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이 안 중요하다는 건 아닌데 좀 과하지 않냐고요?

[20대 여성, 페미니즘을 말하다 上] 지금 당신 눈 앞의 그 20대 여성이 페미니스트입니다

'페미니즘이 안 중요하다는 건 아닌데 좀 과하지 않나?'

이 기사는 이런 말들에서 시작됐습니다. 정확하게는 말의 내용이 아니라 상황에서요. 이런 발화를 하는 이들은 거의 남성, 대체로 중년 이상의 남성들입니다.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젊은 여성이 '바로 그 페미니스트'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기에 이런 말을 주저 없이 건넬 수 있는 것이지요. 페미니스트는 결코 내 앞에 앉아 있는 '상식적인' 여성이 아니라 일부 '극단적인' 여성이라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신 앞의 바로, 그, 지금도 웃으며 당신의 말에 맞장구 쳐 주는 그 여성이 페미니스트일 수 있습니다. (인터뷰이들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당신의 말에 일일이 반박하지 않고 그냥 적당히 끄덕여주고 마는 그 여성은 이미 당신을 "거른" 것입니다. 체로 이물질을 걸러냈다고 표현할 할 때의, 그 의미로요.) 특히 지금의 20대 여성들은 이전 그 어떤 세대보다 페미니즘과 친숙한 세대일 수 있습니다. 2010년대 이후 20대에 들어선 이 여성들은 강남역 살인사건, 미투 운동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20대를 보냈습니다. 페미니즘, 그리고 여성혐오라는 용어는 이들에게 이제 대중적인 용어입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당신 앞에 앉아 묵묵히 일하는 있는, 사회 초년생 20대 여성들과 페미니즘에 대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편집자

"'여성혐오 범죄' 우리 때 생긴 말…페미니즘 모를 수 없죠"

지난달 25일 서울 마포구 프레시안 회의실에 4명의 동갑내기 20대 여성이 모였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동창인 이들은 27살(인터뷰 당시 26살)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학을 졸업해 인터뷰 당시 기준 2~3년차 직장인, 혹은 대학원 석사과정생으로 "아직 막내라 사무실에서 커피머신 청소를 담당"하며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이들이다. 대학에서 인문사회학이나 여성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그 때나 지금이나 적극적 정치 참여를 하는 일도 거의 없고 평소 다른 여성, 남성들처럼 공부나 직장 업무 등 내 앞에 주어진 일을 하느라 바쁘다. '하지만' 이 네 명에게 페미니즘은 멀리 있지 않았다.

희수(가명, 대학원생) : 저희 대학 다닐 때 강남역 살인사건이 터졌잖아요. 미투 운동도 있었고.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이 없을 수가 없었죠.

지민(가명, 직장인) :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 같은 데서 강남역 사건, 페미니즘, 여성혐오 이런 걸 모르면 무지하다는 얘기를 듣는 때였어요.

세진(가명, 직장인) : 당시 서로 얘기를 엄청 많이 나눴어요. 대학 내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 논쟁도 활발했고요.

강남역 살인사건은 2016년 5월 서울 강남역 인근 노래방 건물의 남녀 공용 화장실에 숨어 있던 30대 남성이 화장실에 들어 온 처음 보는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으로, 당시 살해당한 여성에 대한 추모 움직임으로 시작해 '여성 혐오', '여성 혐오 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커졌다.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폭로하는 운동인 미투 운동은 2017년부터 주로 소셜미디어(SNS)에 해시태그(#MeToo)를 다는 방식으로 전세계적으로 퍼졌다. 2014년 대학에 입학해 길게는 2020년까지 대학에 머물던 이들에게 이 사건들은 대학 시절 벌어진 가장 큰 사회적 사건 중 하나로, 또래들이 페미니즘을 '모를 수가 없다'는 것이 이들의 이야기다.

▲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이 일어난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시민들이 추모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기자 : 지금 20대가 다른 세대보다 페미니즘에 친숙하다고 생각하세요?

