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난 호소하는 미국 기업들, '노동 우위' 시대가 온 걸까

노동쟁의 증가, 해고 등 노동조건 악화 반영…대면 업종 기계화 가속

팬데믹 초기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보호 받지 못한 채 해고됐던 미국에서는 지난해부터 오히려 노동력이 부족하다며 기업들이 '구인난'을 호소하고 있다. 노동 쟁의도 늘고 임금도 오르며 언뜻 보면 '노동 우위'의 시대가 온 듯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노동의 현재와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고 본다. 돌봄 제도 미비 때문에 노동시장에 복귀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여전히 많고 사업자들은 대면 업종에 기계 도입을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됐던 2020년에 많은 노동자를 해고했던 미국 기업은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경기가 회복 신호를 보인 지난해부터는 오히려 지속적인 구인난을 호소해 왔다. 미 노동부가 4일 발표한 지난해 11월 구인·이직보고서를 보면 기업들의 구인건수는 1060만 명으로 전월(1109만 명)보다 감소했지만 팬데믹 이전인 2년 전 같은 기간(691만 명)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같은 달 퇴직자 수는 453만 명으로 2000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26일~올해 1월1일 미국의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는 20만7000건으로 팬데믹 이전 수준(22만건)보다도 낮아진 점 등을 볼 때 노동자들이 일터 복귀가 어느 정도 이뤄진 것으로 보이지만, 팬데믹 이전으로의 완전한 회복은 두고 봐야 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의 구인난을 이용한 더 좋은 노동조건, 더 나은 삶의 질을 찾아 퇴직하는 경우나 팬데믹 기간 주식, 코인 등 자산가격의 급격한 상승으로 조기은퇴가 가능하게 된 경우에 대한 보도들이 단적인 사례다.

일터에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팬데믹 상황에서 학교가 폐쇄되기도 하면서 돌봄 제도가 미비한 미국에서 특히 자녀를 둔 여성 노동자의 노동시장 복귀가 늦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 노동부 통계를 보면 팬데믹 기간 동안 미국의 실업률은 2020년 4월 가장 높았고 당시 남성 실업률에 비해 여성 실업률이 더 높았다. 4월에 20세 이상 남성 실업률은 13.1%인 데 비해 여성 실업률은 15.5%였다. 미국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는 2020년 10월 발간한 자료에서 여성이 더 많이 실직한 이유로 팬데믹의 영향을 많이 받은 저임금 대면 서비스 판매직에 여성이 많이 근무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보육 부담을 들었다. 미 비영리단체 퓨자선신탁은 2020년 2월부터 8월 사이에 12세 이하의 자녀를 둔 엄마의 220만 명이 일자리를 잃은 반면 같은 조건의 아빠는 87만 개의 일자리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육아휴직 및 공공 보육 지원을 포함한 GDP 대비 가족관련 혜택 공공지출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OECD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 미국은 제도로 보장된 유급 육아휴직 기간이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임금 보육업종 종사자들이 구인난으로 임금이 오른 다른 직종으로 이직하면서 보육업계의 구인난이 심화돼 어린 자녀를 둔 부모의 양육부담이 심해지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해 9월 보도했다.

여기에 팬데믹으로 국가 간 이동이 제약되며 이주노동력을 충원하는 것이 여의치 않고 오미크론 변이 확산은 구인과 구직 모두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일자리는 많고, 노동력은 부족해 보이는 상황에서 노동자의 힘이 강해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부터 스타벅스와 아마존 등 대기업에서 꾸준히 노조설립 시도가 발견되기도 했고 맥도날드, 버거킹 등 패스트푸드 업체 직원들의 단기 파업부터 탄광 파업, 시리얼 제조사 켈로그, 건설기계업체 존디어 노동자들 등 굵직한 파업도 이어졌다. 코넬대 노사관계대학원(ILR)은 지난해 미국 전역에서 365건의 파업이 이뤄졌다고 집계했다. 노동조합 가입률은 2020년 10.8%로 그 전 해 보다 0.5%포인트 상승했다. 임금도 상승해 지난달 미국 노동자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전년 동월보다 4.7% 올랐다.

구인난에 힘 입은 '노동 우위'의 시대가 온 것일까? 전문가들은 '구인난'은 사실이지만 '노동 우위'에 대해서는 따져 볼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노조 조직률이 올라가고 쟁의가 늘어난 것이 경기가 반등하며 자연스레 노동자의 힘이 강해져서라기 보다는 팬데믹 상황에서 해고와 감염 위험 등 노동 환경이 극단적으로 열악해지면서 나타난 반작용에 가깝다는 것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경제가 호황일 때, 그리고 친노동적 정부가 들어섰을 때, 즉 노동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을 때 노조 활동이 활발해지기도 하지만, 고용불안이 높아졌을 때도 활발해지는 경향이 있다. 노조라도 만들어서 내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위기의식이다"라며 "지금 미국의 상황은 후자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코로나19 유행으로 대면 서비스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키오스크 등 대면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는 디지털화 경향이 가속화되는 것도 노동자들에게는 악재라고 볼 수 있다. 맥킨지글로벌연구소는 지난 2월 발간한 '코로나19 이후 노동의 미래' 보고서에서 "코로나19로 특히 물리적 근접성이 높고 사람 간 상호작용이 많은 작업장에서 자동화 및 인공지능(AI)의 채택이 가속화될 수 있다. 2020년 7월에 기업 고위 경영진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글로벌 설문조사에서 3분의2는 자동화 및 인공지능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고 답했다"며 "많은 기업들이 이미 작업장 밀도를 줄이고 수요 급증에 대비하기 위해 창고, 식료품점, 콜센터, 제조 공장에 자동화 기기와 인공지능을 배치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많은 기업들이 팬데믹 상황에서 재택근무나 원격근무를 경험하면서 풀타임, 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기보다 프리랜서 등 불안정한 형태의 고용을 더 쉽게 고려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 연구위원은 "정규 고용 등 노동시장에서 보호도가 높은 유럽에 비해 파트타임이 많고 해고가 쉬운 미국에서 구인난의 경향이 심하다. 결국 노동에 대한 사회적 보호조치가 잘 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가 확인된 것"이라며 "팬데믹이 끝난 뒤 제도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짚었다.

▲지난달 17일 미국 미시간주 배틀크릭에서 파업 중인 시리얼 업체 켈로그 노동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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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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