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에서나 기간산업이 제대로 돌아가야 경제 활성화가 가능하다. 북한에서 기간(基幹)산업에 해당하는 산업은 '인민경제 선행부문'과 '중요공업부문'으로 지칭한다. 인민경제 선행부문은 전력‧석탄‧금속공업과 철도운수부문이다. 모든 산업과 경제 전반의 발전을 위해 선행(先行)시켜야 할 부문을 말한다.
석탄공업이 이에 포함되는 것은 북한의 중화학공업이 '석유화학시스템'이 아니라 '석탄화학시스템'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중요공업부문에는 기계‧금속‧화학‧전자자동화공업과 건설건재부문 등이 속한다.
북한은 새로운 5개년계획(2012~25년)에서 금속‧화학공업에 국가투자를 증대시키기로 했다. 이 공업을 토대로 경제 전반의 생산 정상화에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금속공업에서 주체철 생산체계를, 화학공업에서 탄소하나화학공업 창설을 완성해야 한다.
북한 전역의 공장‧기업소의 설비 갱신에 필요한 기계공업, 도시재개발과 공장 대보수공사 및 신규 건설에 요구되는 건설건재부문도 5개년계획에서 중요해지고 있다. '전환기' 북한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기간산업의 산업별 정책 방향을 살펴보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총 12편의 글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북한의 인민경제 선행(先行)부분과 중요공업부문은 계획경제 실행의 핵심 산업생태계이다. 이 생태계에서 선순환구조가 작동되면 경제성장과 인민생활 향상이 가능하다. 체인의 흐름이 분절되거나 한 곳에서라도 계획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연쇄적인 파장을 일으킨다.
'전환기' 북한경제의 양상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은 농업‧경공업과 시장이지만 그 명맥(命脈)은 인민경제 선행부문과 중요공업부문이 쥐고 있다.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에서도 북한 기간산업의 실태 파악은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지난 1월의 제8차 당대회에서 부문별협의회(1월 11일)가 있었는데 공업부문협의회도 그 중 하나였다. 당대회의 첫 부문별협의회는 당대회 '결정서'를 채택하기 위한 절차였다. 공업부문협의회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2021~25년) 기간에 인민경제 선행부문과 중요공업부문에서 무엇에 집중할지를 정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북한이 추구해온 자립적 민족경제건설은 공업의 탄탄한 기반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관점에서 이 협의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업부문협의회에서 기간산업의 방향 정립
인민경제 선행부문(전력‧석탄‧금속‧철도운수)과 중요공업부문(기계‧화학 등)은 기간산업을 말한다. 어느 국가에서나 기간산업은 중요하다. 북한은 경제계획 수립과 집행에서 인민경제 선행부문과 중요공업부문을 중시해왔다. 외부의 시선은 북한경제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해 '하향곡선'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본다.
북한의 생각은 이와 다르다. 5개년계획 기간에 경제성장과 인민생활 향상의 토대를 구축할 것이라는 자신감에 차 있다. 그 근거는 주체철 생산체계, 탄소하나화학공업,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에서 입증된 '과학기술력'을 기간산업을 비롯한 모든 산업에 적용해간다는 방향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업부문협의회에서 협의된 내용은 명료했다. 5개년계획 기간에 △금속‧화학공업을 '관건적 고리'로 삼는 것 △전력‧석탄‧기계‧채취공업을 비롯한 기간공업부문에서 생산의 정상화 △국가경제의 자립성‧계획성‧인민성 강화 등이었다.
인민성 강화는 '경제판'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실천해나간다는 것이었다. 세 가지 기본과업에 대한 '숫자자료'에 기초한 분석이 있었다고 한다(중통, 2021.1.12. 중통은 조선중앙통신의 줄임말)
'숫자자료'에 기초한 분석은 계획경제에서 당연한 일이다. 북한은 그 숫자를 공개하지 않는다. 그 숫자는 북한 기간산업의 실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지 못한 여건에서 북한 기간산업의 실태를 파악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한국산업은행이 발간한 <2020 북한의 산업> 1~3권은 그 인내심의 결정체이다. 이 자료집에는 '전환기' 북한경제를 읽어내는 데 필요한 2019년 이후의 정보는 적다.
필자는 북한의 최근 보도에 집중했다. 북한 보도매체들의 '선전성'이 우려되어 그 내용을 도외시한다면 최신 정보를 얻을 길은 더욱 멀어진다. 반북(反北)인사들이나 보수적인 대북 시각을 지닌 지식인들이 북한 보도매체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 상식을 뛰어넘지 않고는 북한의 인민경제 선행부문과 중요공업부문의 최신 동향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하다.
