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회복 외치며 상식 부순 윤석열의 '내로남불'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깨끗한 손, 교활한 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선 도전을 정당화하는 말들이 ‘미신’처럼 많이 떠돌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애초 정치적 야심이 없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를 대선으로 내몬 것은 현 정권이다, 그의 인기는 현 정권의 법치주의 파괴에 대한 중도층의 저항에서 나온 것이다….' 윤 전 총장 스스로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처음부터 정치하겠다고 한 게 아니지 않으냐. 난 국민한테 소환돼서 나왔다." 일종의 '국민소환론'이다.

이런 주장들이 타당한지를 따지는 것은 이제 부질없는 일로 보인다. 그는 이미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고, 누가 뭐래도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의 한 사람이다. 대중의 관심도 점차 그와 가족의 도덕성 문제, 그리고 대통령으로서의 국정운영 능력 검증 쪽으로 옮아가고 있다. 물론 이런 사안에 대한 검증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가 현직 검찰총장에서 곧바로 대선 주자로 나선 것이 법적, 윤리적, 도의적으로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검증’이야말로 그 어떤 검증에 우선한다. 이 문제는 그가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가장 원초적 관문이다.

과연 윤 전 총장은 “애초 1%도 정치적 야심이 없던” 사람이었을까? 그런 주장은 “애초 정치적 야심이 충만했다”는 말과 똑같이 거짓과 진실을 가리기 힘든 말이다. 그의 깊은 속마음과 계산을 누가 정확히 알 수 있겠는가? 시중에는 이런 말도 떠돈다. “윤 전 총장은 오래 전부터 자신이 미래에 대통령을 할 수도 있는 운세가 있다는 말을 듣고 야심을 불태워왔다. 그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친 것은 검찰개혁에 대한 저항 등 다른 여러 이유도 있었지만 잠재적 대선 라이벌을 조기에 제압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혀를 찰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굳이 비교해보자면 그 말보다 오히려 “1%도 정치적 야심이 없었다”는 주장이 내게는 훨씬 더 허무맹랑하게 다가온다. ‘정치적 야심 0%’였던 사람이 단기간에 ‘정치적 야심 100%’로 ‘급속 충전’되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하며 정상적인가?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이미 정치적 야심이 잠복해 있었다는 것이 지금의 ‘100% 야심 충만’ 상황을 설명하는 데 더 합리적 아닐까.

윤 전 총장은 자신의 대선 도전을 '국민소환론'으로 설명한다. 대선 출마 선언에서도 "국민이 나를 계속 지지하고 성원"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국민이 그를 소환'한 게 아니라 '그가 국민을 유인'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우리나라에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무조건 국민의 박수를 받고 그 주인공은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게 돼 있다. 현 정부와 불화를 빚었다는 이유만으로 단박에 야권 대선주자의 반열에 오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예를 보라. 현 정권에 대한 적개심으로 들끓는 세력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정치 지형에서 정권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행위는 화약고에 불씨를 당긴 것처럼 폭발적인 지지세로 타오르게 돼 있다. 윤 전 총장은 그 지점을 정확히 타격한 것이다.

윤 전 총장의 정치적 야심, 그리고 검찰의 중립성 이탈과 관련해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있다. 윤 전 총장은 대선 출마 선언에서 "현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고 한다. 도저히 이들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지난해 8월3일 신임검사 신고식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에는 여기에 "도저히 이들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는 말을 하나 더 추가함으로써 발언의 의미를 더욱 분명히 했다. 신임검사 신고식 발언과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줄로 연결해보면 윤 총장의 정치 행보는 확연히 그려진다. 그는 총장 재임 시절부터 ‘자유민주주의’ 단어를 부정하는 정권을 그냥 놔둘 수 없다는 이념적 신념에 불타고 있었다. 현 정권에 대해 강렬한 이념적 적개심을 가진 검찰총장이 어떻게 정치와 무관하며, 그가 지휘하는 수사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중립일 수 있는가. 뒤돌아 보면 신임검사 신고식 발언은 사실 윤 전 총장의 확실한 '정치 개시 선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그를 두고 "현 정권의 검찰총장"이라고 말했는데 이미 현 정권을 "독재 전체주의 정권"으로 규정하고 대선 준비를 하던 윤 전 총장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얼마나 웃었을까?

