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부문 외국인 근로자 제도의 명과 암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신자유주의와 농업의 위기

신자유주의와 농업의 위기

20세기 후반 본격적으로 진행된 전지구화(globalization) 현상은 국가 단위로 조정되고 조직되던 것들을 해체하고 세계를 하나의 표준화된 시장으로 통합할 것을 강조하는 무역의 자유화로 요악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무역의 자유화를 표방하는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논리를 곧 사회 핵심 원리로 파악하며 시장이 작동하는 데 장애물로 작용하는 국경, 국가 간 차이를 없애는 것을 목적으로 전 세계적인 경제 지리를 재편하고 있다.

이러한 자유무역의 전지구화는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전방위에 걸쳐 영향을 끼치고 있으나, 그 중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농업 부문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농업은 국가 자원과 연결되어 국가 정체성이나 국익의 차원에서 논의되었으나, 신자유주의 담론의 확산으로 농업이 경제적 가치로 간주되면서 농업은 국가 차원이 아닌 시장 경제의 차원에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무역 자유화로 정부는 보조금의 단계적 폐지나 토지개혁 같은 개혁 조치를 단행하게 되고 농민은 국내 시장에서 수입 농산물과 경쟁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고 농가 소득은 감소하게 된다.

무역 자유화는 농산물의 생산, 저장, 가공, 유통의 연계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그런데 이러한 부가가치는 농업 신기술을 가진 초국적 기업의 몫이기 때문에, 대다수의 농가는 단위당 생산성이 높아지더라도 소득은 늘지 않는 불균형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 결과 초국적 상품 사슬에 속하게 되는 대농은 생산성이 높은 상위농이 되고, 그렇지 못한 중농의 몰락은 영세농의 증가를 이끌어 농촌의 소득불균형과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영세농들은 생산비를 절감하기 위해 기계화로 노동의 수급을 대체하려 하지만 높은 기계값 등으로 부채비율이 증가하게 되면서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게 된다.

결국 다수의 영세농들은 저임금 국가의 이주노동자들이라는 저임금 노동력에 의존해 생산비를 절감하려는 선택을 하게 된다.

한국 농촌공동체의 위기

한국의 농촌 또한 신자유주의의 영향 하에 빈곤화, 고령화, 노동인구 부족이라는 삼중고에 빠져 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정부는 농촌 노동력의 지속적인 유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주산지 육성과 경제작물 재배를 강조했고, 농산물 시장 개방과 내수 경쟁의 심화 속에서 채소, 과수, 특용, 화훼와 같은 경제작물을 중심으로 농업 구조가 재편되면서 농민들은 먹고살기 위해 농사를 짓던 농업인에서 분업화, 상품화를 수행하는 경영인으로 전환되었다.

여기서 주산지란 특정 작물의 생산이 집중되고, 시장 수요에 대한 대응력이 높은 생산 지역을 의미한다. 주산지 농업으로의 전환은 생산과 유통의 단위가 집단규모로 조직화되고 농산물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정부 정책이 개입되는 사회경제적 변화를 수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농민들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농산물 상품화에 많은 금액을 투자하지만, 오히려 생산비가 증가하면서 농가의 실질 소득은 하락하는 농업시스템이 고착화되어 농가의 빈곤화와 양극화 문제가 나타나게 되었다.

1990년 도시근로자 소득 대비 농가소득은 97.4%로 나타났으나 2019년에는 62.2%로 도시 근로자들의 소득 증가에 비해 농가 소득이 감소한 점, 그리고 2019년 기준 영세농가의 농가 소득이 대농 소득의 31.1%에 불과하다는 점은 한국 농촌의 빈곤화와 양극화 문제를 잘 보여주고 있다(통계청, 2019).

일반적으로 대농은 경지 규모 10ha(헥타르) 이상, 영세농은 경지규모 0.5ha 미만 농가를 지칭한다. 2019년 통계청 농가경제조사에 따르면 경지규모 10ha 이상의 대농 농가소득은 1억 1260만 3000원인 반면, 경지규모 0.5ha 미만의 영세농 농가 소득은 3505만 3000원으로 나타났다.

농가의 빈곤화와 함께 농촌의 상황을 악화시키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는 농촌인구의 급감과 노동력의 고령화 현상을 들 수 있다. 한국의 농촌은 빠른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농촌인구가 큰 폭으로 감소해왔고,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농촌인구의 선별적인 유출이 진행되어왔다.

그 결과 2019년 기준 국내 농가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46.4%로 전체 인구 중 고령인구 비율인 14.9%보다 약 3배 더 높게 나타나고 있어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통계청, 2019).

한국의 농업부문 고용허가제도와 계절근로자제도

농촌 지역의 경제·사회·문화적 여건이 악화되면서 야기된 내국인 인구의 유출은 외국인 인구의 유입으로 메워지고 있다. 특히 정부는 농업 분야의 노동력 부족 문제를 외국인 근로자 유입을 통해 해결하고자 관련 제도를 꾸준히 정비해 나가고 있다.

