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광역 메가시티 구상 열풍
지역마다 메가시티 구상이 열풍이다. 부울경(동남권) 메가시티, 대구·경북 메가시티, 충청권 메가시티, 강원 강소 메가시티 등 지역균형발전과 성장전략으로 다양한 구상이 지역별로 추진 중이거나 계획 중이며, 정부도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수도권 집중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2020년 이후 역사상 처음으로 수도권 인구와 생산규모가 비수도권을 능가하였다. 한국의 국토 공간에서 수도권을 제외한 그 어떤 지역도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지역 붕괴로 이를 우려가 크다.
메가시티 구상은 수도권에 필적할 초광역 경제권을 구축하여 지역균형발전과 지역 성장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자는 절박함에서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초광역권 구축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고 여러 가지로 시도됐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시도별 분산적인 지역혁신체제를 극복하고 규모의 경제를 갖춘 광역경제권 협력이 필요하다는 논의는 참여정부 때부터 있었고, 이명박 정부하에서는 전국을 수도권, 동남권, 대경권, 호남권, 충청권의 5대 광역경제권으로 나누어 정책 추진 단위로 삼았다.
그러나 중앙정부 주도(Top–down 방식)의 추진, 시도 간의 협력 부재, 통합적 광역 행정체제 구축의 실패 등의 여러 문제로 이후 정권에서 지속되지 못했다.
이번의 초광역권 논의는 지방 주도로 아래로부터(bottom-up) 시작되었으며, 광역통합 행정기구(광역특별지자체)의 제도적 구축까지 시야에 두기 때문에 종전과 다른 기대를 모으고 있다.
초광역권 협력과 통합행정체제의 구축은 쉬운 과제가 아니다. 일본에서 한때 유행했던 도주제(道州制) 논의는 현재 중단 상태이며, 프랑스, 독일 등에서도 기존의 몇 개 광역 주를 묶어 초광역주로 통합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유럽연합(EU) 등의 사례를 보면, 초광역정부의 창설과 통치 형태의 광역화(Region 정부)는 많은 갈등을 야기하기 때문에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고, 대신에 경제활동의 광역화와 협력의 네트워크화가 더 보편적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처럼 지방자치 역사가 길지 않고 협력의 관행이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초광역협력과 제도구축이 잘 작동할 것인지는 쉬운 과제가 아니다.
메가시티의 개념과 성공 조건
메가시티 개념은 학술적으로 충분히 정의된 개념은 아니다. 플로리다(Florida)에 따르면 메가시티(Mega City)란 2개 이상의 거대도시가 연담(conurbation)된 인구 500만 이상, 경제규모 3,000억 달러 이상의 광역 지역을 말한다.
그러나 혹자는 인구 규모를 1,000만, 경제규모는 1,000억 달러 이상으로 잡기도 하며, 우리나라의 서울에서 부산에 이르는 경부축을 하나의 메가시티 리전(Mega City Region)으로 잡기도 한다.
최근에 논의되는 메가시티란 일단 단일 대도시 중심의 대도시권(Metropolice)와 달리, 두 개 이상의 거대도시가 연속된 하나의 경제권을 이루는 지역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메가시티보다는 메가시티 리전(Mega City Region) 혹은 메가리전(Mega Region)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다소 용어상의 혼란이 있다고 하더라도, 메가시티 혹은 메가리전이 주목받는 이유는 오늘날 지식기반 경제에서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개별 도시나 대도시 혹은 국민국가가 아니라 보스톤-뉴욕-워싱턴 회랑 또는 상하이-난징-항저우 삼각지로 이어지는 메가 지역들이기 때문이다.
글로덴(Gluden)에 따르면 전 세계에는 40개의 메가리전이 있으며, 전 세계 경제활동의 약 66%를 생산하고 특허를 받은 혁신의 86%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플로리다(Florida)는 메가리전이란 단순히 큰 도시가 아니라, 인재와 자본, 혁신과 생산 및 소비시장이 집중된 곳이며, 기존의 도시권과 질적으로 다른 경제단위라고 말한다.
메가리전의 부상은 오늘날 탈 제조업과 지식서비스 산업의 성장으로 대변되는 디지털경제로의 전환 추세, 경제성장 요소로서 인적 자본과 지적 자본의 중요성 강화 등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한다.
지식기반경제에서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며 무형자산에 기반을 둔 가치창출이 중요하며, 다양한 산업 간의 융복합과 지식 및 인적 자산의 집적, 그리고 창의적 젊은 인재가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는 사회구조가 필요하다. 메가 리전은 이런 요인을 담아낼 수 있는 플랫폼이자 혁신성장의 발전소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공적인 메가리전이 되기 위해서는 초광역권의 중추 거점도시(메가시티)를 중심으로 글로벌 경쟁력이 가능한 수준의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여 지역의 산업 및 일자리 창출의 새로운 계기를 제공할 수 있는 전략과 구상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한 제도적 거버넌스(통치형태)와 협력 관행의 정착도 빠질 수 없는 조건이다. 사실 수도권을 제외하고 이런 메가리전의 조건을 갖추긴 쉽지 않다.
