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는 탈성장을 두려워해야 할까?

[초록發光] 성장없는 그린뉴딜이 위기를 해결한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세계의 기후정의 운동은 많은 구호를 외치고 있다. "기후가 아니라 체제를 바꾸자", "기후위기의 원인은 자본주의", "화석연료를 땅에 그대로 두자", "이윤 대신 생명" 등이 대표적이다. 결국 기후변화는 원인과 해법 모두에서 자원 소비와 경제적 활동 방식과 관련된 문제다. 많은 이들은 국내총생산(GDP) 중심의 성장주의를 한 이유로 지적하며 '탈성장' 이론과 운동에서 해답을 찾고자 한다. 생태적 붕괴, 멸종, 특히 '행성적 한계' 같은 개념과 이미지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생산과 소비의 상당한 감소 또는 적극적 조절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대한 공감을 높인다.

이에 대해 좌파 일각에서는 환영과 공명의 태도를 보이지만, 또 다른 입장이나 분위기도 감지된다. 탈성장론과 운동이 기존 좌파 운동의 호소력을 침해하거나 과제를 흐리게 할 수도 있다는 경계심이다. 일부 좌파 이론가들은 탈성장론과 운동을 구체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그 비판들은 대체로 이런 내용이다. 탈성장은 대안 프로그램으로 분명하지 못하며 대중적 호소력이 부족한 이상론의 모음이라는 것.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탈성장이 달성될 수 없다는 것. 탈성장론자들이 축소해야 할 활동과 성장해야 할 활동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 자본주의는 이미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성장이 더 정체되거나 역성장이 되면 사회 취약집단과 제3세계가 더욱 큰 고통과 혼란을 겪게 되리라는 것 등.

이런 구체적인 주장을 두고 데이터를 뒷받침한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 그리고 위기 극복과 더 나은 사회 건설에 도움이 되는 제안과 실험들이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이미 그런 토론들이 학계와 국제적 기후정의 운동에서는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전통적인 좌파, 특히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는 그룹이 탈성장론과 운동에 대해 보이는 일종의 거부감을 이해하려면, 그런 이론적인 차원과는 다른 배경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 같다.

첫째는 마르크스(주의자)와 맬서스(주의자) 사이의 안 좋은 관계다. 맬서스가 <인구론>에서 개진한 식량과 인구 사이의 관계에 관한 주장은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이론은 강제적 산아제한부터 빈민층을 돕지 말아야 한다는 가혹하고 비민주적인 발상의 자원이 되었다. 게다가 경제적 문제가 자원이나 생산이 아니라 계급과 권력 관계임을 강조하는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에서 맬서스주의는 철천지 원수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72년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 보고서부터 현대의 생태(사회)주의자들의 논의에서 보듯, 자원과 자연의 한계라는 인식이 어떻게든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둘째는 구 소비에트 블록과 서방 사이의 체제경쟁이다. 세계가 양대 진영으로 나뉠 때부터 사회주의 조국의 경제력은 자본주의에 이길 수 있는 상징이고 수단이었다. 레닌은 공산주의는 "소비에트 권력 더하기 전기"라는 유명한 비유를 남겼다. 성장이라는 과제 앞에서 사회주의 진영은 기술적 수단에 대해서도 주의 깊은 접근이 어려웠다. 유로코뮤니즘의 공산당들은 핵발전과 핵무기 개발도 옹호했다. 다른 한편, 제3세계의 빈곤과 제국주의의 억압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이곳의 경제적 발전, 특히 사회주의적 발전이 필요하다는 게 많은 세계체제 이론가들과 혁명가들의 생각이었다. 이 역시 사회주의 권력 하에서의 성장이지만 세심하게 차별화된 성장 이론이 뒷받침된 것은 아니었다.

셋째,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발전 법칙과 혁명론의 영향이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속에서 역사가 발전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생산력 자체를 제한한다는 발상은 애초에 자리잡기가 어렵다. 생산(이는 성장과 구별되지 않는다)의 주역이자 해방의 심장인 노동자계급이 주도하는 대중 봉기는 실제 역사에서 매우 드문 경험이었지만, 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정치의 가장 강력한 모델이 되었다. 이에 비해 분명하고 단일한 주체도 없고 스펙타클한 이벤트도 가정되지 않는 탈성장 이론과 운동은 매력이 떨어질 것이다. 또는, 정치와 경제 체제 변혁이라는 과업을 겨우 지역 화폐와 협동조합으로 대체하는 탈성장론은 무력하며, 그런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것은 운동을 교란하는 요인이라고 여길 수 있다.

