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사망 책임자들은 '뱀의 혀'로 고인에게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김용균 재판 의견서 ③] 경동건설 노동자 고 정순규 아들 정석채 씨

2018년 12월 11일 새벽,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석탄운송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던 스물넷 하청 노동자 고 김용균 씨가 기계에 끼어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씨의 소속 회사인 한국발전기술이 만든 컨베이어벨트 점검 작업 2인 1조 지침은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전부터 제기됐던 하청 노동자들의 컨베이어벨트 안전 설비 개선 요구도 여러 번 묵살됐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 법인을 비롯 이 사고의 책임자에 대한 1심 선고가 다음달 10일로 예정돼있다. 이를 앞두고 시민 1만여 명이 법원에 제출할 의견서를 썼다. 고 김용균 노동자 산재사망의 책임자를 엄중히 처벌해 한국사회에 다시는 그와 같은 비극을 당하는 이가 없도록 해달라는 마음을 재판부에 전하기 위해서다.

김용균재단이 모은 김용균 재판 의견서 중 일곱 편을 싣는다. 앞의 네 편은 한국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부인 오은주 씨, 건설노동자 고 김태규 누나 김도현 씨, 건설노동자 고 정순규 아들 정석채 씨,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 씨 등 산재유족이 쓴 것이다. 뒤의 세 편은 이들의 곁을 지켜온 노동시민사회단체 사람들의 의견서로 예정돼있다.

존경하는 담당검사님과 판사님.

저는 2019년 10월 부산 '경동건설' 현장에서 산재사망으로 돌아가신 고(故) 정순규님의 아들 정석채라고 합니다. 2021년 12월 21일 오전 10시에 시작한 고 김용균 결심공판은 저녁 8시쯤 돼서야 끝이 났습니다.

용균 어머님은 피눈물로 울부짖으며 발언하시곤 몸을 휘청거리며 균형마저 잡질 못 했던 거 기억하십니까? 108호 법정은 슬픔이 가득한데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 가해자들은 최후변론에서 자기들이 힘들고 죽겠다며 뱀의 혀로 헛소리나 늘어놓았습니다.

고 김용균 청년노동자와 유가족들은 왜 두 번, 세 번 또다시 죽임을 당하며 재차 기업살인을 당해야만 할까요? 왜 유가족은 잠도 못 자고 피눈물 흘리는데 가해자들은 두발 뻗고 고인에게 책임전가하며 법으로 문제없다며 활개치고 다니는 세상일까요?

수많은 산재사망 유가족들이 뼈저리게 아는 건 '과실치사'란 말조차 모순덩어리라는 점입니다. 저희 아버지처럼 고 김용균의 죽음은 과실들이 너무나도 축적되고 수많은 잘못이 모여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용균이는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의 기업살인으로 희생됐습니다. 가해기업은 '위험한 거 빤히 알면서 설마 죽겠어?' 라는 생각으로 노동자들을 소모품 취급하는 살인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과실치사'는 의도적 살인입니다!

작년 저희 아버지 1심 선고 전 반성없는 경동건설 가해자들은 모든 안전조치, 비계 안전조치를 하지 않았는데도 재판부에 '안전관리를 위반했더라도 정 씨의 죽음엔 본인 책임이 크다며 고 정순규 아들이 여기저기 알리고 다녀서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기 힘들다"며 반성문 같지도 않은 탄원서들을 제출하였습니다.

한국 기업의 가해자들은 매뉴얼을 공유하는지 '용균이가 왜 사망했는지 모르겠다', '그런 일 시킨 적 없다', '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등 고인에게 책임전가하는 방식이 어쩜 이토록 똑같을까요?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 백남호 전 한국발전기술 사장 이하 모든 가해자들은 1월 11일부터 같잖은 탄원서들을 재판부에 제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반성없는 가해자들이 가식적인 탄원서가 정말 진정성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죄는 사죄할 타이밍을 놓치면 안됩니다.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다 줘놓고 거짓된 사죄의 탄원서를 제출하는 건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에 불과합니다.

검찰의 구형은 유가족으로서 너무나도 터무니 없지만 다가오는 2월 10일 선고를 통해 용균이의 죽음의 진실이 진상규명되길 간절히 바라며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게, 강력하고 엄중한 판결로 고인에게 책임전가하는 가해자들을 모두 엄벌하여 주시길 간곡히 고개 숙여 빕니다.

2022년 1월 13일

탄원인 정석채

▲ 지난해 10월 27일 부산고등법원 앞에서 경동건설 노동자 고 정순규 씨 2주기에 정 씨 산재사망 책임자들에 대한 항소심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가운데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이가 고인의 아들 정석채 씨. ⓒ노동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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