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림의 상대성 이론'과 대선 후보 판별법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과학소설(SF)의 세계적 거장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1989년에 쓴 '틀림의 상대성'(Relativity of Wrong)이란 글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람들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을 때, 그들은 틀렸다. 지구가 완벽한 구형(球形)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틀렸다. 하지만 당신이 지구를 완벽한 구형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나 평평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정도로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 두 집단을 합친 것보다 더 틀린 생각을 하는 것이다."

과학은 지식의 축적을 통해 과거의 실수를 딛고 진보한다. 과학자들은 틀리기도 하지만 데이터가 쌓이고 이론이 정교해지면서 점차 덜 틀리게 된다. 그런데도 '틀린 이론은 똑같이 잘못'이라거나 '틀린 이론 간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여기는 것은 더 큰 잘못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옳다'와 '그르다'를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서 완벽히 옳지 않으면 전부 그리고 똑같이 틀렸다고 여기는 것이 근본적이 문제다." 아시모프의 이 말은 딱히 과학뿐 아니라 세상사에 두루 통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이번 대선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이 말이 가슴에 다가온다. 대선 후보 및 가족의 도덕성, 각 후보의 이념과 정책, 공약 등에서 각기 흠결이 있다고 해서 그 흠결이 모두 똑같은 정도는 아니다. 사안의 경중, 정도의 차이 등을 면밀하게 헤아려 이에 합당한 평가를 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도 '똑같이 잘못'이라거나 '잘못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몰아가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특히 언론이 여기에 앞장서고 있다.

이른바 '배우자 리스크'부터 그렇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부인 김혜경씨,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부인 김건희씨는 모두 여러 의혹과 구설에 휩싸여 있다. 그런데 김혜경씨의 '과잉 의전' 논란과,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혐의나 수원여대 겸임교수 임용 의혹 등은 '양과 질'에서 똑같은 수준이 아니다. 아시모프의 화법대로 말하자면 김혜경씨가 과잉 의전 논란으로 완벽한 구형(球形)이 아닌 일그러진 구형이 됐다면, 김건희씨는 아예 구형 근처에도 가지 못한 '평평한 수준'인 셈이다. 그런데도 "후보 배우자들의 잘못이 피장파장"이라고 언론이 몰아가는 것은 단순한 인식의 오류 탓이 아니다. 그것은 '한쪽의 리스크'를 실제보다 더 부풀림으로써 '다른 쪽의 리스크'를 줄이려는 고의적이고 교활한 술책이다

김건희씨 의혹의 상당 부분은 단순한 사과가 아니라 수사가 필요한 사안이다. 윤석열 후보가 '적폐수사'를 공언했는데, 자기 부인의 의혹이야말로 진상 규명을 기다리는 '적폐'가 아닐까. 김씨는 애초 공개된 신한은행 계좌 이외에 다른 계좌로도 도이치모터스 주식 거래를 한 사실이 밝혀져 주가 조작 혐의가 더 짙어졌으나 검찰의 출석 요구에 불응하고 있다고 한다. 허위 경력서를 낸 수원여대 겸임교수 임용의 경우 다른 응시자들이 면접을 치렀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사실이 수사를 통해 확인되면 형법상 업무방해죄 위반 등으로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정경심 교수에게 적용된 혐의가 바로 그것이다. 윤 후보가 대선에서 당선되면 자신의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를 검찰총장에 임명하겠다는 것은 이런 상황을 미리 염두에 둔 때문일까.

후보들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최악의 비호감 대선" "미래에 대한 비전 부재" 등 곳곳에서 한숨이 넘쳐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실질적 민주주의의 증진, 경제적 양극화 해소, 평화와 안보, 사회적 통합, 생태와 환경 등 시대적 과제 키워드에 대입해본 후보들의 차이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모두 기대수준 이하'라는 말로 똑같이 평가절하하면 결국 시대에 더 뒤떨어진 비전과 정책을 가진 후보가 이득을 볼 뿐이다.

'촛불'을 생각해보자. 현 정부가 '촛불의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정당하다. 하지만 윤석열 후보는 '촛불'의 의미 자체를 부정한다. 그가 "무법천지"라고 비난한 2019년의 '서초동 촛불'도 2016년 겨울 광화문 광장을 뒤덮었던 촛불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의 퇴행과 권력의 오만함에 대한 시민 사회의 자발적 저항이 촛불 안에서 타오른다. 윤 후보의 촛불 폄하는 시민의 역동성에 대한 부정이며, 시민의 평화적 의사 표현에 무조건 사법처리 잣대를 들이대는 '검찰스러운 사고방식'이다. 이런 사고방식의 국정운영은 결국 민주주의 퇴행과 권위주의 체제 강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검찰 개혁, 언론 개혁, 사법부 개혁, 재벌 개혁, 관료 개혁 등 숱한 개혁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과연 어느 후보가 어떤 부분의 개혁 과제에 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인가. 100% 만족할 만한 후보가 없는 것은 당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뭉뚱그려 '기대난망'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아시모프의 표현을 빌면 '후보들의 잘못을 더한 것보다 더 큰 잘못'이다. 검찰 개혁의 경우 '검찰의, 검찰에 의한, 검찰을 위한, 완벽한 검찰공화국'을 꿈꾸는 후보가 있다. 수구보수 언론의 전폭적 지지에 힘입어 정치적으로 속성재배된 후보가 언론 개혁을 심각하게 고민할 리도 만무하다. 다른 모든 개혁 과제들도 마찬가지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아 생태와 환경 문제에 대한 발상의 대전환 필요성이 운위되는 시점에 "4대강 사업을 잘 지켜내겠다"고 공언한 후보는 자신의 '생태환경 감수성 제로'를 스스로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혐오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치유가 어려운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지금의 선거 양상을 보면 오히려 대선 뒤가 걱정될 정도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조금이라도 우려한다면 선거운동 방식부터 최대한 갈등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향해야 한다. 그런데도 특정 계층의 분노를 혐오로 돌려서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여기에 상당수 유권자들이 환호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당신이 지구가 완벽한 구형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나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정도로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 두 집단을 합친 것보다 더 틀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아시모프의 말을 다시 한번 음미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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