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노동정책, 30년 전 '직업재활' 이념 그대로?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중증장애인의 노동패러다임 전환

'일자리'가 시대의 화두다. 기술 혁신에 따른 일-세계의 전환,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재앙이 가져온 파국적 결과들은 나날이 심화되는 경제적 불평등과 맞물려 현 생산 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세상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지 않는 직업들, 소위 '불쉿잡(Bullshit job)' 담론이 대중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 역시 이 때문일 것이다. '이윤은 세계가 아니다.' '이윤 창출은 세계 생산이 아니다.' '이윤 중심 생산 시스템은 도리어 세계를 파괴한다.' 여전히 자본에 속박되어 있는 이들조차 어쩌면 이미 이 사실을 절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안에 대한 논의도 뜨겁다. 기본소득이 유력 정치인들의 공방 대상이 된 지는 오래다. '탈-성장'이나 '사용가치 중심으로의 생산체계 재편' 요구 역시 더 이상 일부의 요구로만 치부할 수 없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생소하던 일자리보장제, 참여소득, 공공시민노동 등 공공일자리 담론들이 유난히 주목의 대상이 된 것도 이제는 당연한 시대적 흐름처럼 보인다. '공공일자리=시혜적 일자리'란 전제가 여전히 암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도 그렇다.

그런데 이 담론들은 어떻게 구체화될 수 있을까? 시민들이 직접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공공일자리를 확대하고, 이를 '사회적 가치 창출 일자리'나 '돌봄 일자리'들로 채워야 한다는 데는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그러나 이 일자리들이 세부적으로 어떠한 직무들로 구성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상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듯 보인다. 그저 이 세계의 재생산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그간 평가절하되어 온 노동들만이 다시 한번 거론될 뿐이다.

물론 이 노동들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공공 차원에서 이 일자리들의 질을 향상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건 중요하다. 그러나 일자리보장제 담론조차 새 공공일자리를 '최저임금 일자리'로 구상하는 상황에서, 일자리보장제가 실현되더라도 이 노동들은 과연 기존보다 확연히 나은 질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설령 이 일자리들이 더 나은 질의 노동조건을 보장받게 될지라도, 이는 과연 '생산성 중심 노동 세계'를 지양할 수 있는, 나아가 시민들의 통제권이 확대될 수 있는 '새로운 노동 패러다임' 전환으로 나아갈 교두보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직업재활을 넘어, 생산성 논리를 넘어

진보적 장애인운동계가 투쟁 중 고안한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이하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이런 차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일자리는 현재 서울, 경기에서 중증장애인 최저임금 일자리로 현실화되기도 했다(현재 서울 275명, 경기 25명이 참여 중이고, 내년에는 서울 350명, 경기도 200명으로 확대될 예정이며, 전남, 강원에서도 이 일자리사업을 준비 중이다).

▲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지난 5월 2021년 노동절을 맞아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문화예술공연을 통해 장애인 노동권 보장의 중요성을 시민들에게 홍보하고 있다. ⓒ비마이너

진보적 장애인운동계가 이 일자리를 추진하게 된 것은 기존 장애인노동정책이 장애인의 현 상태를 '불구화'하고, 심지어 특정 장애인을 도리어 노동으로부터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기존 장애인노동정책은 '직업재활' 이념을 바탕으로 하는데,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성 논리를 그대로 답습한다. 직업재활은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 표현해 봤자, 결국에는 임금노동에 적응할 수 없는 '비정상' 신체들을 임금노동 규율을 체화시켜 '정상'으로 거듭나게 만들어 내려는 기획에 다름 아니다. 직업재활은 장애인을 노동 바깥으로 내몬 생산조건에 대한 근본적 변혁 필요성을 소거한 채, 장애인 개개인에게 '생산성이 떨어지는 당신의 현 신체'를 극복할 것만을 요구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마저도 성공적이진 못했다. 한국에서 직업재활 이념을 바탕으로 한 '장애인고용촉진법'(현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이 시행된 지 30년이 흘렀건만, 여전히 상황은 참담하다. 장애인의 경제활동인구 비율은 37%에 불과하며, 중증장애인 같은 경우 비경제활동인구가 80%에 육박한다. 그리고 이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재활 이념을 바탕으로 구성된 장애인 공공일자리들은 "업무수행에 지장이 있는 자"의 사업 참여를 공개적으로 제한한다.

