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구세주
"아니, 집이 왜 이 모양이 됐지? 아무도 없나요?"
공포와 불안의 며칠이 지나가자, 갑자기 인기척과 사람 말소리가 들렸다. 가마니 뒤에서 내다보자 승복을 입은 한산스님이었다.
"스님~"
병삼은 반가운 마음에 울면서 스님에게 달려가 안겼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다들 어디 갔느냐?"
병삼은 한산스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한산스님은 긴 한숨을 쉬었다.
"내가 이정 선생님 뵈러 북을 다녀온 동안에 사단이 났구나. 이를 어쩔 것인가?"
"..."
"아니 이럴 때가 아니다. 경찰들이 언제 다시 닥칠지 모르니 우리라도 빨리 몸을 숨기자."
한산스님은 병삼을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성북동에 있는 큰 한옥이었다. 나중에 요정정치의 산실이 되는 대원각으로, 안으로 들어가자 예쁜 누나들이 많았다. 이곳은 한산스님의 어머니인 조봉희 여사와 여동생 김소산이 운영하던 요정으로, 안전할 것 같아 찾아온 것이다.
"오빠, 무슨 일로 여기에 다? 그리고 병삼이 아니에요? 얘까지 데리고 어떻게 이런 곳에?"
미모의 한 여인이 나타나 한산스님과 병삼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여동생 김소산이었다. 김소산은 어머니 소유의 요정을 경영하면서 미모와 육감적인 훌라춤으로 당시 권력자들을 녹여 중요한 정보를 빼내서 남로당에 제공해온 인물로, 남로당의 내부사정을 잘 알기에, 한산은 소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김수임, 김소산 등 해방정국의 ‘미모의 여간첩’들을 ‘한국의 마타하리’로 그려 인기를 끌었던 1970년대 ‘특별수사본부’는 김소산이 사랑을 가장한 미남 남로당공작원의 꼬임에 빠져 간첩이 되는 것을 그리고 있지만, 원경은 이는 사실이 아니며 김소산은 박헌영의 친척으로 원래 사회주의자였다고 반박했다).
"일단 들어가 쉬세요."
다음 날 소산은 한산에게 말했다.
"오빠, 여기는 정계와 경찰 등 고위층이 많이 출입하는 만큼 신분이 노출된 가능성이 적지 않아요. 아무래도 서오릉 어머니집으로 가는 게 나은 것 같아요."
"네 말이 맞다."
병삼은 다시 한산을 따라 나섰다.
"어머니, 저 왔습니다."
"스님 어서 오세요. 헌데 병삼이는 왜?, 병삼아 이리 오너라. 한 번 안아보자."
조봉희는 반가워 병삼을 끌어안았다. 병삼은 고모인 조봉희로부터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엄마 같은 푸근함을 느꼈다. 병삼은 경찰 습격 후 쌀가마니 뒤에 숨어 두려움과 불안 속에 쭈그리고 잠을 자는 등 긴장 속에 지냈고 대원각 역시 손님들이 들락거리는 등 불안해 잘 자지 못하다가, 오래 만에 편하게 쉬고 늦잠을 잤다.
"스님, 시대가 하수상하니, 얘를 여기 두는 것도 안심할 수 없어요. 그렇지 않겠지만 잡혀간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할지 모르니."
한산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조봉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어머니, 그럼 어쩌지요?"
"익산 아버지 댁에 들렀다가 지리산으로 가세요. 거기에는 야산대(빨치산에 대한 원래 명칭)도 있고 하니. 그리고 얘를 살리려면 머리를 깎여야 할 것 같아요."
"머리를요?"
"그래야 의심을 받지 않고, 스님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의탁할 곳이 생기지 않겠어요?"
"어머님 말씀이 맞네요. 그래야 할 것 같네요. 이 아이를 살리려면 부처님의 품에 맡겨야 할 것 같네요. 나무석가모니불."
11. 지리산으로
"병삼아 여기서 잠깐 기다려라."
"예 스님."
