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정부여당 '운동권 민주주의', 전혀 도움 안 돼"

"마크롱 모델? 한국과 프랑스는 다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촛불 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쓴 소리를 했다. 촛불 시위를 '혁명'으로 이해해 민주주의의 위기와 사회 모든 분야의 갈등 양상을 촉발시켰다는 비판이다.

최 교수는 7일 '한국 민주주의 진단과 전망'을 주제로 제주연구원에서 가진 특별 강연에서 "지금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촛불 시위에서 비롯됐다"면서 "촛불 시위를 통해 그동안의 진보와 보수 세력의 균형이 붕괴된 것이 위기의 중심"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촛불 시위의 기대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개돼서 건강한 발전에 기여했으면 좋았을 텐데, 현실적으로는 포퓰리스트 민주주의로 퇴행하고 위기라고 말할 정도로 민주주의에 도전을 경험하게 됐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촛불 시위 자체에 비판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촛불 시위를 혁명으로 이해한 것이 건강한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최 교수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성립된 '87년 체제'를 "민주화 세력에 의해서만 된 것이 아니라 보수적 엘리트들이 민주화에 동의를 해서 이뤄진 암묵적 협약"이라며 이를 "협약에 의한 민주주의"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의 시각에서, 촛불 시위는 이 '협약에 의한 민주주의'가 붕괴된 계기였다. 그는 "민주당 정부는 광범위하고 급진적인 슬로건과 개혁 목표를 내걸고 촛불 시위를 혁명으로 정의했다"면서 "대표적으로 적폐청산, 즉 과거에 대한 청산 운동을 표방했다"고 했다.

그는 "촛불 시위를 혁명으로 정의했기 때문에, 과도하게 폭넓고 과거를 부정하는 문제를 포괄하게 됐다"면서 "특히 보수 세력을 부정적으로 평가해 청산하는 것"이라고 적폐청산의 실제를 되짚었다.

이로 인해 "보수 세력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와 보수가 민주주의를 수용해 이뤄진 협약의 의미가 해체됐다"는 것이다. 아울러 "보수, 진보 간 정치적 갈등의 강도가 높아지고, 사회적으로도 폭넓은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 촛불 시위 이후 정치현상의 특징"이라고 최 교수는 말했다.

또한 최 교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직접 민주주의적 욕구가 강해지면서 "'깨어있는 시민'이나 '촛불 시민' 같은 특별한 사람들이 선도적으로 정치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발상이 강조되는 결과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모든 시민들이 깨어있는 시민이 돼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역할을 떠맡도록 만드는 것은 온 사회를 정치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이는 매우 위험한 민주주의 이해 방식"이라고 했다. "정치적 갈등은 국회라는 제도화된 공론장에 제한돼야 함에도, 온 사회로 확장되면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만들어냈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이를 "운동권적 민주주의관"으로 규정하며 "온 사회를 네 편 내 편으로 갈라 특정 견해를 갖는 사람들끼리 동료의식과 동질성을 갖는 것은, 정서적 급진주의 요소와 결부돼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최 교수는 이어 '최소주의적 민주주의'를 거듭 강조하며 87년 이후 민주주의의 요체는 "선거를 통해 정부여당이 패배할 수 있는 체제"라고 했다. 그는 "안정적으로 다수를 점하는 정치세력이 장기 집권을 하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면서 "평화적 정권교체가 순조롭게 제도화되는 것이 좋은 민주주의"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정당이 만년 집권하고, 만년 승자가 되는 것은 민주주의라고 말하기가 어렵다"며 "선거를 통해 정권이 교체되려면, 정치 세력 간에 일정한 균형이 유지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 교수는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권력구조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예로 들며, "대통령이 청와대에 앉아 통치를 할 수 있는 기구(청와대)를 유지하기 때문에 '은둔형 대통령'도 가능해진 것"이라며 "촛불 시위 이후의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굉장히 위험한 현상"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또 "촛불 시위 이후 민주당 정부 하에서 시민사회가 정부의 주변기구가 됐다"며 "관료 중심으로 이뤄지는 정부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시민사회 사람들은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강연 후 질의응답을 통해 최 교수는 "(대선이) 촛불 시위 이후 헝클어진 정치를 뛰어 넘는 변화의 계기가 되면 좋겠다"면서 대선을 앞둔 현실 정치에 관한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우선 그는 "변화된 한국 경제의 조건, 정치의 조건을 대표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원칙과 이념, 비전을 제시하고 세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미래 비전으로 경쟁하는 선거"를 당부했다.

그러나 최 교수는 쇄신이 화두가 된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변화 가능성에는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그는 "권력을 가진 정부여당이 개혁을 해서 좀 더 좋은 민주당으로 거듭나는 선택을 스스로 하기에는 어렵다"며 "민주당 체제나 진용, 행동 양식이나 구조를 볼 때 (개혁 가능성에) 상당히 회의적"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탄핵을 겪은 정당으로서 완전한 개혁에 대응을 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고 했다.

최 교수는 이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거취를 놓고 대두된 제3지대론에 대해 "제3지대가 한국 정치를 바꿀만한 당의 형태로 될 수 있을지, 새로운 정당을 지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능한지 평가할 자료가 없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나 그는 "한국 대통령 중심제는 양당제를 선호하는 정당 체제"라며 제3지대의 성공 가능성을 반신반의 했다.

기존 정당에서 뛰쳐나와 신당을 창당해 집권에 성공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집권 모델에 대해서도 "프랑스와 한국은 다르다"고 했다. 그는 "(한국 정치는) 보수와 진보 정치세력 간의 경쟁이어서 한 단계 높은 균열을 대표할 만한 선택을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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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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