"윤 전 총장의 인기는 현 정권의 법치주의 파괴에 대한 중도층의 저항에서 나온 것"(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따위의 주장도 별로 설득력이 없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에서부터 시작해 '검·언 유착' 사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국금지 사건, 윤 전 총장에 대한 징계 회부, 그리고 최근의 해직 교사 특별채용 수사에 이르기까지 지긋지긋할 정도로 법, 법, 법의 연속이다. 도덕과 상식, 건전한 이성을 가지고 충분히 해답이 나올 문제에도 법조문과 규정집을 들이대며 신물 나게 싸웠다. 싸움의 당사자들이 법을 전공으로 살아온 사람들인 탓도 있었을 것이다. "수사지휘권 박탈은 형성적 처분으로서 쟁송절차에 의해 취소되지 않는 한 지휘권 상실이라는 상태 발생"(윤석열 전 총장)이라는 말을 이해할 국민이 몇이나 될까. 일반인들은 이해하기도 힘든 난해한 법조문과 법률적 용어들의 잔치였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건에서 윤 전 총장 세력은 법과 규정을 앞세워 자신들의 뜻을 관철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법치주의가 훼손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법치주의의 훼손이 아니라 오히려 법치주의의 과잉이라 말해야 옳다.

우리나라의 '법치'는 언제부터인가 '법을 앞세운 정치', '법을 무기로 한 정치'의 줄임말이 돼버렸다. 미국의 정치학자 마틴 셰프터와 벤저민 긴스버그는 폭로(Revelation)-수사(Investigation)-기소(Prosecution)로 이어지는 이른바 'RIP 정치'를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라고 이름 붙였는데 윤석열 검찰총장 시대야말로 다른 수단의 정치, RIP 정치가 가장 기승을 부린 시기였다. 윤 전 총장은 법을 무기로 한 정치를 통해 야권 지지층 결집이라는 정치 밑천을 톡톡히 마련했고, 그 재산을 내세워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윤 전 총장이 내세우는 이미지는 1990년대 부정부패 척결에 앞장섰던 이탈리아 검찰에게 붙여졌던 '마니 폴리테'(Mani Pulite) '깨끗한 손' 이미지다. 실제로 많은 보수언론이 그의 검찰총장 재임 시절 ‘깨끗한 손’을 들먹이며 그와 검찰을 칭찬했다. 윤 전 총장은 깨끗한 손 이미지를 차용해 자신을 ‘정의로운 검사’의 표상으로 자리매김하고 더 나아가 '정의를 실현하는 대통령'으로 도약하려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난 행보를 뒤돌아보면 그는 깨끗한 손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마니 푸르베(Mani furbe)라는 말이 더 적절해 보인다. 'furbe'는 이탈리어로 '교활한'이란 뜻이다.

검찰총장이 곧바로 대선에 출마하는 것은 어떤 이유와 변명을 갖다 붙여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것은 일종의 상식이다. 그래서 그가 총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설마 검찰총장이 곧바로 대선에 출마하는 비상식적 사태가 벌어질까' 생각한 사람들이 한동안 적지 않았다. 그런데 '설마'는 '현실'로 나타났다. 윤 전 총장은 출마 선언에서 현 정권을 "상식을 짓밟는 정권"이라고 맹공을 가했는데 정작 상식을 짓밟은 사람은 윤 전 총장 자신이다. 상식을 저버린 사람의 입에서 상식의 회복이라는 말이 쏟아져 나오는 광경은 희극이고 비극이다. 마니 푸르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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