그런데 왜 기존의 생산성 기준에 의해 노동 세계에서 쫓겨난 이들이, 자신을 버린 바로 그 기준에 적응하려 노력해야 하는가? 이제는 오히려 기존 생산성 논리를 깨뜨리고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새로운 노동 세계의 방향을 구상해 가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최중증장애인들을 우선 고용한다. 이 일자리는 노동자들에게 기존에 당신이 갖추지 못한 생산성을 갖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점은 이 일자리가 장애인들을 '마지못해 노동권을 보장해 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이 일자리 노동자들은 '권리생산 주체'다. 권리옹호활동, 문화예술활동, 장애인식개선강의 세 직무를 통해 이 주체들은 실제로 '권리를 생산'한다. UN장애인권리위원회가 2014년 한국 정부에 권고한 "국가, 지자체 차원에서의 장애인 인식제고 노력 및 캠페인"을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수행함으로써 말이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돈을 벌어다 주기 위해 일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일자리를 통해 저는 제 자신이 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 세계를 더 나은 세계로 바꾸기 위한 노동을 합니다."(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의 기자회견 발언)

권리란 세계의 물질적 조건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선언적인 것에 머물 뿐이다. 권리는 누군가를 배제하는 기존의 공간을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공간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관계를 새로운 관계로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현실화된다. 예컨대 장애인이 탈 수 없는 버스를 저상버스로 바꿔내고, 장애인을 차별하는 각종 제도를 변혁함으로써, 장애인이 타자들과 맺는 관계의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권리가 생산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는 당연히 누군가의 노동이 투입되어야만 한다. 심지어 이러한 노동은 대체로 이윤 창출과 무관하기 때문에 공공 차원에서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시도조차 될 수 없다. 이윤 창출 노동 상당수와 달리, 이 세계에 꼭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는 노동임에도 그렇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새로운 공공일자리 담론들이 실업인구에 대한 노동 기회의 보장, 기존 임금노동 체계에 포섭되지 못했던 '사회적 가치 창출 노동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이 일자리는 그러한 취지에 적확하게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이미 "참여소득형 일자리보장제를 부분 실현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시민사회가 직접 만들어가는 일자리, 그러나…

이 일자리의 주목할만 한 또 다른 특징은 이 일자리의 구성과 운영에 시민사회(권리중심공공일자리협업단,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가 직접 통제권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지자체가 장애인에게 적합한 노동을 구상하거나 생산성 기준을 지양한 사회적 가치 기준을 직접 마련할 역량이 없는 상황에서, 이 분야에 오래간 투신해온 단체가 이 일자리의 생산 과정에 직접 개입, 새로운 노동 세계 구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가 12월 15일 창립총회를 열고 있다. ⓒ비마이너

이 일자리에서 수행된 노동들, 예컨대 지역사회 장애인 접근권 모니터링 및 접근권 어플 제작에서부터, 차별적 제도 규탄 피케팅, 기자회견 구성 및 참여, UN장애인권리협약 서명전, 문화공연 및 강의를 통한 장애인권리협약 홍보 등은 모두 실제로 장애인 노동자와 이 노동자들이 소속된 해당 기관 전담인력, 그리고 근로지원인들과 협업단이 협의 과정에서 직접 구상해낸 것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예산을 집행하는 주체는 지자체이며, 이 일자리에 대한 최종 결정권 역시 지자체에 남아 있다. 문제는 지자체가 이 일자리의 취지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여, 이 일자리를 기존의 '장애인일자리사업'이나 '직업재활 일자리'의 변종쯤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이 일자리가 다른 공공일자리들처럼 '민간시장으로의 이전'을 추구해야 한다면서, 이 일자리 노동자들을 일회성 계약직 신분으로 남겨두려는 시도도 종종 보인다.

당장 이 사업이 처음 시작된 서울시에서, 이 일자리는 얼마 전 큰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 일자리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전담인력이 필요한 만큼 제공되어야 하며, 지속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내년도 이 사업 참여 장애인의 수는 양적으로 늘렸으면서도, 전담인력 예산을 충분히 확보해 두지 않았다. 이 일자리 위탁기관 선정을 경쟁적 공모방식으로 돌려 기존에 이 일자리를 수행해 온 기관을 탈락시킬 가능성을 남겨둠으로써, 이 일자리 노동자들의 지속가능한 노동 조건을 위협하기도 했다.

2020년 국정감사에서 서울시는 이 일자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서울시가 추구하는 공익적 가치는 경쟁, 성과, 생산성이 아니라 사회적 다양성이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일할 권리가 있고, 그 노동의 가치를 동일하게 인정하는 게 다양성이다." 서울시는 지금 이 말에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자본 중심 생산성 개념을 지양하는 새로운 노동들을 (재)발견하고, 이를 실제로 직무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은 이제 시대의 요구가 되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그러한 요구에 대한 진보적 장애인운동계의 응답이며, 감히 말하건대 장애인노동 문제를 넘어 현 노동 패러다임 전반이 전환되어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일자리다. 이 작지만 중요한 첫걸음이 더 이상 예산 논리로 중단되지 않도록, 국가와 지자체가 본연의 의무를 다하길 바란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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