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팬레터북'과 '역사의 공회전'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저는 감옥을 대학이라고 부르죠. 바깥에 있었으면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생각들을 가지게 되었어요. (…) 제가 꼼꼼하게 엽서에 글을 쓴 이유는 뭔가 강물같이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서 였어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유명한 고 신영복 선생이 생전에 한 인터뷰의 한 대목이다. 감옥은 끔찍한 유배의 장소이지만, 때로는 독서와 사색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외부와 절연된 유폐된 삶, 차가운 시멘트 바닥이 허용하는 그 빈한한 수분에 기대어 사유와 성찰의 꽃이 피어나기도 한다. 신영복, 디트리히 본회퍼, 안토니오 그람시, 자와할랄 네루, 고 김대중 대통령 등이 남긴 옥중서한집은 그렇게 태어났다. 그 글은 지금도 읽는 이들에게 큰 감동과 울림을 안겨준다.

새해 벽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서간록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를 읽었다. 그가 감옥에 있던 4년9개월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 세월은 염전의 바닷물이 증발하고 나서 소금이 남듯이, 오랜 세월 드리워진 허영과 오욕이 증발하고 사고의 결정체만 남길 수 있는 시간이다. 감옥에 있는 동안 박 전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때 한 나라를 이끈 지도자로서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그의 반성적 통찰은 무엇일까, 이런 기대를 안고 책장을 펼쳤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애초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것은 인고(忍苦)의 강에서 길어올린 사유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책은 대부분 박 전 대통령을 따르는 정치적 지지자들이 보낸 편지들이다. 옥중서간록 보다는 '팬레터북'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려 보였다. 각 '위문 편지'의 말미에 붙인 박 전 대통령의 짤막한 답장들이 옥중서간록이라는 이름의 영세한 근거인데, 그 분량은 모두 합쳐 50여쪽 정도나 될까 말까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 등 답신마다 포함된 '후렴구'를 제외하면 책의 질량은 더욱 헐거워진다.

이 책은 박 전 대통령이 감옥에 있는 기간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추종자들이 보내온 편지를 읽으며 위안을 삼고 스스로 기뻐하며 '소일'했던 것 같다. 이 편지들은 "이 세상에서 당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나르시시즘의 거울과 같다. 책의 제목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각나지 않는다'도 일편단심 박 전 대통령만을 그리워하는 어떤 지지자가 보낸 편지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자신과의 고독한 대화를 통한 사유의 단련을 그에게 기대했던 것은 부질없다.

"조그만 회사의 사장이 잘못된 결정을 하면 그 회사가 망하고 식구들이 고통을 받지만 한 나라의 정책이 잘못되면 그에 따른 대가는 온 국민들이 치러야 하겠지요."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유체이탈 화법'이란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올바른 역사교육만이 나라를 분열시키지 않고 국민에게 진실을 찾는 힘을 길러 준다"는 글은 '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우리 사회가 겪은 소모적 갈등의 불편한 추억으로 이끌었다. 일본 정부의 무역 보복 조처에 즈음해서는 "국가의 지도자는 국민의 다수가 반대하고 그로 인해 비록 정권을 잃게 된다고 하더라도 나라의 장래를 위해 반드시 해야만 될 일은 해야 한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불가역적 협상'을 그는 여전히 '구국의 결단'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런 자화자찬성 자기합리화는 그냥 쓴웃음 정도로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언급에 이르러서는 가슴에 칼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세월호가 침몰했던 당시의 상황과 관련하여 저에 대한 해괴한 루머와 악의적인 모함들이 있었지만 저는 진실의 힘을 믿었기에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많은 시간이 흐르면 어떤 것이 진실인지 밝혀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더 이상 박 전 대통령 탓을 할 마음은 없지만, 그가 할 말이 고작 이 정도란 말인가? 당시 정부와 여당(지금 야당의 전신)이 보였던 끔찍한 무성의와 냉혹함, 희생자 가족들을 향해 가해진 숱한 모욕과 공격, 그리고 무책임으로 일관한 관료주의의 정점에 서 있던 사람이 바로 박 전 대통령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아무런 회한도 뉘우침도 없다. 오직 깊은 자기연민에 빠져 자신의 억울함과 원통함을 되뇔 뿐이다.

박 전 대통령 사면의 명분은 국민 화합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거니와 책을 읽고 나니 화해와 용서라는 단어가 십 리 밖으로 더욱 멀찍이 달아났다. 화합은 사면이라는 동전을 넣으면 툭 튀어나오는 자판기 물건 같은 게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이 입원해 있는 병원 근처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화환 행렬은 우리가 아직도 왕정과 공화정, 비근대적 사고와 근대적 사고의 불일치 속에 놓인 사회임을 웅변한다.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되 언어가 전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섞여 살고 있는 게 우리 사회다. 그 아득한 간격을 메우는 일이 화합의 출발점이다. 화합은 요술상자에서 튀어나오는 마법의 선물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상식과 순리, 합리성을 쌓아가는 고통스럽고도 지난한 과정임을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은 역설적으로 일깨워준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복권은 결코 '그 시대'에 대한 사면 복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 시대에 민주주의와 인권은 뒷걸음쳤고, 공적 시스템은 붕괴했으며, 권력은 소수 측근들의 사유물로 전락했다. '애국애족'이 직업인 사람들이 소리높이 외치는 안보와 경제, 시장논리의 지엄한 목소리에 눌려 부의 쏠림은 가속화했고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깊어졌다. 분명한 사실은 그 시대의 그릇된 정치이념은 사면될 수도 없고 그 시대의 파행적 정치행태는 복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박 전 대통령의 난파 지점에서 새로 항해를 시작했다. 그 항해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항해의 속도는 느리고 방향은 수시로 헷갈렸다. 이런 틈을 타 또다시 역사의 공회전 소음이 요란하다. 박근혜 시대에 횡행했던 국가 경영 철학이 다시 '새로운 사회 건설'의 가면을 쓰고 울려퍼진다. 그 시대보다 훨씬 더 심한 오만과 독선이 정의와 공정의 깃발로 휘날린다. 구시대 이념의 충실한 계승자들은 몇몇 주연이 바뀐 것 말고는 조연, 연출, 스텝들이 거의 그대로다. 또다시 '선거의 여왕'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그의 심기를 살피고, 그의 지지와 호감에 기대어 선거에서 잇속을 챙기려는 눈치도 역력하다. 우리는 다시 쳇바퀴 돌듯 역사 원점회귀의 비극과 마주해야 하는가.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은 국민 화합도, 통합의 계기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기억의 수면 밑에 잠겨져 있던 구시대의 어두운 실체를 다시금 상기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리고 점차 뇌리에서 잊혀져가는 '그때의 다짐'을 되살리는 죽비가 돼야 한다. "역사란 그것이 의미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만 그 의미를 허용해주는 존재"라는 말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새해 아침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특별사면으로 석방된 3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앞에 박 전 대통령의 쾌유를 기원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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