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균형발전과 혁신의 만남 필요한 때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불평등, 균형발전, 혁신, 디지털 전환을 위한 공간경제 연구 필요

2021년 경제지리학자의 시선들

2021년 한해도 코로나로 인해 잃어버린 일상 속에서 우리나라의 경제와 공간변화를 직시하는 많은 경제지리학자의 글들이 소개되었다. 글로컬리제이션, 관광, 교육격차 등 코로나의 영향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제시됐고, 플랫폼 경제, 메타버스, 모빌리티 등 다가오는 신세계에 대한 고민도 유익했다.

인구감소와 저출산 문제, 지방소멸, 장소와 빈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등의 사회문제에 대한 냉철하면서 따뜻한 접근 또한 경제지리학 연구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나아가 접경지역과 해외지역에 대한 관심, 국가의 공공성 검토 또한 경제지리학의 지평을 확대하는 좋은 시도였다.

2022년 새해는 코로나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정치적인 큰 변화의 시기이면서 경제적으로는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공포와 금리 인상, 세계 최고의 가계부채로 인한 불확실성 등 너무나 큰 과제들이 놓여 있는 격변의 시기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거대 트렌드의 변화는 반드시 공간경제에 깊고 넓은 변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고 이것 또한 경제지리 연구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올해도 경제지리학자의 시선에 커다란 기대와 관심을 갖게 된다.

▲ 2018년 2월 당시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에서 마련한 문재인 정부 국가균형발전 비전과 전략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경제지리 연구의 위기와 반성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필자가 지리학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지리학을 해서 뭐하냐는 질문에 당황한 적이 많았다. 그 질문의 의도는 잘 알지만 당시 일반사람들이 왜 그런 인식을 갖게 되었는지 한편으로 궁금하기도 했다.

사실 지리학이란 학문의 탄생과 발전 이면을 들여다 보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로 지리학이 제국주의 학문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즉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관리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현재도 지리학이란 학문을 선도하는 나라 대부분은 모두 과거 제국주의 종주국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리학은 쓸모없는 학문이 아닌 실용성의 전통적 아이덴티티의 고급학문인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지리학의 실용성에 대한 의구심이 성립하는 것은 바로 고등교육에서 지리학의 시작이 교사 양성을 위한 목적에서 비롯되었다는 점과 산업화와 도시화 이후 급증하는 공간정책과 계획 수요에 지리학 분야가 적실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짐작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이제는 주변 상황이 급변함에 따라 지리학, 특히 경제지리학자의 역할과 위상은 이전과 전혀 다르다는 점을 실감함과 동시에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한편 오늘날 경제지리 연구가 심대한 도전과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첫 번째는 현재의 경제지리 학문역량의 문제로서 우리 사회경제의 급변하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비판적 대안 모색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미래의 경제지리 학문역량의 문제로서 경제지리학자의 재생산 구조가 상당히 취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후자는 우리 경제지리학계의 고민이라 이 글에서는 논의하지는 않겠다.

언젠가부터 많은 경제지리 연구들이 사회경제의 메가 트렌드 변화에 초점을 두고 그것을 추종하는 연구를 우선시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이론적 혁신과 함께 실천적 대안은 거시담론적 연구결과보다 구체적인 데이터 분석을 통한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진단에서 출발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급변하는 정책환경 속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과거 광역경제권과 행복생활권 정책의 시작에서처럼 정책이 먼저 앞으로 달려가고 나서 학술적 논의가 뒤따라가게 되었고, 인위적인 공간 단위 설정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실감하면서 정책의 실패를 경험했다.

최근에는 초광역권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 또한 산업과 일자리라는 기본적인 생산활동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공간 단위 설정에 대한 기초 논의와 합의가 없는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예전 정책 실패와 같은 우려를 낳고 있다.

사회경제적 현상의 변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진단하는 것은 지속적인 학문적 관심과 분석 노력을 수반하는 작업이다. 지난번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에 당황했던 노벨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스>에 "우리가 모르는 우리나라"(Our Unknown Country)라는 기고문을 통해 탈산업화를 사례로 설명하였는데, 기득권을 잃고 지난 20여 년간 소득 감소를 경험한 백인 노동 계층의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분노를 직시하지 못했다는 점이 원인이었음을 지적했다.

2000년대까지 꾸준한 탈산업화로 인한 미국 북동부에서 일자리의 실제 감소에 대해 누구도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미국 제조업 고용은 1979년 1940만 명에서 2011년에는 1150만 명으로 약 30년 사이에 790만 명이나 줄어들었다.