1990년대부터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가 농촌에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제도적으로는 2002년 외국인 산업연수생 제도가 농업분야에 제한적으로 도입됐다. 그러나 산업연수생 제도는 제조업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정책이기 때문에 농업 부문의 특수성이 반영되지 못했고,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아 심각한 인권침해가 자행됐다.

이에 2004년 신설된 고용허가제도는 초기부터 농축산업 부문을 마련하여 농업 분야에 적합한 노동력 공급을 꾀했지만 실제 운영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드러났다. 대표적으로, 농업 부문은 작물의 생장 주기에 따라 노동력 수요의 변동이 커 평균 수요에 따라 상용근로자를 고용할 시, 농한기에는 유휴 노동력이 문제가 되며 농번기에는 노동력 부족이 문제가 된다.

고용주들은 경제적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임의로 근로자의 사업장을 변경하거나 불법 파견을 시행하게 되었고, 결국 외국인 근로자와 마찰을 빚거나 근무지 이탈의 원인을 제공하는 상황이 지속됐다.

이처럼 실제 농사 현장에 적용되면서 드러난 문제들은 농업 부문 근무처 추가제도, 농축산업 표준근로계약서 등을 통해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졌고, 2015년에는 농번기 인력난 해소를 위해 단기취업 형태의 계절근로자제도를 신설하여 농번기에 급증하는 일시적 노동력 수요를 위한 공급책을 마련하게 됐다.

그래도 여전한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칭 : 불법이지만 불법은 아닌

고용허가제도가 지속적으로 보완되고, 계절근로자제도가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도 안에서는 노동력 수요를 안정적으로 충족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구체적으로 농축산업부문 고용허가제도의 현황을 살펴보면 2016년 1만 3827건이 신청된 것으로 보아 한 건에 다수의 인원이 포함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해당연도에만 신규 외국인 근로자 수요가 수만에 이른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세부 업종 중 작물재배업은 신청 건수가 9,941건으로 농축산업부문의 72%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배정된 인원은 총 6,855명으로 제조업 포함 전체 고용허가제도 외국인 근로자의 13.5%에 불과하다(엄진영 외, 2019).

법무부 등록외국인 체류자격별 현황에 따르면, 고용허가제로 체류하고 있는 농업 부(E-9-3) 외국인 근로자 수는 12월 기준 2만 5428명(2015), 2만 7984명(2016), 3만 582명(2017), 3만 1462명(2018), 3만 1378명(2019)이다.

계절근로자제도 역시 2019년 프로그램에 참여한 54개 지자체의 총 신청인원은 5267명인데 반해 운영 인원은 3497명으로 수요 대비 공급률이 66%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법무부, 2019). 이러한 상황은 특히나 농가 규모 기준에 미치지 못해 제도조차 활용할 수 없는 소규모 농가를 중심으로 비공식 고용에 기댈 수밖에 없도록 한다.

2015년 통계청 농림어업 총조사에 의하면 시설원예 농가의 36.2%, 시설버섯 농가의 50.5%가 1000㎡ 미만의 규모이기 때문에 고용허가제도에서 요구하는 자격을 갖추지 못해 공식적 경로로는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없는 실정이다.

결국 외국인 근로자 수요와 실제 유입 규모를 제도적으로 포괄하지 못함에 따라 농업 부문에서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는 관습적으로 "불법이지만 불법은 아닌(정숙정, 2019, 97)"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외국인 근로자는 우리나라의 농업 부문을 지탱하고 있는 주요한 축이다. 이들이 없으면 사실상 농업을 포함하여 농촌 지역의 경제가 멈추게 될 만큼 우리 사회 깊숙이 들어와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 바탕에는 농촌 지역의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 있다. 정부는 농촌에서 노동력 수급이 어려워지자 산업연수생과 고용허가제와 같은 외국인 근로자 수입 제도를 통해 이를 해결하고자 했고, 최근에는 농번기 단기 고용 수요를 위한 계절근로자제도를 마련함으로서 꾸준히 외국인 근로자의 유입을 장려하고 있다.

결국 농촌 지역의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의존성은 높아지게 되었지만, 제도는 수요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수의 공급만을 보장하고 있어 비공식적인 고용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농촌의 고령화가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농촌 사회의 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기에,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는 제도적 보완과 농업 부문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과 연구가 절실할 것으로 보인다.

■ 참고자료

법무부, 2019, 외국인계절근로자 배정현황 통계, 정보공개청구자료.

엄진영·박준기·유찬희·김선웅, 2019, 농업인력 지원을 위한 외국인 근로자 관련제도 개선방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정숙정, 2019, “계절적 미등록이주노동자 유입 현황과 사회적 묵인(默認),” 농촌사회, 29(1), 69-106.

통계청, 2019, 2019 농림어업총조사.

■저자소개

김수정 박사는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교육과 인문지리학 전공으로 '로스앤젤레스 의류 산업의 글로벌 사회-경제 네트워크와 민족관계 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전남대학교 지역지리정보센터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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