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용균 추모 기간에 '김용균法' 없애겠다는 대선후보가 있다

[시민건강논평]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정치·정치인이 필요하다"

'주52시간제와 최저임금제는 비현실적이고 탁상공론'에 불과한 제도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업인들의 경영 의지를 위축'시키며, 노동자들이 '안전장치를 끄고 일하다 다치면 본인 과실'이라는 발언을 연이어 내놓는 유력 대선후보를 보고 있다. 게다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이런 제도들을 모두 철폐하겠다는 약속도 서슴지 않는다. 정치적 수사로 흔하게 쓰이는 개선이나 협의도 아닌 '철폐'라니, 뭔가 단단히 잘못된 일이다.

실언이라고 할 수만도 없이 일관되고 굳은 그의 반(反)노동적 망언들이 쏟아진 직후인 12월 6일부터 10일까지는 마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24세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석탄 이송 컨베이어벨트 기계에 끼어 사망한 사고를 애도하는 '고(故) 김용균 3주기 추모 기간'이었다.

아들의 세 번째 제사를 겨우 치러내고 있는 엄마는, 아들 같은 노동자들의 죽음을 더는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거리에서 여러 사람과 힘들게 만들어낸 그 법을 없애버리겠다는 유력 후보의 말에 화를 낼 기운조차 잃은 듯하다.

정부도 고 김용균 3주기를 맞춰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 이행점검보고서'를 발간했다. 정부는 대책발표 후 2년 동안 관계부처의 개선노력으로 56개 과제 중 47개는 완료했고 9개는 진행 중이며, 원청의 안전보건 책임강화, 노동조건개선, 안전을 위한 노사정 역할 강화 등에서 현장의 안전 환경에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고 자평했다.

과연 현장의 노동안전 상황은 좋아졌을까? 몇 가지 공식지표와 현장 노동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그 3년의 시간이 무색할 지경이다.

2021년 1월~9월 산재 사고 사망자는 678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오히려 18명이 증가.(고용노동부·안전보건공단 '2021년 9월말 산재발생 현황')

"2019년 2월 김용균 당정합의문에서 '연료환경설비운전분야의 정규직화'를 천명했으나 지금까지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작업환경, 불안한 고용문제, 직접 조무비 착복 등 우리는 여전히 3중고를 겪고 있다."(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진재성 분당지회장 기자회견)

올 해 전국 법원에서 나온 산업재해 사망사건 1심 판결문 133건 분석 결과, 피고인(개인+법인) 62%에 벌금형 선고가 내려졌는데, 벌금액수는 평균 654만 원에 불과하다.(☞ 관련 기사 : <SBS NEWS> 12월 10일 자 '[단독] '산업재해 사망' 판결문 전수조사…"죗값은 650만 원"')

문재인 정부는 주요 국정과제로 산재 감축을 추진하면서 임기 내 산재 사망을 500명대로 줄이겠다고 했지만 달성은 어려워 보인다. 수많은 김용균들의 죽음 이후에도 우리 사회가 생명과 건강을 해치는 '나쁜 노동'을 용인하고, 대선후보가 노동 혐오와 왜곡의 막말을 시리즈로 내놓아도 지지율에 타격을 받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런 현실 '덕분인지' 모른다.

우리는 추락, 끼임, 등의 전형적인 산재뿐만 아니라 비가시적 손상, 느린 폭력, 심리와 정서의 직업병, 새로운 또는 가중되는 노동의 위험도 불건강이고 질병이며 재해이고, 이런 산재의 구조에는 공통적으로 권력관계가 작용하는 노동 조건이 문제라고 여러 번 지적했다.(☞ 관련 기사 : 일하는 사람들의 보편적 건강권을 위하여)

아침에 일하러 출근해서 저녁에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 그 많은 노동자가 죽어 나가도 자본과 국가는 노동을 개인화하고 정책-사업화하면서 책임을 회피한다는 사실, 그리고 이렇게 노동을 억압하고 소모하는 강고한 관계와 구조에서 노동자 스스로 자기 노동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로 이어진다.

근본 문제는 좀 더 구조적이다. 막강한 경제 권력과 국가는 노동자 건강의 관계를 숨기고 노동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버리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한 가지 방법이 '소비자'라는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축적과 팽창의 자본주의에 복무하는 경제 권력과 국가 권력은 더욱 정교하게 물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고 지배계급의 정치적·문화적 이데올로기를 이식한다.

우리는 혹시 수많은 상품의 홍수 속에서 최저가 구매 경쟁을 벌이거나 친환경이라는 광고에 쉽게 지갑을 여는 '호구' 소비자는 아닌가? 시장과 경쟁 원리를 내면화하고 나보다 약한 노동자와 시민을 상대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아닌가. 작고 볼품없는 싸움의 작은 승리들은 과연 누구에게 이익이 될 것인가.

공화주의 전통에서는 훌륭한 시민이 되기 위한 자질로 선(善)을 추구하는 좋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적 인간을 강조했다. 우리 자신이 좋은 인간과 훌륭한 시민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뿐 아니라, 리더가 되려는 사람도 역시 그래야 한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드러내는 저들의 반(反)노동적 선동과 폄훼에 분노한다. 그리고 분노를 넘어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무엇이든 살기 위한 노동이라면 병들거나 목숨을 잃지 않는, 건강과 생명을 의심하지 않는 노동이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노동이자 공동체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울러 그것을 기치로 삼는 사람에게 대통령, 아니 모든 정치인의 자격이 있음을 분명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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