지민 : 사실상 우리 세대 때 여성혐오 범죄라는 말이 생겼잖아요. 물론 오랫동안 그런 종류의 범죄가 있어 왔겠지만 '여성혐오 범죄' 이렇게 이름이 붙여져서 기사도 나가고 한 게. 20대 초반에 여성혐오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으니까 관련해서 생각을 많이 할 수 밖에 없었죠. 미투도 그렇고. 그 때 우린 대학생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그래서 오히려 더 시사적인 문제를 여유롭게 생각할 시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가영(가명, 직장인) : 지금은 또 직장 다니면서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는 시기니까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된 윗세대에 비해 직면하는 문제가 많고 그만큼 맞서 싸울 게 많아요. (페미니즘이 부각되는) 지금 시대 분위기와 우리가 사회 초년생이 된 시기가 맞아 떨어지면서 지금 20대가 윗세대에 비해 두드러지게 페미니즘에 친숙한 성향을 보인다고 생각해요.

"여자애들 대부분이 자라면서 성폭력 겪어…그 때 그 불쾌감 설명해 준 것이 페미니즘" 

강남역 사건과 그 이후 급증한 페미니즘 담론이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그 담론을 흘려보내지 않고 공감하고 체화한 것은 페미니즘이 이들 삶의 어떤 부분을 설명해 주고 그에 대한 언어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모르던 유년기와 청소년 시절에 겪었던 어딘가 조금, 혹은 많이 불편해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몰랐던 성차별적, 그리고 성폭력적 경험에 대해서 말이다. 

희수 : 초등학교 때 남자아이들한테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어요 그 때 저도 그 아이들의 행위가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몰랐고 다른 여자아이들도 몰라서 그저 "너네 뭐해? 뭐해?"하고 묻기만 했고요.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얘기는 못했어요. 기분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 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가영 : 초등학교 때 길을 걸어가는데 웬 남자 어른이 붙잡더니 '너 이거 해 봤니?' 하고 손가락 사이로 손가락을 넣는 시늉을 했어요. 학원에 가서 애들한테 '혹시 이게 뭔지 알아?' 하고 물어봤는데 남자애들이 아는 것 같은데 안 알려주더라고요. 이런 건 여자애들 거의 모두가 겪고 자라지 않나요?

희수 : 어릴 때 성추행을 당했을 때 뭔지도 몰랐지만 불쾌한 감정이 들잖아요. 그런데 페미니즘이 이 불쾌한 감정을 설명해주는 학문이었어요. 일단 이 감정이 왜 드는 것인지, 그리고 이게 무엇인지 알려주고, 이런 감정이 들었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알려주고요.

가영 : 고등학교가 여자보다 남자가 훨씬 더 많은, 남초 환경이었어요. 일베(소수자 혐오 등의 비판을 받은 극우성향 커뮤니티 사이트) 하는 애들이 정말 많았고요. 그런 애들이 항상, 반복적으로, 늘 잘못된 행동을 하니까 이게 잘못된 행동 같다고 어렴풋이 생각은 했어요. 남자애들이 온라인으로 그룹 대화방을 만들어서 여자애들을 대상으로 '배출한다'면서 성희롱하고요, 성적인 말을 담은 쪽지를 보내기도 하고, 아무 말 없이 다가와서 껴안기도 하고요. 그러다 대학에 와서 고등학교 때 일베 하는 남자애들 때문에 불편했던 점, 그 아이들이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둥 했던 것들을 교양 수업 시간에 리포트로 내면서 페미니즘에 눈을 떴던 것 같아요. 그 때는 인지하지 못했던 성차별적인 말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 거죠.

세진 : 페미니즘이 학문이라기보다 일상적인 것을 용어화하고 기록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겪은 여러 상황을 명확히 기술해 주는 학문이라는. 이미 알고 있던 걸 구체화해 준 느낌이 컸죠. 내가 경험했던 것, 또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공감을 폭을 넓혀주는, 공감의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들은 여성혐오 관련 사건이나 기사를 꿰고 있거나 온라인상에 넘쳐나는 여성비하 댓글이나 게시글을 찾아 읽거나 할만큼 최근 담론의 흐름에 민감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이들마저 여성혐오 담론이 만연하다고 느낀다. 그저 이직준비나 학업 활동 등을 하는 등 일상생활을 하는 데 이런 담론이 불쑥불쑥 개입하기 때문이다.

