라의 도시에 만연한 집약적 공간 이용의 부족을 다루고 효율적 공간 이용을 통한 지역 발전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고속도로와 KTX 노선과 같은 전국적인 교통망 확충도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서울로의 집중과 지역 불균등 발전을 해결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지역 불균형의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국 도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효율적이지 못한 공간 이용과 이로 인한 매력적인 '지역' 도시의 상실로부터 비롯한다.

집약적 공간 이용과 도시 성장

우리나라의 주택가를 거니노라면 효율적이지 못한 공간 이용이 눈에 띈다. 한국의 주택은 기본적으로 연이어 짓는 것보다는 독립된 건물 형태를 지향한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틈이 존재한다는 것은 불필요하게 버려지는 자투리 공간이 발생함을 의미한다. 

한국의 일반적인 골목길을 유심히 살펴보면 주택 사이의 벌어진 공간이 아무런 역할과 쓰임 없이 버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두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공간이 큰 의미를 가질 리는 없다. 이런 공간만 모아도 한국의 도시는 지금보다 훨씬 높은 인구 수용력을 가질 것이다. 주택 사이의 버려진 공간은 한국의 비효율적 공간 활용을 반영한다.

주택가에서 발견되는 우리나라 국토의 비효율적 공간 이용은 점점 모호해지는 도시와 촌락의 경계에서도 발견된다. 도시의 외연적 팽창 속에서 주거지역, 산업 시설의 외곽 이전은 필연적으로 발생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흐름이 무질서하게 두드러진다. 도시의 외연적 팽창은 구도심과 신규 택지 사이의 공간적 괴리감과 응집력의 저하를 일으켰다.

지방 혁신도시의 건설과 공공기관의 이전은 이러한 도시의 외연적 분산을 가속화시킨다. 구도심 인근에 지어지는 혁신도시는 타지 인구의 신규 유입보다는 기존 주거지의 인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이런 경우 기존 지역 도시와 혁신도시는 서로의 성장을 위한 시너지효과보다는 황량한 도시 분위기를 연출할 뿐이다.

지역 도시 특유의 을씨년스러움은 도시 발전에 있어 부정적인 경관을 연출한다. 경제지리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공간의 황량함은 도시 내 가치 창출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한국 주택가의 비효율적인 거리 띄우기가 암시하듯이 집약적이지 못한 도시 공간 이용은 고정 시장 형성에 필요한 인구의 밀집과 응집력을 흩어놓는다.

한국의 도시는 인구 규모에 비해 시가지 영역이 집약적이지 않고 다소 넓으며 특히 중소도시의 경우 자가용이 없이는 이동 활동에 제약이 뒤따르는 현실에 처해있다. 시내버스는 기본적으로 20-30분 이상의 대기 시간을 감수해야 한다.

대중교통 이용의 이러한 불편함은 지방 중소도시 시민들을 더욱 자가용에 의존하게 만든다. 지금과 같이 밀도가 약한 도시 공간 구조에서 대중교통의 안정적 고정 시장 형성은 요원하다.

약한 공간 밀도와 자가용 위주의 교통 조건은 도시 내 혈액 순환의 장애를 야기한다. 도시 내 바람직한 경제지리 조건은 소득, 나이, 지위 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필요한 공간에 자유롭게 접근하여 돈을 쓰는 것이다.

자가용 위주의 교통환경은 다양한 시민들의 이동권과 도시 경제 활성화를 제한한다. 도시 내 다양한 인구의 이동과 만남은 경제의 원활한 순환을 위한 기본 조건이다. 도시를 인간의 몸에 비유했을 때 핏줄을 따라 적혈구만 돌아다니고 혈액 안에 포함된 영양소, 산소, 백혈구 등이 적시에 공급되지 못하는 경우 신체는 활력을 잃게 되는 것과 같다.