조금 있자, 한산은 배낭을 맨 한 젊은 남자와 미모의 한 젊은 여자를 데리고 나타났다.
"자, 빨리 움직이자."
한산스님은 두 사람이 누구인지 병삼에게 인사도 시키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겁지 않은가? 좀 쉬어갈까?"
"괜찮습니다."
배낭에 든 것이 무거운 것인지 청년은 힘들어했고 스님은 그에게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배낭에는 스님이 북한에 가서 남로당자금으로 박헌영에게 받아온 사금 9관(34Kg)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남북한의 화폐가 달라 남쪽에서 빨리 현금화할 수 있는 것은 금이었는데 금괴로 가지고 올 경우 발각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한산은 가루 형태인 사금으로 가지고 와서 남한에서 이를 금괴로 만들어 처분했다.
젊은 여인은 한산스님에게 아주 다정하게 대했다. 스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여인은 한산스님의 연인이었다. 이름이 전○○인 이 여인은 이화여자대학 국문과를 나온 재원으로 한산스님과 사회주의운동을 함께 했고 사랑하는 사이였다.
서울을 벗어나 이들이 도착한 곳은 안양이었다. 조금 걸어가자 거대한 공장이 나타났다. 담을 따라 한 바퀴를 도는데 십리라는 엄청난 규모의 방직공장이었다. 한산스님은 공장으로 들어가 사장실로 향했다.
"스님, 웬일이십니까?"
중년의 사내가 일어나 인사를 했다(그는 남로당 자금을 관리하던 자금책으로 이후 사업가로 크게 성공했고 박정희 정권 하에서 정치인으로도 활동하게 된다).
"사방이 난리가 났는데 별일 없으시지요."
"예, 저는 괜찮습니다."
"그 배낭 내려놓아라."
스님은 청년에게 지고 온 배낭을 내려놓으라고 지시했다.
"이거 이정 선생님에게서 받아온 당 자금이니 잘 보관해주세요."
"예, 알았습니다."
공장을 나온 뒤 청년은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청년이 사라지자 한산은 남은 여인에게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이곳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것 같으니 빨리 북으로 넘어가세요."
"알았습니다. 스님도 조심하세요."
한산은 여인을 가볍게 안아주며 작별인사를 했다(이 여인은 북으로 넘어가지 않았고 자신을 체포한 헌병대장과 결혼한 뒤 마당발 같은 인맥과 수완으로 영화, 문화계의 꽃으로 활약하게 된다. 원경은 우연히 그를 만난 자리에서 한산스님이 생각이 나 울며 뛰어나왔는데 이 여인은 그가 한산스님의 어린 중이라는 것을 기억해 내 절을 지어주겠다고 했지만 원경은 사양했다고 한다.)
한산스님과 병삼은 안양을 떠나 전북익산 북쪽의 함라에 도착했다.
"스님, 무슨 집이 이렇게 커요. 담이 끝이 없네요. 궁궐만 하네요."
"그렇지? 내가 듣기에 길이가 거의 100미터라는 것 같더라. 이곳이 나와 네가 아버지를 만났던 해균 형님네 본가란다."
스님과 병삼은 익산의 김해균 고향집에서 하루를 자고 다시 지리산으로 떠났다.
"병삼아, 지금부터 네 이름은 병삼이 아니라 현준이다."
"예? 현준이요?"
"그래 현준이다. 누가 이름이 뭐냐고 묻거든 박현준이라고 답해야 한다."
"왜요?"
"네가 알다시피, 우리가 쫓기는 신세이기 때문에 병삼이라는 이름을 쓰면 안 되기 때문이다."(원경은 본명 병삼, 현준이외에도 모두 14개의 이름을 써야 했다.)
"알았습니다."
어린 병삼은 이해가 되는 것 같으면서도 혼란스러웠고 자신이 없어 걸으면서 새 이름 ‘현준’을 계속 입으로 반복해서 읊조렸다. "박현준. 박현준. 박현준. 박현준."
"다 왔다."
"여기가 어디에요?"
"화엄사란다."
지리산 문턱인 구례 화엄사에 도착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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