가영 : 최근 이직준비를 하면서 같은 업계 이직 희망자들이 모인 오픈 카톡방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서로 다 남자라고 생각했는지 기본적으로 형님, 형님 하고 부르는 분위기더라고요. 여성혐오, 여성비하 게시글이 막 올라오는데 제지하는 사람이 없고요. 신나서 흐름을 타면 운영자가 한 번씩 그만하라고 하는 정도.

희수 : 온라인상에서 여성혐오적인 댓글이 판을 치잖아요. 싸워주는 사람들이 있긴 한데 대부분 여자들은 일단은 무시하죠.

가영 : 그런 댓글 이기려면 똑같이 해야 돼요. 똑같은 시간을 써야 하는데 너무 쓸데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도 무시해 오긴 했는데 한 번은 참지 못하고 댓글을 단 적이 있어요. 그러고 나니까 거기 상주해 있는 듯한 남자들이 엄청나게 몰려 들어서 공격을 하더라고요. 그거 받아치려면 똑같이 무논리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어요.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지민 : 정상적인 댓글이 많아지긴 해야 하는데. 페미니즘을 모르는 사람이 다수라면, 여성혐오적인 댓글에 휩쓸리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게 여론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됩니다.

희수 : 댓글에서만 그러는 게 아니라 진짜 실제 세계에서 공격이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학교 다니는 친구에게 들었는데, 논문 같은 학술적인 작업에 대해서까지 마음에 안 든다며 혐오 옹호자들이 학교에 농성 트럭을 몰고 와서 집필 교수 나오라는 둥 몇 시간이고 소리지르며 시위한다고 하더라고요.

"페미니스트가 사회악? 그 사람부터 거를래!"

이들은 여성혐오적 발화가 온라인상에서만 그치지 않고 오프라인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그에 맞서는 페미니즘, 그리고 페미니스트는 '매도'되고 있다고 느낀다. 페미니즘이 "사회악"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여성혐오적 발화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페미니즘 전체를 소위 '래디컬 페미니스트'로 불리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행위로 축소해 매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민 : 지금 '페미니즘'이라고 얘기되는 페미니즘이 소위 '래디컬'이 많은 거죠. '래디컬'은 지금 많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잖아요. 단적으로 회식 자리 같은 데서 저는 페미니즘 지지한다고 얘기 못할 것 같아요.

희수 : 온라인 커뮤니티 같은 데 보면 '여자친구가 페미니스트면 어떡할 거야?' 하는 글이 많이 올라와요.

일동 : 그 글 쓴 사람부터 거를래! (웃음)

희수 : (웃음) 물론 '너부터 거를래' 하는 댓글도 있는데 대부분의 댓글은 '그러면 싫지' 하고 달리더라고요. 페미니즘이 사회악인 것처럼 생각하는 남자들이 많은 것 같아요.

세진 :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이 대체 뭐지? 저도 유학 갔다 돌아온 친척이 '한국 페미니즘은 이상한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가영 : 그들은 '페미니즘이 성평등이 아니라 여성우월주의를 주장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페미니즘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온라인으로 떠도는 말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거죠. (사회 분위기가 부정적이니까) 여자들도 페미니즘에 대해 혼란스러워 한다고 느껴요. 최근 유튜브에서 대한항공 유니폼 연상되는 옷을 입은 여성 영상이 논란이 됐잖아요. 거기 보면 불편함 호소하는 여자들 댓글이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으로 시작하는 걸 많이 봤어요. 그런 콘텐츠를 보고 여성이 성상품화되고 있다고 느끼고 그런 방면에서 불편함을 느낀다는 게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것들인데 그런 불편함을 호소하면서 굳이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쓰다니.

희수 : 맞아요. 제가 겪은 20대 여성 대부분이 성폭력이나 성차별이 없어져야 한다고 보는데, 그건 자기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페미니스트 사상을 선호하고 옹호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20대 남성들은 여성들이 말하는 성차별이나 성폭력적 경험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네가 겪은 건 (성별 권력관계에 따른 구조적인 폭력이 아니라 개별적인) 범죄'라고 말해요. 외모 평가에 기분 나빠 하면 '네가 예민한 거 아냐' 하고 넘기는 식이죠. 이렇게 비교해 보면 누구는 페미니스트고 누구는 아니다 할 것 없이 여성들 대부분이 페미니즘 사상에 동의하는 거죠.

