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40년 아프간 전쟁, 이제 미국이 그들에 진 빚을 갚을 때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미국의 아프간 손익 계산서

21세기 초강대국 미국이 전쟁에서 졌다. 아프간 수도 카불의 미 대사관 성조기는 내려지고, 미국인들은 서둘러 비행기에 올랐다. 1975년 베트남 상황이 떠올려지는 시점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사이공과는 다르다”고 주장했지만, 미국의 패배라는 본질에서는 다를 바 없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인의 인명과 미국 시민들의 세금을 갉아먹던 ‘아프간 수렁’에서 빠져나오긴 했지만, 명예로운 철수는 결코 아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아프간 철수 결정이 “미국을 위해 올바른 일이다(the right one for America)”라고 주장했다. 일부 국내 언론 매체에선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표현을 썼지만, 원문을 찾아보면, 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늘 그랬던 것처럼 노골적인 이해타산의 표현은 아닌 듯하다. 탈레반의 공세에 밀려 목숨이 위태로워진 대사관 직원과 아프간 주둔 미군 철수를 두고 틀린 결정이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프간 개입이 실패로 막을 내리는 것을 지켜보는 미 대통령으로선 마음이 쓰릴 것이다.

“무엇이 잘못 됐나"

미국이 대외정책에서 참담한 실패를 겪을 때마다 미국 언론은 물론 미 워싱턴의 정치권이나 연구소(싱크 탱크)에서 곱씹어야 할 물음이 하나 있다. “무엇이 잘못 됐나(What went wrong?)"이란 것이다. 여기서 주류를 이루는 것은 세계 초강국인 미국이 왜 제3세계에서 패배하는 모습을 보이는 원인이 무엇인가를 따져보는 것이다.

카불이 이제 막 함락당한 시점이므로, 제대로 된 분석 리포트가 나오려면 아직은 이르다. 하지만 접근 방식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면, 올바른 진단을 하긴 어려울 것이다. 제대로 된 답을 찾아내려면? 무엇보다 미국은 선하고 세계를 지키는 ‘자비로운 패권국가’라는 오만함을 버려야 한다. 아울러 상대를 악(evil)으로 모는 미국 특유의 선악 2분법 구도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나라의 재건을 책임 있는 모습으로 도와야 한다.

▲난민수용소에서 만난 아프간 모녀. 오랜 전쟁에 지친 모습이 묻어난다 Ⓒ김재명

사이공과 카불의 닮은 꼴

되돌아 보면, 미국의 아프간 철수 과정은 베트남의 판박이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미국은 이른바 ‘베트남 수렁’에 빠져 엄청난 정치 경제적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 수렁에서 빠져 나오려고 미국은 파리평화회담(1973년)을 열었다. 파리회담의 주역은 미국-북베트남이었고, 남베트남의 사이공 정부는 테이블에서 빠졌다. 이번 아프간 철수 과정도 베트남과 닮았다.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미-탈레반 협상에서 카불의 아프간 정부 대표는 없었다.

동맹이니 혈맹이니 하는 말이야 듣기에 그럴 듯하지만, 많은 경우 거추장스러울 땐 버려지기 마련이다. 베트남과 아프간의 차이가 있다면, 미국의 동맹이 무너지는 시간의 차이일 뿐이다. 베트남 사이공 정부는 미군이 철수한 시점(1973년 3월)에서 2년이 지난 뒤 무너졌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미군이 올해 8월말로 예정된 철수를 마감하기도 전에 카불이 점령됐다. 탈레반의 진격 속도가 빛보다 빠르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대리전쟁으로 빠져든 아프간 수렁

흔히 미국의 20년 전쟁이라 말한다. 2001년 9.11테러를 겪을 뒤 그해 10월부터 오사마 빈 라덴과 그를 보호해주던 탈레반 정권을 상대로 전쟁을 했으니 딱 20년째 전쟁을 해왔다. 하지만 이 ‘20년 전쟁’이란 표현도 정확하진 않다. 돌이켜 보면, 1980년대 1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을 상대로 한 게릴라전에 미국이 개입했다. 따라서 ‘40년 전쟁’이란 표현이 맞다.

1980년대의 냉전시대에 미국의 숙적인 소련의 힘을 빼는 대리전쟁(proxy war)에서 도구로 쓰여진 인물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잘 아는 오사마 빈 라덴이다. 미국은 아프간 무자헤딘(이슬람 전사)들에게 달러와 무기를 대줘 소련군에 맞서 싸우도록 했다. 그 10년 동안 빈 라덴은 미국의 동맹자였다. “국제정치에선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빈 라덴의 경우를 보면 딱 들어맞는 말이다.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나자, 미국은 바로 한 달 뒤 아프가니스탄을 공습하면서 전쟁을 벌였다. 그 무렵 미국의 일부 평화주의자들이 “전쟁은 마지막 수단”이라며 외교적 해법을 강조했지만 헛일이었다. 지구상 어디선가 전쟁이 터지기를 바라는 미국의 군수복합체는 9.11테러가 전쟁 특수를 안겨다 주는 절호의 기회로 여겼을 게 뻔하다.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할 당시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의 경우도 그러하다. 체니는 조지 부시 밑에서 부통령에 오르기 전에 핼리버튼 기업의 CEO였다. 거액의 스톡 옵션을 갖고 있던 체니는 핼리버튼에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의 일감을 몰아주었다. 전쟁 특수로 핼리버튼의 주가가 오르면서 체니는 떼돈을 벌었다. 죽음의 상인이 따로 없다고 말해야 할까.

