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며 정치 권력을 사랑한다"

[최재천의 책갈피] 버치문서와 해방정국 - 미군정 중위의 눈에 비친 1945~1948년의 한반도, 박태균 지음

미군정 시절 레너드 버치 중위가 본 한국 사람들의 성격이다. 

"그들은 집단적으로 움직인다. 그들은 즐기는 것을 좋아하고 유머 센스가 많으며, 싸우기를 좋아한다. 또한 주장이 많다. 공상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아일랜드와 비슷한 설화들이 있다.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며 파티와 휴가, 정치권력을 사랑한다. 지적 수준이 높으며 동시에 그러한 높은 수준으로 인해 다루기가 쉽지 않다. 그들은 매우 획일적이며 중국인과 다르며, 일본인도 아니다. 그들은 몽골로부터 내려왔으며, 중국으로부터 많은 문화를 받아들였고, 동양의 기준에서 높은 수준의 문화를 유지했다."

버치는 1910년에 태어나 하버드 로스쿨을 마치고 변호사로 일하다 군에 입대해 1945년 겨울 한국에 배치됐다. 하지 사령관은 그를 중용했다. 그리하여 미군정이 38선 이남을 통치했던 무렵 그는 늘 정치적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 있었다. 사실상 한국 정치판의 실세였다. 그가 작성하거나 보관했던 많은 사료들이 사후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으로 옮겨졌다. 하버드대 동아시아학과에 강의하러 갔던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태균 원장이 이 문서를 입수해 언론에 연재했다가 좀 더 보완해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버치 문서는 미군정기의 실패와 함께 한국 사회가 겪었던 좌절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것은 곧 "해방과 통일 독립국가 수립이라는 너무나 소중한 기회를 상실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기회의 상실은 곧 전쟁이라는 위기로 다가왔으며, 또다시 그런 경험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역사학자로서 저자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미군정기의 상황을 좀 더 실증적이고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현재 한국 정치에서 나타나는 폐단의 기원을 찾는 것이었다." 

그 폐단은 무엇일까. 자의적으로 답해보자면 '해방 전후사를 둘러싼 무책임하고 정치적인 역사 해석 논쟁들', '연대와 공존이 불가능한 극단적인 권력 구조와 행사 방식' 등등이 아닐까 싶다. 비전문가의 눈에도 흥미로운 사료들이 있다. 

"버치가 남긴 문서 중에 유독 눈에 띄는 이름이 있다. 김두한이다.… 그런데 문서 속의 김두한은 (우리가 영화를 통해 알고 있는) 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미군정이 준비했던 조선임시정부의 헌장 속에는 정부의 수반과 부수반은 입법기관에서 선출하고 국가수반에게 장관 임명권을 주었지만,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한 것이다." 

이는 제헌헌법의 특징적인 부분 중 하나인데 그 뿌리가 어쩌면 조선임시정부헌장에서 비롯될 수 있었다는 흥미로운 증거다.

▲버치문서와 해방정국 - 미군정 중위의 눈에 비친 1945~1948년의 한반도, 박태균 지음 ⓒ역사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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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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