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순흥초군청 나무꾼 이야기'

‘순흥초군청 나무꾼은 부당한 세상에 저항했던 공정과 개혁의 나무꾼’

소백산에 첫눈이 내렸다. 11월 초부터 다음 해 3월까지 쌓여있는 소백산의 설경은 보는 이에게 한 폭의 동양화처럼 장관을 연출한다. 하지만 긴긴 겨울 내내 소백산 정상에서 죽계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칼바람을 견뎌내야 했던 옛날 옛적 순흥 사람들에게는 혹독한 통과의례였음에 분명하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에는 긴 겨울 따뜻한 아랫목을 책임졌던 나무꾼들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지난 10일 소백산에 첫눈이 내렸다. 영주시청 청사에서 바라본 소백산 설경은 한폭의 동양화처럼 보는 이에게 장관을 연출했다.  ⓒ영주시(사진제공)

대개 동화 속에 등장하는 나무꾼들은 하나같이 가난을 숙명처럼 짊어지고 살아가는 착하고 효심이 넘치는 모습이다. 그들은 운명처럼 드리워진 삶의 굴레에 순응하며, 부당하고 억울한 세상에 저항할 줄 모르는 무지한 촌부일 뿐이었다.

하지만, 순흥의 나무꾼들은 사회적 차별과 억눌림에 순응하는 순박한 나무꾼이 아니라, 공정하지 못한 사회구조에 저항했던 공정과 개혁의 나무꾼들이었다. 대개 나무꾼들은 빈민층으로 농업에 종사하기도 하고 산에서 나무를 하는 일을 했던 농민을 지칭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전문적인 나무꾼(초군樵軍)이 등장한 것은 조선 중기 이후 권문세가들이 산림을 사유화하면서부터이다.

당시 토호와 권문세가들의 횡포와 폐단은 심각했다. 토호의 머슴들은 나무꾼들의 나무짐을 빼앗거나, 남의집 나무더미를  빼앗기가 일수였고, 5일마다 열리는 장날에 나무꾼들이 곡식이나 닭을 내다 파는 것을 보면 어김없이 술집으로 끌고 가서 강제로 술을 얻어먹기를 여사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구한말 조선관료 사회는 이미 자정 기능을 상실했기에 이런 억울함을 관가에 호소해도 소용이 없었다.

순흥지역을 대표하는 유림이었던 김교림(金敎林1865~1938)은 지역토착세력의 횡포로부터 나무꾼의 생업과 권리을 보호할 목적으로 당시 임금에게 청원하여 순흥초군청이라는 자치조직을 설치했다. 김교림은 순흥지역에서 의병활동을 하다 일본 헌병에게 죽음을 당했던 의병장의 아들이며, 파리장서운동을 주도했던 김창숙선생을 후원하고 교분을 나누었던  순흥지역을 대표하는 유림이었다. 

조직에 대한 소상한 기록은 없지만, 당시 임금이 내려주었던 ‘순흥초군청인’이라는 직인은 아직 전해 내려온다. 당시 순흥초군청 책임자였던 좌상의 직인은 순흥부사의 권위와 대적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발휘하여, 순흥관아와 협력적 긴장관계를 형성하며 사회기강과 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로부터 토호의 악폐가 말끔하게 사라지고 나무꾼들은 비로소 어깨를 펴고 땔감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순흥초군청 나무꾼 이야기는 이미 완결된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직도 진행되는 현재형의 이야기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눈물과 고통, 잘못된 경제정책과 부동산정책으로 인한 서민들과 청년의 한숨은 끝이 보이지 않지만, 이를 해결해야 할 집권세력은 온갖 부정부패 스캔들과 내로남불식 도덕기강의 해이로 이미 자정능력을 상실했다.

몰락하는 중산층과 서민의 억눌린 삶을 왜면하는 한국정치의 위기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번 대선을 통해서 자유롭고 공정한 세상과 혹독한 겨울을 따뜻하게 지나기를 바랬던 나무꾼들의 소박한 꿈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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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식

대구경북취재본부 최홍식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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