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춤꾼' 이애주 서울대 명예교수(경기아트센터 이사장)의 문화예술인장이 13일 엄수됐다. 지난 10일 일흔 넷의 나이로 이애주 명예교수는 1987년 민주 항쟁 당시 이한열 설사와 박종철 열사를 위해 한풀이 춤을 추고, 제주 4.3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진혼무를 추는 등,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 역사를 춤으로 함께 썼다.
13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있었던 이애주 명예교수 문화예술인장에서 발표된 채희완 부산대학교 명예교수의 추도사 전문을 싣는다.
새세상을 연 생명평화의 춤, 이애주 형 추도사
하늘나라에서 애주 형을 급히 찾는 전갈이라도 받으셨는지요. 하늘나라에서 무슨 변괴가 생겨 젊은이가 잡혀가고 매 맞고 죽어가니 서둘러 와서 진혼무 한거리 추라는 급전을 받으셨는지요. 굴뚝탑에 올라간 노동자가 다 죽어가니 어서 건너와 사람 살리는 춤, 한거리 추라는 언명을 거역치 못해 건너가셨나요.
4대강 5대양 6대륙이 죽어가니 어서 와 물길, 땅길, 하늘길을 되살리는 새 천지 세상춤을 추러 바삐 가셨나요.
하늘을 닮아 땅을 만들었다니 거꾸로 땅의 세상을 하늘이 닮기도 한다더니, 하늘나라 변괴도 수선하는 춤 한바탕 부름 받고 가셨으니 땅에서처럼 죽임 죽이는 춤추시고선 이젠 몸 내려놓고 평안에 드시길 바랍니다.
때론 땅의 그리움의 춤도 추시고, 이 땅에 계실 때 시간을 못내 바빠 못 추셨던 재미나고 신나고 환희용약하는 춤을 하늘나라에서 자빠지듯 한바탕 추고 안락하시길 비옵니다.
1987년은 남한 정국의 민주화체제가 시작되는 역사적 전환기였습니다. 젊은이들의 죽음을 통한 민주화 쟁취의 물결은 질풍노도의 거센 비바람 폭풍 속, 거기에 애주 형의 바람맞이 춤과 한판 춤, 썽풀이 춤이 있습니다.
이한열의 죽음에서 비롯된 씨춤, 물춤, 불춤, 꽃춤은 농업생산 생명 과정을 닮으면서 거기에 민주춤의 꽃과 열매 거두어들이기까지 물고문과 불고문과 성고문의 고통과 죽음이 협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로써 새로운 시대를 여는 칼과 총알과 대포가 되었습니다. 정치적 죽음에서, 경제적 고갈에서, 문화적 혼미에서, 예술적 방탕에서 벗어나는 전 국민적 불림이 되었습니다. 갖은 죽음에서 떨쳐 일어나는 춤의 신명은 인간사뿐만 아니라 산천초목까지 새 생명의 새 물기로 젖어들게 했습니다. 작은 몸, 보잘것없는 춤사위가 일으킨 회오리입니다. 애주 형의 춤은 보는 관중도 덩달아 물들이게 참여함으로써 역사적 실천이 되게 하였습니다.
집단 신명의 기운은 새세상을 이끄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신기와 신명의 집단 체험, 승생기(乘生氣) 체험은 전 국토로, 전 국민으로, 공동의 역사체험으로 승화되었습니다. 이로써 적어도 타락한 신무용 시대는 그 역사적 임무를 끝내고 사라져야 했습니다.
1996년 승무로 예능보유자가 된 이후에도 애주 형은 이 땅 방방곡곡, 면면촌촌을 무른 메주 밟듯 하며 신명의 소재지를 찾아 지역 춤 공부를 하려, 다른 시간을 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선 울릉도, 독도, 한라산, 태백산, 강화도, 백두산 등지 이 땅의 경개를 찾아 춤으로 몸을 바쳐 드렸습니다.
그것은 애주 형의 첫 창작 작품 ‘땅끝’에서 폭압적인 성주에 저항하여 청춘남녀가 그 권역을 탈출하다가 끝내 죽어 해변에 끌려오는 것에 대한 역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땅 곳곳을 일상공간에서 거룩한 공간으로 뒤바꾸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춤 일도 남모르게 쓸쓸히 어기차게 해내었습니다.
애주 형의 스승 한영숙 선생을 길러주신 분은 할아버지 한성준 선생이셨습니다. 한성준 선생은 일제 때인 1930년대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춤이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그는 명창 뒤치다꺼리 하는 고수로서 보잘것없는,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씀은 태초에 로고스가 있었다는 성경 말씀이나 태초에 율려가 있었다는 고대의 말씀처럼 엄청난 선언이었습니다.
사람의 일거수일투족 모두가 춤이고, 일상동작에 장단만 맞춘다면 그건 모두 훌륭한 춤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일에 장단을, 신기를, 놀이를 불어넣으면 삶이 제대로 궁극에 이른다는 것이지요. 이는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말씀의 춤적 해석입니다.
일하는 사람마다 신명을 타면 모두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을 일컫습니다. 신명을 타면 모두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동학 가르침의 몸실천입니다.
한성준 선생은 그래서 승무, 살풀이, 학춤 외에도 각종 일춤과 딱딱이패 등 직업춤들을 창작해냈습니다. 일 신명에 고요를 섞어 혼연지일기의 춤세상을 만들어냈습니다.
애주 형의 춤은 이를 받아 삼천여 뼈마디가 추는 한영숙 선생을 본받아냈습니다. 애주 형은 승무의 예능보유자가 되고 나서도 승무를 스님의 춤이 아닌, 종교적이고 고매한 춤이 아닌, 일하는 사람들의 중생춤으로 보았습니다.
자연의 계절에 맞추어 일하는 자의, 생명주기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일상인의 일하는 역사춤이라는 것이지요. 곧 순환적 진화입니다.
백기완 선생이 말한 ‘한발 띠기에 목숨을 거는’ 싸움이기도 했습니다. 노동의 연장으로서의 춤을 넘어 노동의 성화(聖化)로서의 예술입니다.
애주 형은 근래 경기도당굿의 악가무를 근거로 하여 본향 태평춤의 복원에 몰두하였습니다. 한성준 선생이 일찍이 자신의 수의를 태평무 의상으로 해달라고 하셨답니다. 왕과 왕비가 여민락(與民樂)하는 왕꺼리춤을 궁극으로 삼았듯이 애주 형도 그러한 것을 그 마지막 작업으로 삼았던 것 같습니다. 본향 태평춤으로 오늘날 세상살이의 생명을 앞당기고 진작시키는 생명평화의 춤을 갈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늘의 부름을 받고 일찍 가신 것이 조금 억울합니다. 역사의 짐을 진 춤, 죽어가는 이를 살리는 춤, 죽어가는 자연을 되살리는 춤, 힘겹고 어려운 춤만 추시고 재미나고 신나고 즐거운 춤 한자리 못하신 것 때문입니다.
이제 하늘나라에서 하늘 변괴를 수선하는 춤 임무를 마치시고 평안한 세계에서 편히 좀 쉬세요. 또 때로 못다 마친 지구별의 세상일이 그리우시면 마구잡이 보릿대 도구떼, 못 배운 춤, 거리춤, 병신춤, 무애무도 한바탕 확희작약하여 거꾸러질 때까지 추는 춤판을 벌여주십시오. 거기에 우리도 부름 받자옵고 달려갈 터이니 낑가 주시면 고무진신으로 사흘낮밤을 춤으로 자빠지겠습니다.
2021년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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