가영 : 페미니즘에 대해 엄청 공부를 해야 되고 문턱이 있는 것 같아서 여자들이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기를 주저하고 혼란을 느끼는 것 같은데, 저는 성차별적인 것들, 여성혐오적인 것들에 대해 어느 한 부분에 불편함을 느끼면 그게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해서, 사실 우리나라 여성 모두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요. 어떤 여성한테 '너 페미니스트야?' 하고 물으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너 이거 불편하지 않았어?'하면 공감할 거라고 생각해요.

희수 : 중학교 친구가 '너 페미니스트는 아니지?' 하고 물었어요. 그래서 '네가 생각하는 페미니스트가 뭔데? 난 페미니스트인데?' 했더니 '너 트위터 해?' 하면서 난리가 난 거예요. 그래서 제가 '너도 성추행 당했잖아. 너도 너 친구들이 그런 거 겪으면 그건 잘못된 거라고 하고 지켜주고 반대하고 싶잖아. 그러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 내가 페미니즘을 완전히 지지하고 있지 않더라고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을 해야 돼' 라고 말했어요. 20대 여자들도 되게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아요.

가영 : 그런데 10대는 20대보다 더 심하다고 들었어요. 여성혐오도 심하고 그에 따른 페미니즘적인 반격도 더 강하고요. 10대 남자애들이 페미니즘을 매도하는 거 보면 이런 식이더라고요. 여자애한테 남자애가 고백하는데 대답을 안 하니까 '너 페미니스트야?' 라고 공격하는 식. 문맥상 전혀 맞지 않는데. 저희 때만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여자애들도 거의 말로 때린다 싶을 정도로 반격이 강하고요.

"'래디컬'이 문제가 아니라, 구실 삼아 혐오 정당화 하는 이들이 문제"

이들은 래디컬 페미니스트의 모든 입장과 행동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래디컬 페미니즘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이들은 '래디컬'이 "필요"하며 "대신 싸워주는 이들"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래디컬'이 문제가 아니라 성차별적 구조에 대한 인식 없이 '래디컬'의 특정 행동을 트집 잡아 혐오를 정당화하는 이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기자 : 페미니즘 전체가 '래디컬'로 치부되면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여러분들은 '래디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인 건가요?

지민 : 아뇨. '래디컬' 페미니스트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극단적인 면도 있어서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는데,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일동 : 동의합니다.

가영 : 저는 그들이 우리 대신 싸워주고 있다고 느껴요. 행동 하나하나에 공감 여부를 떠나서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민 : 남자들은 일베, 소라넷 같이 진짜 범죄적인 걸 하면서 메갈리아 등에서 말로 미러링 하는 것을 가지고 '너 매갈이야?' 하는 식으로 매도하잖아요. 사회적 분위기가 매도하는 쪽으로 가서 그렇지, 래디컬이 하는 역할이 크다고 생각해요. 래디컬에 대한 비판도 논리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왜 그렇게 행동하고 주장할 수 밖에 없는지는 무시하고 개별적인 일부 과격한 행동에만 초점을 맞춰서 몰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기자 : 소위 '래디컬' 페미니스트의 모든 행동에 동의가 되는 것은 아니라면 어떤 것들을 말하는 것인가요?

지민 : 대표적으로 탈코르셋 같은 것을 생각하면 처음 취지는 남성들의 시선에서 탈피하자, 꾸밈노동을 줄이자는 것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여자들끼리 행동을 규제하게 된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넌 머리를 길렀으니 탈코르셋 안 한 것이다,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요. 이런 게 탈코르셋의 좋은 의미를 해치는 것 같아요.

희수 :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그런 식의 검열글도 본 적 있어요. '탈코르셋 하려면 화장은 어디까지 허용이에요? 스킨? 썬크림? 비비(BB)크림은 안 되나요? 색깔 들어간 건 안 되나요?'

세진 : 맞아요. '탈코르셋 하려면 면접볼 때도 화장 하지 말아야 돼?' 이런 질문들이 올라와요. 저 같은 경우에는 면접 보러 다닐 때쯤 탈코르셋 운동을 접했는데, 면접 보러 가는 데 화장 안 하고 머리 안 하고 그렇게 갈 수는 없잖아요. 오히려 강요를 받는 느낌이어서 불편함이 있었어요.