부울경(동남권) 초광역권 구상과 메가 토건프로젝트
대경권, 호남권, 충청권 여러 지역에서 메가시티 구상이 논의 중이지만, 가장 앞서가는 지역은 부울경(동남권)이다. 부울경은 작년(2021년 7월)에 부울경 특별지방자치단체 합동추진단을 발족하였고, 금년 중에 전국 최초로 특별지방자치단체 출범을 준비 중이다. 3개 시도 연구원 공동으로 동남권 종합발전계획 수립 전략 기본안도 작년 3월에 마련한 바 있다.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을 보면, 인구 1천만, 경제규모 약 491조 원의 동아시아 8대 경제권 진입을 비전으로 내걸고, 3개 시도 거점 대도시(부산, 울산, 창원)를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광역교통망을 확충하고 인재, 자본, 일자리 선순환 구조를 구축한다는 안을 담고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4개 부문의 발전 전략으로서 △산업부분의 그린 스마트 경제와 전략산업(조선, 수도, 미래모빌리티)의 육성 △인재 육성 부분의 초광역권 지역혁신 플랫폼 구축, 공유대학, 고등교육 혁신 △공간 부분의 1시간권 광역교통망의 구축 △거버넌스 부분의 특별지자체 설립을 제시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중 1시간권 광역교통망의 구축이 최우선 프로젝트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부경남과 부산, 울산 간 광역교통망, 가덕 신공항, 부산·진해 신항, 광역철도와 연계한 동북아 물류허브 등등 중심 사업으로 부각되고 있다.
초광역권 구축을 위해서는 당연히 원활한 광역교통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실제 동남권 발전계획 수립 공동연구(동남권 3개 시도의 공동연구보고서, 2021.3, 전략계획 및 부문계획)을 보면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망라돼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창원권 광역철도(2조 1000억 원) △울산권 광역철도(2조 6000억 원) △동남권 메가시티 급행철도(9000억 원) △동남권내륙(중순환) 철도(창원~김해~양산~부산)(1조 5186억 원) △동남권 대순환철도 ①(창원~김해~양산~울산~부산) 2880억 원 ②(김해~밀양~울산~부산) 2조 2880억 원 △남해안 고속철도 (목포~진주~창원~부산) 10조 9504억 원 등이 있다.
이 중 동남권 순환광역철도 등 상당한 프로젝트는 정부의 국가철도망 구축계획(2021~2030)에 이미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광역 지자체들이 자발적으로 연합하는 초광역권 동향의 근저에 중앙정부로부터 메가 프로젝트를 따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모처럼의 아래로부터의 자구노력이 중앙정부 재원에 의존하는 종래와 같은 타성적, 보조금 의존 발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우려도 나온다.
초광역 메가시티만 답인가? - 메가리전의 불경제와 역내 불균형
초광역권 메가시티는 이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최근 메가시티의 불경제(혼잡, 팬데믹 취약, 역내 불균형 등)가 부각되고 있다. 메가 공간적 규모에서 사회적 상호작용의 강도는 경쟁우위의 원천이지만 빠른 질병 전파를 가져오기도 한다.
최근에 재택근무 확산, 저밀도 분산 지향의 새로운 동향은 반드시 거대 대도시만 답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의 경우 포틀랜드, 오스틴과 같은 중소도시의 모범적 발전 사례도 적지 않다. 더구나 선택과 집중에 기반을 둔 메가시티 구상은 거점도시와 주변지역 간의 심각한 지역 내 불균형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OECD(2012)는 '모든 지역에서의 성장촉진(Promoting Growth in All Regions)'이란 보고서에서 대도시가 물론 소득수준이 높고 성장력도 크지만, 중소도시나 농촌지역도 이에 못지않게 발전하고 성장하는 지역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지역발전의 핵심은 대도시 집적이나 인구수 만이 아니라, 얼마나 지역자원을 잘 활용하고, 창의적인 인재를 불러 모을 수 있는가 즉, 지역의 창조력, 인재유치능력, 어메니티와 삶의 질, 라이프 스타일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거점 대도시의 역할을 중시하는 초광역 메가시티 전략은 지역발전략의 모든 답이 될 수 없다.
메가시티 중심의 선택과 집중의 논리는 오히려 농촌으로부터 인구 유출을 더 가속화하고 소멸을 더 촉진시킬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도시, 중소도시, 농촌의 '모든 지역에서의 고른 성장촉진(Promoting Growth in All Regions)'과 연계발전이 지역발전전략의 근간에 놓여야 한다. 초광역권 메가시티 전략만이 유일한 답은 아니다.
■ 저자 소개
박경 교수는 내발적 발전론과 지역산업정책을 연구해 왔으며, 한국공간환경학회 및 한국지역정책학회 회장, 목원대학 금융경제학과 교수 및 동경대 경제학부 객원연구원, 멜버른 대학 경제발전·지리·인류학부 초빙강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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