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024년 美 대선 향한 '슬로우 쿠데타' 시동?

[워싱턴 주간 브리핑] 트럼프 "공화당원들은 2022년, 2024년 투표하지 않을 것"

"만약 우리가 2020년 대통령 선거 부정 사건(우리가 철저히 그리고 결정적으로 문서화해 놓은)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공화당원들은 2022년이나 2024년에 투표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공화당원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발표한 성명)

"트럼프는 '느린 쿠데타'(Slow Coup)를 진행 중이다. 트럼프는 2024년 대선에 출마해 공화당 후보 지명을 받는다. 그리고 대선 당일 밤 개표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는 다음날 아침 자신이 이겼다고 발표할 것이다."(HBO "리얼타임" 진행자 빌 마허의 8일 방송)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재출마를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은 지난 13일 성명을 내고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선거 보이콧'을 주문했다.

이 성명은 차기 대선에 트럼프가 출마하기를 바라는 3분의 2 이상의 공화당원들에게 매우 중요한 행동 지침이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와 여론조사기관 '모닝 컨설턴트'가 공동으로 조사해 지난 13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의 67%가 트럼프가 2024년 대선에 출마해야 한다고 답했다. 거의 같은 숫자의 공화당 지지자들이 트럼프의 2020년 '대선 사기' 주장을 여전히 굳게 믿고 있다. 

'거짓말'을 입증해달라는 트럼프의 요구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2020년 대선 결과가 조작됐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내년 11월에 있을 중간선거와 2024년에 있을 대선을 포함한 선거를 보이콧 하라고 호소했다.

공화당 입장에서 트럼프가 '조건'으로 제시한 "2020년 대선 부정선거 입증"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과제다. '대선 사기론' 자체가 사기라는 것은 트럼프도 잘 알고 있다.

앞서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시드니 파월 변호사 등 트럼프 변호사들이 도미니언 투표기 등 투표기 조작을 통한 선거 사기론, 베네수엘라의 대선 개입론, 우편투표를 통한 선거 사기론, 선거인 명부 조작설 등 다양한 버전의 '선거 사기론'을 주장했지만 수십건의 법정 소송에서 모두 패했다. 지난 9월말에는 애리조나주에서 공화당이 주도한 재검표에서도 조 바이든이 승리한 사실이 재확인됐다.

공천권, 선거법 개정, 2024년 대선 사기론 점화

때문에 트럼프의 요구를 다른 차원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첫째, 트럼프의 대선 사기 주장에 공화당도 실체적 진실(애리조나 재검표 등에서 거짓이라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따위는 무시하고 적극 동조하라는 요구다. 궁극적으로는 2022년과 2024년 선거에서 '선거 사기론'에 동조하는 정치인들을 공천해 공화당을 좀더 확실한 '트럼프 당'으로 만들려는 계산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현재 공화당이 장악한 텍사스주 등 여러개 주에서 진행 중인 선거법 개정의 명분을 강화하려는 목적이다. 공화당이 주지사나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레드 스테이트'들은 트럼프가 문제 삼았던 우편투표 등 유권자의 투표 참여를 어렵게 하는 방향으로 선거법 개편을 추진했다. 선거 당일 현장투표가 어려운 저소득, 유색인종 유권자들의 투표권 행사를 제약하면 상대적으로 공화당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셋째, 앞에서 인용한 빌 마허가 주장한 것처럼 2024년 대선에서 무조건 승리하기 위한 로드맵이다. 2020년 선거 사기 주장을 통한 쿠데타가 실패한 이유를 트럼프 진영에선 이미 따져봤을 것이다. 조지아주, 애리조나주 등 공화당 주지사가 있는 경합주에서 선거 결과를 뒤집지 못한 점, 지난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회에 무장난입 했지만 대선 결과를 확정짓는 상하원 합동회의를 결렬시키지는 못한 점, 이 회의를 주재하는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이 법을 무시하고 선거 결과를 뒤집는 일에 동참하지 않은 점 등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트럼프 진영에서 2020년 실패했던 쿠데타를 2024년에는 성공시키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하나씩 끌어모아 완성시키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 가능하다.

트럼프의 '선거 보이콧', 단기적 협박인가 장기 플랜인가

트럼프의 대중 동원력이 여전하다는 것은 조지아주, 아이오와주에서 최근 가졌던 대규모 유세를 통해 재확인됐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공화당 지지자들의 절대 다수가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트럼프가 꺼낸 '선거 보이콧' 카드가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지 않다. 실제 행동에 돌입한다면 피해를 입는 쪽은 아이러니하게도 공화당이다. 현 공화당 지도부에게 이 성명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공화당을 파괴하겠다"는 협박으로 들릴 것이다.

트럼프가 제시한 시간표가 2024년 대선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더 큰 위험이 내재된 선언이라고도 볼 수 있다. 트럼프와 그의 열혈 지지자들이 진짜 파괴하고 싶은 것은 다수결로 승자를 결정짓는 선거 시스템 그 자체라는 사실은 지난 1년여의 시간을 통해 충분히 확인됐다. 

트럼프가 군불을 떼기 시작한 '슬로우 쿠데타'의 결말은 미국 다수 유권자들이 민주주의 시스템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얼마나 견고한 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 지난 9일 아이오와주에서 열린 트럼프의 유세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트럼프 지지자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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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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