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린이, 등린이, 헬린이?...'○린이'에 담긴 편견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어린이날 맞아 '주린이'. '등린이', '헬린이' 이제 그만 쓰기를

최근 들어 주린이, 등린이, 헬린이 등 '○린이'라는 표현을 여러 매체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린이'라는 말은 '어린이'에서 뒷부분을 따와, 어떤 일이나 분야에서 초보자나 막 시작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린이'라는 말은 이전에도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 내에서 사용되어 온 말이지만, 2020년부터 각종 언론사에서 서슴없이 사용하며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언론사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에도 서울시 산하 기관인 서울시민청이 어린이날 이벤트에서 '○린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가 문제 제기 받은 뒤 철회하는 일이 있었다.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주린이가 가장 알고 싶은"이라는 제목의 책이 올라 있다.

○린이, 누군가의 호칭을 빌려오는 순간에 대해

'다들 많이 사용하는 말인데 뭐가 문제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린이'가 주로 사용되는 맥락을 살펴보면 어린이에 대한 편견을 읽어낼 수 있다. '○린이'라는 표현은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나 취미의 첫 글자와 '어린이'가 합쳐진 것이다. 왜 새롭게 시작하는 무언가를 지칭하는 용어인 '입문자'나 '초보자'를 대신해 '○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지 먼저 질문해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를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바라보기보다 모든 영역에서 '초보자'라 생각하기에 이런 호칭이 문제없이 사용되는 것 아닐까. 어린이는 곧 미성숙하고 서툰 존재라는 편견이 반영된 것이다.

또한 '○린이'라는 표현은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알려주는 상황에서 흔하게 쓰이곤 한다.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알려주는 사람은 '어른'으로, 가르침을 받고 배우는 사람은 '어린이'로 상정하면서 가르치는 사람의 권위를 높이는 것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가르침에 고분고분 따라야 하는 '가르침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어린이를 낮춰 보는 인식이 녹아 있다.

이런 점에서 아무런 고민 없이 공공기관, 언론에서 어린이에 대한 편견을 재생산하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를 함부로 단정 짓는 태도, 어린이 차별적인 우리 사회의 문화를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내가 나를 호칭하는 이름이 되기 싫을 때

'○린이'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쓰이는 것을 목격하며, 어린이라는 호칭이 지금까지 어떻게 쓰여 왔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한국 사회에서 어린 존재를 지칭하는 말들은 그다지 매력적인 것이 아니었다. 나는 생일이 일러 학교를 한 해 빨리 들어간, 흔히 말하는 "빠른년생"이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주변 친구들로부터 본인을 언니라고 부르라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래서인지 나도 늘 '언니'가 되고 싶었다. 나이가 한 살 적은 것뿐이었지만 부족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무시해도 되는 위치에 놓이곤 해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위축되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많았다.

나는 특히 나를 어리다고 지칭하는 말들이 싫었다. '어린이'라는 호칭은 언제든 벗어나고 싶은, 들을 때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게끔 하는 말이었다. 스스로 어린이임을 드러내기보다는 부정해야 되는 순간이 대부분이었다. '어린이'라고 불릴 때는 내가 배제되거나 무시당할 때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정체성에 붙여지는 이름을 부정하고 싶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들의 삶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린이'라는 표현은 '결정 장애'와 같은 표현과도 닮아 있다. '결정 장애'라는 표현도 우유부단한 태도를 장애에 빗대어 사용하는 점에서 장애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담긴 말이다. '○린이', '결정 장애'와 같은 표현을 특정 상황에 쓰는 것은 존재에 대한 편견임과 동시에 사회적 소수자의 특성을 극복해야 되는 무언가로 여기게끔 한다. 이런 식의 표현은 소수자들이 스스로를 부정해야 하는 순간에 놓이고 사회에서 존재 자체가 지워지는 현실을 드러낸다.

어린이 해방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

스스로 어린이임을 부정하다가도 어린이임을 강조하게 되는 날이 바로 어린이날이었다. 그것도 그냥 어린이가 아닌, '착하고 귀엽고 말 잘 듣는 어린이'로 자신을 드러내야 했다. 다른 어린이들에게도 이러한 경험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도 어린이날이 다가오면 선물을 받아내기 위해 어른들이 원하는 어린이의 모습을 보여주려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평소 내가 싫어했던 모습들을 마구 보여주며 선물을 받아내기 위해 애를 썼다. 어쩌면 어린이날은 어린이들이 본연의 모습보다는 어른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하는 날, 어린이의 부자유함과 우리 사회의 어린이 혐오를 목격하기 쉬운 날인지도 모른다.

현재 어린이날은 어린이들과 놀아주거나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는 날 정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어린이날이 만들어진 취지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1922년 첫 어린이날에는 "어린이에게 경어를 써 달라"고 하며 어린이의 권리를 보장하고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할 것을 요구했던 역사가 있다. '어린이'라는 호칭 자체에도 너무도 하찮아서 지칭하는 말조차 없었던 나이 어린 존재에게 이름을 붙인 어린이해방운동의 정신을 담고 있다. 어른과 동등한 존재이자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로서 '어린이'라는 호칭을 요구했지만 현재는 이러한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라는 호칭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부족함이 배제의 이유가 되지 않길 바라며

'○린이' 표현 속에 있는 어린이에 대한 편견을 지적하면, "어린이는 아직 부족하고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맞고, 어른들이 자신을 그렇게 지칭하는 게 왜 문제냐"라는 말이 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린이'라는 표현을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는 모습이 바로 어른들의 권력을 드러낸다. 누군가의 존재 자체를 배워야만 하는 존재,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온전한 삶을 지우는 일이다. 언제나 배워야만 하는 존재로 여겨지는 어린이·청소년들은 '○린이'라는 표현을 쓸 필요도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많은 어린이·청소년들이 나처럼 어린이로, 청소년으로 불리는 것을 피하고 싶어 할 것이다. 취미로 무엇을 배울지 고민하며 배움을 정할 수 있는 이들, 그렇게 삶이 지워지지 않는 이들에게 '○린이'라는 표현이 쉽고 재미있는 것이다.

한편, '○린이'라는 표현을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 어린이 중에도 똑똑한 어린이도 있고 부족하지 않을 때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어린이도 부족하지 않고, 배우지 않아도 되는 존재라고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TV 프로그램 속에 나오는 흔히 '영재'로 여기지는 어린이를 예시로 들며 어른보다 뛰어난 순간이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이 세상과 뛰어남을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어른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이러한 이야기는 어른스러운 어린이와 그렇지 않은 어린이를 다시 나누는 기준밖에 되지 않는다.

'○린이' 속에 담긴 어린이에 대한 편견을 비판하는 것은 어른들의 시선에 들어맞는 어린이만 인정받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이나 누군가가 부족하다고 전제하더라도 그들의 언행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는 것을 바란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바랐던 것은 "빠른년생이면 친구지."라는 말이 아니라, 나이가 달라도 그 속에서 위축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린이 말고 초보자라는 말을 쓰세요."라는 말보다 "부족하면 늘 배워야만 해?", "자격과 조건이 미달하면 차별받아야 돼?"라고 되묻고 싶다. '○린이'라는 표현으로 어린이의 삶을 납작하게 만들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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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은 청소년의 자유와 존엄을 위해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단체입니다. 청소년들이 '어른이 되고나서' 인권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시민이자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는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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