한국 국방비 50년 어치 쏟아부어

미국의 아프간 침공 뒤 20년이 지나는 동안 미 시민들은 천문학적인 전쟁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미 브라운대학 부설 왓슨연구소는 '전쟁 비용'(Costs of War) 프로젝트를 통해 2001년 9.11 테러 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여온 전쟁의 비용과 희생자들의 규모를 집계해왔다. 이 프로젝트는 21세기의 초강대국이 전쟁을 벌이면서 치르는 비용은 어느 정도이며, 그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가를 자세하게 보여준다.

왓슨연구소의 집계에 따르면, 2001년10월부터 2021년4월까지 20년 동안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2,442명의 미군 병력을 잃고, 무려 2조 2,610억 달러의 전쟁 비용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1년 국방비가 440억 달러 규모라는 점을 떠올리면, 무려 50년 어치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액수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비용은 2년 뒤인 2003년부터 벌어진 미국의 이라크 전쟁 비용과 거의 같다. 미군 1인 당 비용에선 차이가 난다. 미국 전략예산평가센터(CSBA) 보고서에 따르면, 미군 1인 당 비용에서 아프가니스탄이 이라크보다 2배 많다. 미국이 아프간에서 비싼 전쟁을 치러야 했던 것은 다른 무엇보다 험난한 지형지물 때문이다. 사막이나 평지가 대부분인 이라크와는 달리, 아프간은 산악 지형이라 작전 수행이 어렵기에 비용이 더 들었다.

24만명의 죽음은 누가 책임지는가

앞서 미군이 2,442명 전사했다고 적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아프간에서 목숨을 잃었다. 왓슨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21년 사이에 7만명 넘는 비무장 민간인들을 포함해 모두 24만 명쯤이 죽었다. 여기에는 경비 보안 용역 등으로 아프간에 갔던 일반 미국인 3,936명, 국제안보지원군(ISAF)란 이름으로 파병됐던 나토 연합군 1,144명, 아프간 군경 7만5천~7만8천 명, 탈레반 전사 8만4천 명이 포함된다.

왓슨연구소의 사망자 통계 자료는 매우 보수적으로 다뤄졌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 통계에 잡히지 않은 죽음들이 상당수 있다는 얘기다. 사망자 통계의 불확실성을 감안하더라도, 그 죽음들은 헛된 죽음이다. 9.11 테러 뒤 외교적으로 문제를 풀었다면, 그래서 빈 라덴을 국제법으로 다루고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면, 지금도 살아있을 생목숨들이다.

요행히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많은 아프간 시민들은 집을 떠나 고달픈 난민 신세가 됐다. 유엔난민기구(UNHCR) 통계에 따르면, 2020년말 현재 국경을 넘은 전통적 의미의 난민(refugee)이 220만 명, 국내를 떠도는 피란민(IDPs)이 290만 명에 이른다. 이즈음의 상황을 떠올리면, 난민 숫자는 더 불어났다고 보면 틀림없다. 세계은행 통계를 보면, 아프간 국민의 절반이 빈곤선상에 놓여 있고, 1인당 국민소득 수준이 통계에 잡힌 228개 국 가운데 213번째다. 오랜 전쟁이 아프간을 최빈국의 나락으로 떨어뜨렸음을 보여준다.

미국이 져야할 책임

지난 4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을 전쟁의 화염 속으로 몰아넣은 것은 외부 요인이 매우 크다. 아프간은 미국과 소련을 양축으로 한 동서냉전의 희생자라 볼 수 있다. 10년 동안(1979~1989년) 무자헤딘들은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옛 소련군과 싸웠다. 하지만 동서 냉전이 끝난 뒤 아프간은 미국으로부터 버려진 땅이 됐다.

미국은 아프간의 국가재건을 나 몰라라 했다. 아프간의 한정된 자원을 둘러싸고 내전이 벌어졌고, 최종 승자가 탈레반이다. 1996년 아프리카 수단을 떠난 오사마 빈 라덴이 탈레반의 보호 아래 아프간에 근거지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미국의 잘못된 정책에서 비롯됐다. 아프간 현지취재 때 만난 사람들은 “9.11 테러가 없었다면 미국이 아프간에 다시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라 잘라 말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바그다드에서 미군 공습을 생중계한 일로 유명해진 기자가 CNN의 피터 아네트다. 지난 2002년 초 아프가니스탄 취재 때 CNN을 그만두고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던 그가 나와 같은 호텔에 묵게 됐다. 그런 인연으로 함께 카불 북쪽 지방에 가득한 지뢰밭 취재를 다녀오던 날 저녁, 아네트에게 슬며시 ‘미국의 아프간 책임론’을 꺼내봤다.

