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커밍스 "미국이 한반도 전쟁 못 끝낸 게 '북한 핵보유' 촉발"

"한국전쟁, 이제 어떻게 끝내느냐에 집중할 때...미국도 책임 통감해야"

"한국은 전쟁이 얼마나 쉽게 일어날 수 있는지, 또 전쟁을 끝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분명한 사례다."

<한국전쟁의 기원> 등의 저서로 유명한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학교 교수는 24일(현지시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워싱턴 협의회에서 주최한 한국전쟁 71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커밍스 교수는 "1950년대만 해도 사소한 위협에 불과했던 북한이 현재 핵무기를 보유한 커다란 위협이 되기까지 방치한 책임이 미국에 있다"며 "한반도 전쟁이 끝내지 못한 것이 이런 상황을 촉발했다"고 지적했다.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프레시안(전홍기혜)

커밍스 교수는 1953년 당시 미국이 정전협정을 체결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휴전협정을 체결하게 됐다는 점에서 미국의 책임을 강조했다.

"당시 미국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이 작은 나라에 (일본에 사용했던 것과 같은) 원자폭탄 사용을 공공연하게 협박했다. 1953년 미국 언론에 네바다에서 진행한 핵무기 실험에 대한 기사들이 나오기도 했다. 또 미국은 북한을 상대로 댐 폭파 계획을 세우기도 했으며, 민간인들 사이에 군인들이 숨어 있다는 이유로 민가에도 폭격을 가했다. 미국은 북한을 상대로 이런 여러가지 형태로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미국은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한반도에서 전쟁을 끝낼 의사가 없다."

미국, 중국, 북한 사이에 1953년 맺은 '휴전협정'은 언제라도 전쟁을 재개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전쟁이 끝났다는 종전협정, 더나아가 평화협정 체결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러나 미국 외교관료나 정치인들 중에 이에 공감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조지 W. 부시 정권이 2000년대 초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정할 때에도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 기대했다. 30년 이상 북한이 붕괴할 것이란 생각을 기반으로 정책을 세웠지만 북한 정권은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북한 정권은 왜 붕괴하지 않나? 북한은 철저한 반제국주의 국가다. 북한 정권이 수립될 때 만들어진 헌법에도 명시돼 있다.

미국은 북한이 어떤 나라인지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채로 북한 붕괴론을 말하고 있다. 부시 정권 초 정부 인사들과 토론회를 하면서 느낀 점은 클린턴 정부 때 축적된 북한에 대한 정보와 이에 기반한 정책이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정권교체기 때마다 이런 단절이 일어나면서 북한 핵문제가 장기화된 측면도 있다."

커밍스 교수는 평화협정 체결의 필요성과 북한 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강조했다.

"제가 1981년 <한국전쟁의 기원> 책을 처음 출판할 때만 해도 2021년 이런 토론회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한반도의 문제는 몇십년째 동결돼 있는 것 같다. 미국은 한반도 분단 이후로 75년이나 한반도 문제에 개입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가장 어려운 문제로 이해하고 있다...미국과 북한의 관계에 있어 우리가 먼저 추구해야할 조치들 중 하나가 바로 일단 만나서 대화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대화를 시작하고 나서 20년은 지나야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반도 전쟁을 끝내지 못한 것이 이런 상황을 촉발했다는 점에서 북미관계가 정상화되고 외교 정상화가 이뤄진다면, 현 상황은 완전히 바뀔 수 있다. 외교의 진정한 의미는 적과도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토론자로 참석한 서혁교 미주동포전국협회NAKA 회장은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등 통상적으로 전쟁을 시작한 날이 아니라 전쟁을 끝난 날을 기념하는데, 한국전쟁은 전쟁을 시작한 날(6월 25일)을 기념한다"며 한국전쟁이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한국전쟁을 누가 시작했는지에 집착하지 말고 이제 어떻게 끝내느냐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크리스틴 우먼 크로스 DMZ 총괄이사는 "한국전쟁은 미국 군산복합체를 낳은 원흉이기도 하다"며 "한국전쟁을 끝내는 것이 미국 군사주의 확장을 막는 일이기 때문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체에 가시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민주당 브래드 셔먼 의원이 하원에서 한반도 평화법안을 발의했다"며 "미국에서 민주당 정부가 들어선 지금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도록 최대한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태현 살즈버리대 교수는 "한반도 문제를 이야기할 때 핵, 경제제재 등 크고 무거운 이야기에 압도 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정작 우리가 풀 수 있는 문제들조차 풀지 못하고 있다"며 "미국의 학생들에게 한국의 국가보안법을 이야기하면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을 적으로 생각하는 인식을 바꾸는 등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24일 열린 평통 워싱턴 협의회 주최 한국전쟁 71주년 기념 토론회. 왼쪽부터 조현숙 우먼 크로스 DMZ 활동가, 브루스 커밍스 교수, 서혁교 회장, 남태현 교수. ⓒ프레시안(전홍기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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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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