넷째.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미발전이 좌파들이 탈성장에 대해 오해 또는 적대하게 만든 점도 있을 것 같다. 사실 마르크스 자신의 이론과 넓은 마르크스주의 조류 속에서 발전한 연구와 실험에는 탈성장론과 상당한 공통 분모를 발견하거나 생산적인 대화가 가능한 것들이 많이 있다. 존 벨라미-포스터나 최근 사이토 고헤이가 마르크스의 저작 속에서 '물질대사 균열' 개념을 발굴하여 지금의 생태위기 설명을 보완하는 것은 좋은 사례다. 물론 이들처럼 마르크스의 글 속에서 생태주의의 조각들을 짜맞추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지, 그리고 그런 맞춤의 결과가 마르크스주의를 어떻게 발전시키는지는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어쨌든 마르크스 자신도 당대의 최신 자연과학적 발견들에 적극적으로 다가갔고, 충분히 열려있는 연구 자세가 중요한 이론적 성과들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21세기의 마르크스주의 연구와 운동은 위축되었고 대안 체제의 이론화에 부진했다. 이와 함께 기후위기와 같은 구체적인 현상과 현실 과제에 대한 탐구도 답보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반면에 마르크스주의 자장 바깥의 탈성장 이론과 운동에서 자본주의 비판과 대안을 위한 연구와 실험들이 축적되어 왔다. 지구의 '행성적 한계'와 2차 대전 이후 '대가속'을 마르크스주의 자원만으로 설명하기는 충분하지 않으며, 우리는 더 많은 이론적 자원을 끌어들이는 걸 주저할 필요가 없다.

현실의 운동으로 주의를 돌려보자. 마르크스주의 만큼이나 탈성장 이론과 운동은 여러 갈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반세계화 운동에서 기후정의 운동으로 활동 반경을 넓힌 국제금융관세연대(ATTAC) 같은 조직, 유럽과 남미의 생태사회주의와 적지 않은 급진 좌파정당들은 탈성장을 자신의 구호와 요구로 삼는다. 생계 수단의 기본적 제공, 교환가치 보다 사용가치 중시, 노동시간 단축,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투쟁, 비시장적 활동의 발전, 무익한 소비주의의 제한 등은 이들의 공통된 정책 제안들이다. 그린뉴딜을 열정적으로 전파하는 로버트 폴린은 탈성장에 의미있는 현실 대안이 없다고 비판하지만, 그린뉴딜과 탈성장을 연결하는 제안들도 많다. 유럽의 사회운동 조직인 DiEM25(유럽의 민주주의 운동 2025)이 작성한 "유럽을 위한 그린뉴딜"에는 리카르도 마스티니, 요르고스 칼리스, 제이슨 히켈 같은 탈성장론자들이 직접 참여했다. 이들은 "성장없는 그린뉴딜(A Green New Deal without growth)"이 가능할 뿐 아니라 지금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그린뉴딜은 과거와 같은 성장을 배제하는 것이어야 함을 분명히 한다.

오래 전부터 생태사회주의의 전도사로 활동해 온 미셸 뢰비(Michael Löwy)는 생태사회주의와 탈성장 사이 몇몇 지점에서는 의견이 다르더라도 적극적인 동맹을 제안할 수 있다고 본다. 그가 인용하는 프랑스 생태학자인 스테판 라비노트의 생각은 자본을 소유하지 않은 다수자로서 생태적 계급 이해를 위한 투쟁과 급진적 문화 변혁을 위한 적극적인 소수자들의 정치를 결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불가피한 의견 차이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지구 위의 생명과 인간의 생존이 자본주의와 생산주의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이해하는 모든 이들의 '정치적 구성'을 만들고, 이 파괴적이고 비인간적인 체제를 벗어날 방도를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말이다.

기후가 아닌 체제를 바꿔야 한다면, 우리의 논의와 운동의 관성도 바꿀 게 없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어떤 체제를 어떻게 바꿀지를 두고 몇 발 더 들어간 논의를 한다면 서로 맹숭하게 쳐다보던 소와 닭이 조지 오웰의 소설 속에서처럼 실은 한 편임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동물농장에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우리는 시급한, 그리고 시도할만한 동맹을 위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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