“1980년대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대리 전쟁으로 개입했다가, 소련군이 물러나자 아프간을 팽개치는 바람에 오늘 같은 사태가 났다고 보지 않는가?” 노련한 아네트는 내가 뜻하는 바를 알아채고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그 곁에 있던 30대 중반의 한 미국 기자가 내뱉듯 말했다. “나는 미국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불행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프간 전통 빵인 '넌'을 든 소년들. 이들의 얼굴에서 전쟁의 그늘이 말끔히 걷히는 날은 언제쯤일까Ⓒ김재명

“인도주의적 지원이 미국에 이롭다”

이제 탈레반 정권이 들어섰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탈레반의 엄격한 통치로 많은 희생자가 나올 것을 염려한다. 특히 여성에 대해 억압적인 정책을 펼 것인지도 관심사다. 여기서 다시 인권 문제가 떠오른다. 미국이 인권 침해를 명분 삼아 탈레반 정권의 아프가니스탄에 경제봉쇄와 제재를 가하는 상황도 일어날 수 있다. 이럴 경우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은 외교관계가 끊어질 것이고 아프간의 이웃 국가 이란처럼 적성국가로 맞설 것이다. 지구촌 평화에 도움되지 않는 일이다.

따라서 제재보다는 다른 합리적 수단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 붕괴를 노리고 개입하는 것은 미국을 오히려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만에 하나 제2의 9.11테러 같은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미국이 오히려 탈레반 정권과의 대화 창구를 열어놓고 국가재건을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이 미국에게 이로울 것이다.

워싱턴의 싱크 탱크인 미 전략국제연구센터(CSIS)의 핵심 연구원인 앤소니 코르데스만의 견해는 참고할 만하다. 그는 카불 함락 직후인 8월17일 CSIS 홈페이지에 올린 글(제목은 The Taliban Takeover: Plan Now for the Next Crisis in Afghanistan)에서 아프간에 대한 인도적 지원(humanitarian aid)이 꼭 정답은 아니지만, 탈레반 정권의 국내 억압정책을 순화시킬 뿐 아니라 아프간 외부에 대한 위협을 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썼다.

코르데스만은 나아가 조건부이긴 하지만 미국이 탈레반 정권을 외교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그는 대화 물꼬를 터는 것이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다 하더라도, 탈레반 정권에게 작은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여긴다. 그 작은 변화들이 많은 아프간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외교적 인정과는 반대로, 미국이 탈레반 정권에 제재를 함으로써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강공책은 이란이나 북한에서 이미 증명됐듯이 지역 평화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탈레반 제재는 오히려 미국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제2의 9.11테러가 벌어지는 일이다. 탈레반 정권이 국경을 맞댄 이란과 손을 잡고 반미 전선을 구축할 수도 있다. 미국으로선 다행스럽게도, 탈레반은 이란 쪽보다는 파키스탄 쪽과 가깝고 대화 창구도 열려있는 편이다.

이제는 빚을 제대로 갚을 때다

결론적으로, 다른 무엇보다 미국은 아프간의 40년 전쟁에 나름의 책임이 크기에 이제는 빚을 제대로 갚아야 한다. 진정한 ‘자비로운 패권국가’로서 다른 나라의 존경을 받으려면, 아프간에서 미국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진다. 탈레반과 외교적 만남을 통해 그동안의 갈등을 봉합한 뒤 아프간의 전후 국가재건을 겉치레 시늉이 아니라 제대로 도와야 한다.

한 가지 다행스럽다면, 외부의 지원금이 탈레반 체제 아래서 엉뚱한 곳으로 줄줄 샐 염려는 적다는 것이다. 탈레반 정권 지도자들은 부패한 친미 카불 정권의 지도자들과는 성향이 다르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워 엄격한 도덕성을 강조함으로써 21세기에 맞지 않는 전근대적인 행정을 펼치려 들지라도, 카불 친미정권을 안에서부터 무너뜨린 부패는 없을 것이다.

‘전쟁의 신’이 있다면 바로 그 신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땅이 아프간이다.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도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정도로 죽음이 휴지처럼 가볍게 여겨지는 곳이 다. 눈을 감으면, 오랜 전쟁에 지친 아프간 사람들의 어두운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에게 늦게나마 진정한 평화의 빛이 깃들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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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명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kimsphoto@hanmail.net)는 지난 20여 년간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 세계 20여 개국의 분쟁 현장을 취재해 왔습니다.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중앙일보>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미국 뉴욕시립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국민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22년까지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저서로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오늘의 세계 분쟁> <군대 없는 나라, 전쟁 없는 세상> <시리아전쟁>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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