도시 내 필요한 서비스로의 접근을 위해 이동해야 하는 거리는 짧을수록 좋다. 인구 30-40만 규모의 중소도시는 지금의 시가지 면적을 더 집약시켜야 하며 그로 인한 높은 밀도와 대중교통·도보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이상적인 도시계획으로 판단된다.

높은 밀도는 경관적으로도 인간의 정서에 안정감을 주면서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교류의 장을 활성화시킨다. 우리가 유럽의 도시에서 느끼는 문화적 활력은 비단 유럽의 건물이 가지는 고풍스러움이 아니라 도시 내 건물과 밀도의 집약, 그리고 이동의 자유로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개발도상국 도시의 혼잡함과 선진국, 특히 미국 도시의 쾌적함을 비교하며 우리는 고밀도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밀도가 아니라 어떻게 관리하느냐이다. 높은 밀도의 효율적 관리는 홍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좁은 통로를 통해 대량의 인구를 효율적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홍콩의 트램이나 도시철도는 결국 공간의 밀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방소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우리나라는 도덕적인 잣대에 민감한 편이다. 이는 지방소멸 문제에도 적용된다. 지방의 줄어드는 인구와 지자체의 소멸에 대한 우려도 어쩌면 동정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방소멸이 어떤 문제를 유발하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된 바는 없다. 대다수는 지방소멸 가속화의 원인으로 수도권 과밀화를 지적한다. 그러나 지방소멸의 문제를 수도권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지역 도시에서 해결되어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것과 같다.

서울의 기능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보다는 지방 도시를 살고 싶은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문제 해결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도시 활력의 밀집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경제적·문화적 활력의 저하와 삶의 질 하락을 막지 못한다면 지방 도시로의 인구 유입은 요원하다.

따라서 이제는 지방소멸보다 지방 쇠퇴를 걱정해야 할 시점이다. 지방소멸은 한편으로 국토 공간 재편의 과제를 제시한다. 그러므로 지방소멸에 대한 우려보다는 이에 대해 발전적인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그동안 서울 집중과 지방 쇠퇴는 지역 도시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매력적인 지역 도시를 키우는 일은 도시 내 응집력 있는 발전 핵을 형성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는 인구와 도시시설의 공간적 집중으로부터 출발한다. 혁신도시와 같이 도시 내 밀도를 흩어놓는 실천은 지역 도시의 성장과 국토의 균형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집중시킬 지역 도시는 밀도를 강화하되 인구가 소멸하는 지역은 행정적인 정리를 과감히 시행하여 농업 분야의 규모화를 이뤄야 한다.

파편화된 농업 구조를 정리하고 대량의 작물 생산 기틀을 마련하는 것 역시 한국의 식량 주권을 확보하는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지방소멸을 억지로 저지하기보다는 이를 국토의 효율화를 위한 공간 재편의 기회로 삼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판단한다. 지방의 흩어진 인구를 지역 도시 중심으로 모으고 매력적인 중소도시를 키우는 작업은 서울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과정에도 도움을 준다.

그러므로 지역 도시 공간의 고밀도와 대중 친화적 이동성을 고려한 중소도시로의 과감한 인프라 투자가 동반되어야 한다. '지방소멸 방지'에서 '지역 도시 성장'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한국의 경제지리 르네상스와 도시 중심의 지역 활성화를 유도하리라 전망한다.

■ 필자소개 

사회적 현상을 공간으로 이해하는 지리학자이다. 인간의 주체적 행동과 공간의 영향을 분석하며 도시 공간의 문화적 활성화부터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비전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지리학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한국경제지리학회

1997년 11월 한국 지리학내 전문학회로 발족한 한국경제지리학회는 국내외 각종 경제현상을 공간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동시에, 연구 역량을 조직화하여 지리학의 발전과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지리학회는 연 2회 정기 학술 발표대회와 국내외 석학을 초빙해 선진 연구 동향을 토론하는 연구 포럼, 학술지 발간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