필자는 2019~20년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조선중앙통신>, <로동신문>, <민주조선>을 인용한다. <연합뉴스>, <뉴스1>, <통일뉴스> 등을 재인용했고 그 표시가 없는 경우는 통일부가 운영하는 <북한정보포털>에 게재된 <일일북한동향>, <주간북한동향>, <월간북한동향>에서 재인용했다.
5개년계획의 첫해 과업 완수를 다짐하는 궐기모임
지난 2월에 북한 각지에서 궐기모임이 일제히 열렸다. 5개년계획의 첫해 과업의 완수를 다짐하는 집회였다. 황해제철연합기업소 노동계급은 2월 22일 첫 궐기모임을 열고 호소문을 채택했다. 이어서 여러 경제부문‧단위에서 종업원 궐기모임이 진행됐다. 내각사무국 종업원 궐기모임은 "낡은 사상관점과 일 본새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며 경제를 정비하고 보강하기 위한 사업을 실속 있게, 완강하게 밀고 나갈 결의"를 다지는 자리였다('종업원'은 근무자를 뜻한다).
재령광산과 은률광산의 일군들과 직원들은 "금속공업의 자립적 토대를 튼튼히 다져나가겠다"는 각오를 다졌다('일군'은 모든 부문‧단위의 간부를 지칭한다). 내각 화학공업성 궐기모임은 "화학공업의 자립성을 더욱 강화하고 핵심공업으로서의 실제적인 역할을 다해나가겠다"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전력공업성, 석탄공업성, 자원개발성, 채취공업성, 철도성, 육해운성, 경공업성, 수산성, 국토환경보호성, 농업성 등의 성‧중앙기관들과 기업소들에서도 궐기모임이 열렸다(중통, 2021.2.28., <서울경제> 같은 일자).
궐기모임은 북한에서 일상화된 정치행사이지만, 새로운 5개년계획의 첫해 과업을 앞두고 열린 것이어서 그 의미가 자못 크다. 북한은 대중운동의 사회이고 대중운동은 경제적 관점에서 성장의 동력으로 여겨지며, 궐기모임은 그러한 일환이었다.
2020년 기간산업 단위들의 궐기모임
북한에서는 2020년 1월에도 기간산업 기업체들의 궐기모임이 있었다. 당시 궐기모임은 김정은 위원장이 2019년 12월 28~31일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제시한 '강령적 과업'을 관철하기 위한 것이었다(로동, 2020.1.16. 로동은 <로동신문>의 줄임말). 당시 궐기모임의 보도에서 기간산업의 핵심과업이 상세히 언급된 점이 주목된다. 이 과업들은 5개년계획의 첫해 과업들과 맞닿아 있다.
5개년계획에서 기간산업의 중요도 순서
2020년 1월의 궐기모임에 관한 보도는 그 시점에서 기간산업의 중요도 순서가 반영되어 있었다. 금속, 화학, 전력, 석탄, 기계, 철도운수, 건설건재 등 7개 부문이었다. 지난 1월 17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4차 회의에서 김덕훈 내각총리가 발표한 <내각사업보고>에서는 금속, 화학, 전력, 석탄, 기계, 채취, 철도운수, 건설건재 등의 순서였다.
채취공업이 추가됐을 뿐 나머지 7개 순서는 2020년 1월과 같았다. 이 패턴은 2020년 5월 1일의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 직후 기간산업의 '정상궤도'를 위한 과업에서도 반복된다(로동, 2020.5.7.).
이러한 정책 흐름을 반영해 5개년계획(2021~25년)에서 금속‧화학공업에 국가적 투자를 집중하기로 했던 것이다. 지난 2019년 전력공업에 국가적 투자를 집중하기로 했던 것(김정은 위원장의 2019년 신년사)에서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2020년부터 인민경제 선행부문과 중요공업부문 내에서 우선순위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제8차 당대회와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 내각전원회의 확대회의 등을 2021년 1~2월에 마친 시점에서도 기간산업의 주력 순서는 2020년과 마찬가지로 금속, 화학, 전력, 석탄, 기계, 철도운수, 건설건재 등이었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인민경제 선행부문과 중요공업부문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지도(現地指導)'는 적은 편인데 비해 전‧현직 내각총리들은 이 부문의 '현지요해(現地了解)'에 적극 나섰다는 사실이다('현지요해'는 현장을 방문해 실태를 파악한다는 뜻인데 경제사령관으로서의 '현장지휘'에 가깝다). 인민경제 선행부문과 중요공업부문은 내각이 책임지고 수시로 챙겨야 하는 기간산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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