제조업은 1970년대 이후 서비스화와 지식기반화에 따라 비중과 위상이 줄어들어 왔지만, 실질적인 생산과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유지되면서 미국 북동부를 중심으로 좋은 일자리의 토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그러나 2000년 글로벌리제이션의 적극적 활용으로 인해 미국 내 제조업의 침체가 이어졌는데, 여기에 대한 학자들의 무관심이 결과적으로 '그들이 모르는 그들의 나라'를 초래했다.

우리도 몇 년 전 조선산업의 위기에서 촉발되어 탈산업화(산업 공동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고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이란 지원제도도 만들어 추진하고 있다. 다만 미국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지속적인 실태분석과 사회경제적 함의를 도출하는 작업이 여전히 필요할 것이라 본다.

2022년 주요 전망과 실사구시 경제지리 연구

올해도 수많은 사회경제적 난제들이 점차 심화되면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고, 그것에 대한 학문적 이해와 진단의 필요성도 아울러 높아지고 있다. 경제지리 연구의 위기의 원인 중에는 학문 인적역량의 절대적 부족과 더 나아가 재생산 구조의 취약성이 있기에 필자는 '경제지리학자의 시선'이 우리 학문의 내적 역량을 충실히 할 수 있는 효과적인 채널로 기능하기를 기대한다.

보다 진일보된 학문적 이해와 진단을 토대로 대중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우리나라 사회경제의 핵심주제에 대한 연구자의 관심과 실천이 함께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이해와 문제 제기가 절실히 필요하다. 불평등이라는 문제는 오랜 현상이지만 오늘날 심화되는 이면에는 바로 공간의 역할이 함께 하기 때문이란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리처드 플로리다의 지적처럼 불평등이 공간적 격리와 결합될 때 부와 빈곤의 세습이 발생하고 더욱 계급화된 사회로 진전된다는 경고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공간적 불평등에 대한 이해와 진단 및 대안을 마련하고 공유하는 노력이 우선 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균형발전의 문제에 대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과거 중앙정부 주도의 균형발전정책이 이미 한계에 와버렸고, 이제는 지방 스스로 행정구역 통합까지 거론하며 각자도생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백약이 무효였던 경험에 비추어 새로운 판을 짜지 않으면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또 다시 달려 나갈 새로운 정책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필요한 실태 분석과 대안 모색에 대한 논의를 서둘러 시작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특히 초광역권의 설정과 수도권-비수도권 관계 재설정 등 필요한 주제에 대한 해답을 준비하는 경제지리 연구가 지금 필요하다.

경제지리 연구에서 그동안 핵심이 되어 온 주제가 바로 혁신이었다. 어쩌면 지나간 유행어처럼 간주되고 있지만, 수많은 해외 성공사례에서 일관되고 시사하는 바는 바로 지역과 도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하는 것은 혁신밖에 없다는 점이다.

특히 혁신역량 제고 측면에서 취약한 우리 현실을 비추어 볼 때, 지난해 말 박경 교수의 글에서 제시된 혁신과 복지의 선순환을 이룬 북구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높다. 혁신에 기반한 탈추격형 경제 전환을 위해 R&D 역설을 극복하고 대학의 혁신역량과 역할을 바로잡기 위해 무엇이 실질적으로 필요한지도 서둘러 논의될 필요가 있다.

끝으로 향후 우리 사회경제를 주도할 플랫폼 경제에서 메타버스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전환과 공간적 함의에 대한 관심과 고민도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가상공간의 확장과 NFT를 통한 디지털 자산화 경향은 지역의 입장에서 향후 어떻게 생존하고 더 나아가 발전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이러한 고민도 이제 시작이기에 보다 많은 경제지리학적 관심과 분석이 2022년에도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 필자 소개

이원호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는 미국 시애틀 워싱턴대학교 지리학과에서 지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또한 국토지리학회 및 한국지역정책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2021년부터 한국경제지리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분야로는 도시빈곤과 불평등, 발전연구와 지리학, 공간혁신과 지역산업발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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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한국 지리학내 전문학회로 발족한 한국경제지리학회는 국내외 각종 경제현상을 공간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동시에, 연구 역량을 조직화하여 지리학의 발전과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지리학회는 연 2회 정기 학술 발표대회와 국내외 석학을 초빙해 선진 연구 동향을 토론하는 연구 포럼, 학술지 발간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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