가영 : 전 원래 코르셋과 멀었는데 탈코르셋 이후로 더 멀어지긴 했죠. 고등학교 때도 화장하고 화려하게 다니는 친구들 보면 물론 예쁜데,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안쓰러운 느낌도 있었어요.

희수 : 저는 긍정적인 영향도 받았다고 생각해요. 탈코가 없었으면 우리는 여자니까 머리를 기르고 화장을 해야 돼, 예쁜 옷을 입어야 돼, 그런 것을 당연하게 여겼을텐데, 그런 경향이 줄어든 거죠. 아무래도 확실히 화장을 덜 하는 친구들이 많아졌고 화장을 안 하고 머리를 자르는 여배우들도 생겼고. 그러다 보니까 이제 '왜 화장 안해?' 이런 질문을 하면 안 되는구나, 하는 걸 남자들도 알게 된 것 같아요. 개념 있는 남자로 거듭나기 위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이 된 것 같은.

세진 : 여자들이 탈코할 게 아니라 남자들이 오히려 좀 씻고 로션 좀 바르고 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웃음)

▲ 지난달 25일 서울 마포구 프레시안 회의실에서 동갑내기 20대 여성 4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프레시안(김효진)

"이준석이 맞다고 생각하는 여자는 없어요."

다시 말하지만, 이들은 사회초년생들로 각자 자기 앞에 던져진 과제를 해내느라 바쁘다. 정치 뉴스를 일일이 챙겨 볼 틈이 없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 선거전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보이는 모습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여성가족부 폐지나 성폭력 무고죄 등이 언급되는 이번 대선을 "20대 여자들 표를 당당히 버리는 선거"로 본다.

가영 : 이번 대선 선거전 보면 한국의 페미니즘을 없애야 된다는 식으로 얘기하잖아요. 뭔가 잘못됐어요.

희수 : 그런 발언을 해서 20대 남성 지지를 얻고 싶은가본데. 그럼 20대 여성들은? 우리도 투표권 있고 수가 많아요.

가영 : 이준석(국민의힘 대표)은 너무 티나게 20대 남자들로부터만 추앙을 받고 있는데, 여자들한테 열등감이 있어서 그걸 표출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예요. 이준석이 그렇게 하고 다녀서 그런지 다른 대선 주자들도 비슷한 스탠스로 남자들 눈치를 보는 듯 해요. 그 출발점이 이준석이 된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20대 여자들이 엄청 많은데 그 표를 이렇게 당당히 버릴 수 있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거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희수 :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페미니즘을 모르는 20대 여성이라고 해도 여성가족부 폐지, 성폭력 무고죄 운운하는 당에 투표를 하고 싶지는 않을 것 같은데 왜 그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

가영 : 20대들에게 해당하는 사회적 문제가 많잖아요. 취업도 안 되고 취업이 된다고 해도 집 사기도 어렵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여성들에게 분노의 방향을 돌렸다고 생각해요. 20대들이 느끼는 사회적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그 대신 그들의 불만을 '여성이 우대 받기 때문' 이라는 식으로. 한마디로, 여자들을 이용하는 거죠. 이준석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여자는 없어요.

일동 : 없어, 없어.

가영 : 남자들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세진 : 맞아요. 회사 선배들이랑 물론 정치 얘기를 거의 안 하기는 하는데 어쩌다 뉴스 나오는 거 보면 "쟤는 좀 이상하다" 하시더라고요.

희수 : 정치 얘기 잘 안 하긴 해도 20대 친구들 거의 이재명(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이랑 이준석은 싫어하는 것 같아요. 이재명은 현 정부에 대한 신뢰도 떨어져서 그런 것도 있고 아들 성범죄 의혹도 있어서. 이준석은 당연히 싫고. 여자가 투표권이 있다는 것 자체를 무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돼서. 사실 뽑을 사람이 없어요.

세진 : 이재명도 최악이고 이준석도 최악인데 그래도 국민의힘에서 혼자 왕따인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에요. 덧붙이자면 윤석열(국민의힘 대선 후보)은 그나마 이수정이나 신지예 이런 사람들 영입하려는 노력이라도 하니까 그나마, 아주 그나마 낫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국민의힘은 지난 3일 신지예 씨가 새시대준비위 수석부위원장직에서 사퇴했으며 더이상 새시대위에서 활동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편집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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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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