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터에 '휴게실'을

[연속기고] '일터에 쉼표를' ③ 노동자의 건강권과 안전권, 그리고 쉼

아무리 체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할 수 없다. 때가 되면 끼니도 챙겨야 하고, 작업하며 쌓인 피로를 조금이나마 덜어내기 위해 숨 돌릴 틈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휴게시간을 법으로 보장하지만, 정작 휴게시간에 맘 편히 쉴 수 있는 휴게공간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공단의 현실이다. 사업장 내 휴게공간 설치를 의무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되어 8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설치기준을 규정할 시행령에서 작은 사업장은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영세하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넘어, 모든 노동자에게 쉼을 권리로 보장할 것을 요구하며 반월시화공단노동조합 월담(이하 월담노조)은 '일터에 쉼표를' 새기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 쉼표의 의미를 함께 나누길 바라며 월담노조와 현장 노동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 월담노조 홈페이지 : https://goover20000.tistory.com/)

근로계약에서 도출되는 사용자의 의무 중에는 '안전배려의무'가 있다.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부담하는 근로계약상의 의무로서, 노동자가 노무제공을 위해 설치하는 장소, 설비 또는 기구 등을 사용하거나 사용자의 지시하에 노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노동자의 생명, 신체 등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도록 배려하여야 할 의무를 뜻한다.

안전배려의무는 곧 건강권과 안전권

사용자의 안전배려의무는 노동자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연결되어 있다.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하는 주체는 사용자인 것이다.

안전배려의무는 산업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여야 할 의무라고 읽히기도 한다. 건설업 현장에서 추락방지판 및 안전구조물을 설치하여 노동자가 추락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할 의무, 제조업 현장 등에서 노동자가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지 않도록 관리하여야 할 의무, 배전·전기 관련 현장에서 노동자가 감전되지 않도록 장비를 지급해야 할 의무 등 주로 산업재해를 방지하고 예방하기 위한 의무를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

그렇다면 근무시간 중 화장실에 갔다 미끄러진 경우에도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침해당한 것일까. 아니면 일을 하다가 깜빡 졸아 다치는 경우에도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침해당한 것일까. 누군가는 '노동자 개인의 잘못'이라고 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침해당한 게 맞다.

민주노총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지난해 3월 '여성노동자 일터 내 화장실 이용 실태 및 건강영향 연구'를 시행한 결과, 여성 노동자의 58.9%가 화장실과 관련된 심리적 문제가 발생한다고 답했다. 화장실이 너무 멀거나, 너무 좁거나, 더럽거나, 고장이 났거나, 화장실에 갈 시간이 없는 등의 이유로 화장실 이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83.1%가 수분섭취를, 74.5%가 음식물 섭취를 제한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사소하게 여겨졌던 화장실 문제도 노동자의 '건강권'에 해당한다. 사용자가 화장실 관리를 하지 않아 미끄러운 상태로 방치하였고, 노동자는 짧은 휴게시간 중에 짬을 내어 급하게 화장실에 갔다가 미끄러져 다쳤다면,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된 것이다.

그렇다면 '쉼'은 어떨까. 노동과 휴게의 관계는 굉장히 밀접하다. 제대로 쉴 수 있어야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다. 양질의 쉼을 갖지 못하는 노동자는 일하며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2022년 8월부터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를 의무화한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과거에는 휴게시설 설치가 노동자 복지의 문제라고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부도 '복지'가 아닌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직결된 문제인 것을 인정하였다.

2018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진행한 '사업장 휴게시설 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사업장 10곳 중 6곳은 휴게시설이 없거나 부족했고, 휴게시설이 없는 경우 작업장이나 외부 공간(자판기 주변, 옥상, 본인 차량, 계단 등)을 휴게를 위해 이용한다. 원·하청 업체 간 휴게시설에도 차이가 있어서, 하청업체의 휴게실은 작거나, 시설이 낙후했거나, 청결하지 않거나, 비품이 적거나, 악취가 난다는 응답이 많았다. 휴게공간이 있어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2018년에 비해 현재는 상황이 많이 나아졌겠지만, 작은 사업장의 경우에는 아직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쉼'을 보장하라

상시근로자 수가 5인 미만인 작은 사업장은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의 규제를 거의 받지 않는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다 똑같은 노동자인데 예외로 취급되고, 사용자들은 사업장을 쪼개는 등의 꼼수로 '5인 미만'으로 유지하려고 하는 경우도 많다. 휴게시설 설치 의무를 규정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도 작은 사업장의 경우 그 의무에서 제외시킬 가능성이 높다. 상시근로자가 적다고 해서 휴게시설을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다. 휴게시설을 만들지 않아도 될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장의 규모, 상시근로자의 많고 적음을 기준으로 갈라낸다.

노동자는 모두 사람이기에 안전하게 일할 권리,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갖는다. 몸과 마음을 녹이며 휴식을 취할 수 있어야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고, 근골격계질환, 심혈관계질환 등 각종 직업병의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작은 사업장과 큰 사업장을 막론하고 '쉼'을 누려야 하는 이유다.

▲ 휴게시설 의무 설치가 담긴 개정 산안법 선전물.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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