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코스프레 역겹다"에 청소노조 "권력자 생각 반영한 듯"

'시험 갑질' 사망한 청소노동자 논란...노조 "학생처장 해명, 사실관계 다르다"

"너도 나도 피해자 코스프레 역겹다"는 구민교 서울대 학생처장의 글에 노조가 사과를 요구했다.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은 11일 입장문을 내고 "구민교의 주장은 개인이 아니라 서울대의 소위 권력 있는 자들과 일군의 세력들이 갖는 생각의 반영으로 여겨진다"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달 26일 50대 여성 청소노동자 이 모 씨가 서울대 925동 기숙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청소노동자들이 업무와 무관한 필기시험을 매주 치르고 출퇴근 복장을 지적당했다는 등의 폭로가 이어졌다.

앞서 구민교 서울대 학생처장(행정대학원 교수)은 9일 페이스북에 "한 분의 안타까운 죽음을 놓고 산 사람들이 너도 나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역겹다"고 했다가 논란이 되자 "정치권을 두고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구 교수가 언급한 '정치권'은 전날(8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페이스북에 해당 기사를 공유하며 "40년 전 공장에 다닐 때도 몇 대 맞으면 맞았지 이렇게 모멸감을 주지는 않았다"고 비판한 글을 의미한다.

▲ 서울대학교에서 사망한 청소노동자가 근무하던 925동 여학생 기숙사 내 휴게실의 모습. ⓒ연합뉴스

노조 "구 교수 주장과 해명, 사실관계 다르다"

노조는 "학생처장은 기숙사와 무관하다. 그럼에도 글의 많은 표현이 자신이 직접 그 자리에서 보고 듣기라도 한 것인 양 표현돼 있다"면서 "구민교가 행정학과 교수이고 (갑질 당사자로 지목된) 해당 팀장이 해당 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는 사실과 관련된 사적 인연 때문은 아니길 바란다"고 했다.

노조는 구 교수의 주장과 해명도 사실관계와 다르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노조는 애초에 이 사건의 배후에 갑질 문제가 있음을 알지 못했다"며 "최초 6월 28일 오전에 부고를 통해 사망사실을 알았고 당일 조문 간 자리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갑질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를 현장 노동자들을 통해 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조는 "현장 노동자들이 호소하는 갑질 문제를 자세히 알아봐야겠다는 판단으로 6월 29일 현장 노동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제초작업, 드레스코드, 청소겸열, 시험 등 종합적인 애로사항을 최초로 들었고 인사평가서와 시험문제지도 이 자리를 통해 확보했다"고 밝혔다.

노조는 "이에 갑질 문제는 현재 근무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문제이기도 하기에 공식문제제기 하겠다고 판단하고 7월 1일 개별 노동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서를 받았다"면서 "오로지 산재 인정을 억지로 받아내기 위해 기자회견 등 이 문제를 키웠다는 발상이야 말로 엉뚱한 생각"이라고 했다.

노조는 구 교수가 고인이 '드레스코드에 감사했다'고 해명한 내용에도 반박했다. 노조는 "고인은 퇴근복장에 감사하다는 표현을 했을 뿐 '드레스코드' 자체에 감사하다고 한 사실은 없다"며 "해당 표현은 정확히 6월 16일 세 번째 미화 회의에 관한 공지에 대한 것이다. 동료 진술에 의하면 해당 회의에서도 드레스코드는 여전히 유지됐고 그에 대한 고위 '검열'도 있었으며 다음날 그에 대해 고인은 동료와 불만을 토로했을 뿐이다"라고 했다.

노조는 "고인은 드레스코드가 없는 줄 알고 갔다가 입은 옷에 평가질하는 것을 보고 불편해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에 따르면 고인은 그날 초록색 나뭇잎 무늬 옷을 입었는데 이에 대해 해당 팀장은 '나뭇잎 무늬? 나뭇잎 무늬?...(훑어보며 갸우뚱 거리면서) 어... 어... 통과~'라면서 마치 자기가 원하는 드레스코드가 아닌데 통과해주는 것처럼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고인은 다음날 동료에게 '나 나뭇잎 무늬 입은 거 어제 지적받았다. 그거 입었다고 지적받았어'라며 얼굴이 굳어있었고 '우리가 최저임금밖에 못 받으면서 일을 하는데 옷 살 돈 따로 빼 놓고 아무래도 정장 하나 사 놔야 할까봐'라는 얘기를 하며 서로 불편해 했다고 한다.

노조는 "고인이 '오죽했으면 지금은 할 수 없이 참지만 나중을 위해 다음 회의부터는 녹음을 하자'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노조는 "순전히 사적영역인 출퇴근 복장에 대해 누군가의 잣대로 평가받고 그것을 신경써야 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며 그것이 권력관계의 우위에 있는 자에 의해 강요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며 "(회의 때) 필기구 미지참시 감점이라는 언급을 농담조로 했다 하는데 그것이 농담으로 수용될지 아닐지는 권력관계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조가 제기하는 부분이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면 공동조사를 통해 밝히면 되는데 이를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며 "일이 엉뚱하게 흘러간다는 것이 무슨 뜻이고 그것이 노조의 개입 때문이라는 것은 무엇을 근거로 하는가"라고 덧붙였다.

이재명 "학교, 진상규명 적극 나서달라"

한편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이날 서울 관악구 서울대 기숙사를 찾아 "학교 당국도 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밝혔다. 이 지사는 유족과 노조, 여정성 서울대 교육부총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당사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진상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이번 사건으로 무엇보다 인간의 존엄, 또 노동하시는 분들의 인격적 대우를 다시 한번 우리 사회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지사는 노조 측의 공동조사단 요구를 학교 측이 수용해줄 것을 건의했다. 이 지사는 "학교 측과 노조 사이에서 조사 주체에 어디까지 참여하느냐를 두고 견해가 엇갈리는데 학교 측이 (노조도)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게 기회를 주면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보다 많은 분이 동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지사는 유족과 대화를 나누면서 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이재명 캠프의 홍정민 대변인은 "부군이 매일 아내와 같이 출근하다가 지금은 혼자 출근할 수밖에 없어서 출근 때마다 운다는 말을 듣고 이 지사가 많이 우셨다"며 "청소노동자였던 여동생이 7년 전 화장실에서 돌아가셨는데 그때 생각이 많이 나서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고 했다.

이 지사의 여동생은 이 지사가 성남시장으로 재임하던 중 청소노동자로 일하다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예비후보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1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기숙사 청소 노동자 사망 현장을 방문한 뒤 유가족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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