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남' 허상을 신화로 만든 언론...'反페미'와 취업난이 대체 무슨 상관?

[시민정치시평] '이대남' 현상은 실재하는가? ②

최근에는 모 편의점의 광고가 메갈이라는 논란이 한창이다. 손가락으로 소시지를 집으려고 하는 게 메갈의 남성 비하 표현이며 알파벳을 억지로 조합하면 숨겨져 있는 megal(메갈)이라는 단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해당 편의점은 결국 사과문을 올리고 해당 광고를 철회했다. 근거 없는 메갈 논란은 유난히 올해 초에도 이미 유튜브에서 자주 등장했다. 이 논란들은 유튜버들이 자신이 메갈이 아니라고 해명하거나 자신이 절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일단락되었다. 이런 논란들은 주로 20대 남성들에 의해 제기된다. 그런데 이들은 메갈의 표식을 찾아내는 데 애쓰면서 정작 메갈이 왜 나쁜 것인지는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메갈을 바라보는 이들의 기준은 무엇일까.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페미니즘은 모두 나쁜 것이라는 의견과 페미니즘은 원래 좋은 것인데 일부 극단적 페미니즘이 변질되었다는 의견으로 나뉜다. 이 두 의견은 논리적으로 서로 다르기 때문에 충돌해야만 한다. 그러나 두 의견은 결국에는 '페미니즘은 나쁜 것이다'라는 말로 귀결된다. 이는 많은 20대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싫어하는 만큼 페미니즘이 실제로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차별 일반에 대해 많은 20대 남성들이 갖는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예전에 모 게임이 등장인물들을 성소수자로 설정했을 때 많은 20대 남성들은 이를 '피씨(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한 척'하지 말라고 비난했다. 이는 그냥 성소수자가 등장했다는 것이 불쾌하며, 자신의 주관적 불쾌함이 정치적 올바름 따위에 지적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미이다. 피씨한 척 한다는 단어는 지금도 남초 커뮤니티에서 자주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20대 남성들은 자신이 차별받을 때는 어떻게 주장하는가? 이들은 본인들이 정작 차별받고 분노한다고 이야기할 때는 같은 기준을 자기 자신에겐 적용하지 않는다. 즉 다른 차별에 대한 맥락들은 모두 피씨한 척이지만 오직 자신은 정당하게 분노할 권리를 갖는다고 믿는 것이다. 결국 이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은 단지 페미니즘을 비난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메갈 논란이 거짓인 것 같아도 '저런 논란을 통해 페미니즘이 피해를 입으니까 오히려 잘된 일이다'라는 사고방식은 이와 관련되어 있다.

20대 남성이 분노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은 곧 20대 남성을 인용하는 사람들의 기준 또한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언론들은 20대 남성의 분노를 최근에 등장한 특별한 현상처럼 여기고 있다. 예를 들면 '20대 남성의 분노, 선거의 주 패배 원인' '모 편의점 광고, 이대남들이 화가 났다' 같은 식이다. 정치권에서도 20대 남성의 분노를 달래야만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군가산점제, 여성 징병제, 여성 사회복무요원 제도이다.

군가산점제는 오래 전에 위헌으로 판결났다. 여성 징병제는 '남성이 받는 '불이익'을 여성이 똑같이 받는다고 해서 평등해진다는 논리'로부터 비롯된다. 여성 사회복무요원제는 돌봄종사자의 처우 개선을 방해하고, 요양원 및 아동센터 이용자가 받는 돌봄 서비스의 질을 하락시키며, 여성이 돌봄노동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성 역할 이분법을 강화할 것이다. 20대 남성의 의견을 반영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그 정치인이 얼마나 다른 이슈에 대해 무지한지를 드러낸 것이다.

20대 남성의 분노는 사람들에 따라 다양하게 쓰이지만, 정작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인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누군가 20대 남성의 분노를 인용할 때 실제로 20대 남성의 의견인지 아닌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20대 남성들의 의견과 언론에서 인용하는 20대 남성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20대 남성들과 그를 정당화하는 언론은 완전히 구분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어느정도 상호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그저 20대 남성이 주장했다고 일컬어지는 의견들이 합리적인지 아닌지를 자신의 기준에서 판단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반면 어떤 기사들은 20대 남성들을 비판하기 위해 20대 남성들을 정당화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이 기사들은 20대 남성의 안티페미니즘적 경향을 설명하기 위해 취업난 같은 사회구조적 원인이나 유난히 다른 남성들에 비해 페미니즘에 대해 공격적인 특별한 이유 같은 것을 전제한다.

그러나 20대 남성들이 비합리적인 의견을 계속 내는 이유는 단지 그들의 삶에서 그런 행위를 규제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20대 남성이 다른 세대의 남성에 비해 더 여성혐오적인 특성이 두드러진다는 분석도 근거가 없다. 적어도 여성 혐오라는 맥락에서 20대 남성들은 윗세대 남성들을 비판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여성혐오를 정당화할 권리를 이어받길 원한다. 뿐만 아니라 취업난 가설은 왜 20대 여성이 통계적으로 더 심한 취업난을 겪고 있는데 정작 20대 남성이 더 분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20대 남성 현상에 대한 진부한 설명이 아니라, 지금 당장 여성 혐오 발언을 규제할 제도와 그런 규제를 현실화할 사회적 인식의 확대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20대 남성들이 그토록 부정하고자 했던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수많은 여성들과 페미니스트들의 관점이 20대 남성 현상을 분석함에 있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직 그 관점 하에서만 20대 남성 현상은 유효할 것이다.

20대 남성, 소위 '이대남' 현상이 정치계를 뒤흔들고 있다. 그 직접적인 계기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였다. 20대 남성과 여성의 표심이 극명하게 엇갈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20대 남성의 '보수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 최근 GS25 홍보물을 둘러싼 소위 '남성혐오' 논란은 분노한 청년세대 남성들의 안티 페미니즘 성향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러한 '이대남' 현상 자체가 실체가 없다거나 일부의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에 불과하다는 목소리 역시 존재한다. 과연 '이대남' 현상의 실체는 존재하는가? 우리는 지금의 현상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에 대해 어떠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와 관련하여 20대 남성 당사자, 여성주의 학자, 사회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보기로 했다. 총 6편의 글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①한국의 '이대남'과 미국의 '브로플레이크'...'백래시의 시간'이 왔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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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사회연구소는 참여연대 부설 연구기관으로, 참여민주사회 모델 개발, 대안 정책의 생산과 공론화를 위해 활동합니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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