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가족의 분리가 '치매여도 괜찮은 세상'을 만든다

[발로뛰는 동네의사 야옹선생의 지역사회 진료일지] 가족과 분리되어야 하는 돌봄

제가 일하는 민들레 의원에는 치매를 진단받은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경도 인지기능장애부터 중증 치매까지 정도는 다양하지만 진단받는 그 순간부터 환자 본인도 가족들도 곤란하고 힘들어 집니다. 환자가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하면서부터는 가족들 사이에 갈등도 생깁니다.

제가 왕진이나 방문 진료를 나가 보면 치매 어르신의 가족들에게서 고단함이 느껴집니다. 며칠 전 치매 어르신이 욕창이 생겨 왕진을 나간 적이 있습니다. 어르신은 몸은 앙상하지만 목소리만은 카랑카랑 하셔서 제가 들어가니,

"이쁜 원장님 오셨어? 고마워~."

하십니다. 저도

"이쁜 어르신, 잘 지내셨어요?"

하고 인사를 드리고, 요양보호사님의 도움을 받아 엉덩이 욕창을 확인하고 처치를 해드렸습니다.

이분은 수 년 전부터 거동이 힘들어져 누워 지내시는데, 열이 나거나 아프실 때마다 왕진을 나갔던 터라 제가 낯설지는 않으셨나 봅니다. 언젠가는 요로 감염으로 가정간호사님이 수액과 항생제 주사를 위해 어르신을 뵈러 들어갔더니, 어르신이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어제 우리 아들이 나더러 죽으라 그랬다?"

사실 그 아드님은 전혀 나쁜 아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줄곧 곁에서 지켜본 요양보호사님은 그렇게 착한 아들 세상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늦게 지쳐 돌아와 어르신을 돌봐야 하니 아들도 얼마나 힘들겠어요."

혼자 오랜 기간 어르신을 돌보면서 너무나 지쳤나 봅니다. 그 말을 할 때 아마도 울고 계셨겠지요.

몇 달 전 외래로 치매 아버님을 모시고 중년 신사분이 오셨습니다.

"선생님, 아버지께서 치매로 약 드시는데 앞으로 여기서 관리 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진찰을 위해 아버님께 이것저것 여쭤보았습니다.

"아버님, 어디 불편한 곳이 있으세요? 약은 잘 드시고 계세요?"

"아, 치매라서 말씀도 잘 못해요. 그냥 처방해주세요."

이러십니다.

순간 아들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아버님이 안쓰러워 한마디를 했습니다.

"아드님, 아버님이 다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제가 이렇게 여쭤보는 것도 진찰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마스크 때문에 표정을 보기 위해 아버님과 눈을 맞추고

"아버님,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

하니, 그제서야

"허리가 아파요" 하며 다정하게 웃으시는 겁니다.

아드님은 무엇이 불만이신지 한참을 옆에서 냉랭하게 쳐다보시다가 제 진찰이 끝나고 아버님을 먼저 내보내고는 이러십니다.

"아버님이 원래 엄청나게 가부장적이어서 어머님한테도 자식들한테도 매정하고 엄격했던 분이에요. 그런데 치매가 오고는 당신이 잘못했던 것들 기억도 못하고 저렇게 순진한 척 하시니 답답합니다. 저도 아들 도리 하려고 모시고는 다니는데 힘듭니다. 더 힘들어지면 시설로 가셔야겠지요"

치매는 본인도 힘들지만 가족들도 참 힘듭니다. 환자를 둘러싼 가족의 역사가 다 드러납니다. 치매로 인지기능이 떨어져 있으니 옛날 섭섭했던 얘기를 해도 사과 한마디 들을 수 없고, 당신이 누구냐는 식의 반응이니 가족들도 속이 상하겠죠.

아주 가끔 치매로 인해 가족의 사랑이 더 도드라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가 장애인 주치의로 방문 하는 치매 어르신의 경우 입니다. 항상 어린 아이처럼 해맑은 얼굴로 만날 때마다 "우리 아들 어때? 잘생겼지?" 하십니다.

"아드님, 엄청 잘 생기셨어요." 이러면, "그렇지? 그럼 중신 좀 서~"

이러십니다.

어르신이 젊었을 때 식당일이며 포장마차며 힘든 일 마다않고 자녀들을 키웠고, 덕분인지 자녀분들도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합니다.

집에서 가장 넓고 쾌적한 방이 어르신의 방입니다. 환자용 침대에 욕창 방지 매트도 깔려있습니다. 사레가 종종 걸려 식사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아드님이 일일이 숟가락으로 떠먹여 드린다고 합니다. 손톱 발톱도 깨끗하고 항상 정갈한 모습입니다.

지난 주 어르신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집을 나서는데 어르신이 장난스럽게

"다음에는 피자 사와~ 또 와~ 고마워~"

이러셔서 한바탕 웃었습니다.

ⓒ박지영

어르신 웃는 모습 보려면 다음에는 피자를 들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 경우들을 보면서 치매가 특히 힘든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스스로 돌보기 힘들어지기도 하지만 '스스로 돌볼 수 없다는 사실' 조차 잊게 되어 가족들과 감정 괴리가 생기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가족과의 관계가 좋아 헌신적인 돌봄 제공자가 가족 중에 있다면 최선이겠지만, 그런 경우는 정말 드뭅니다. 가족과 관계가 좋더라도 오랜 돌봄은 가족들을 지치게 합니다. 가톨릭 의대 예방의학과 임현우 교수님의 연구에 따르면 치매 환자 가족의 경우 일반 가정에 비해 우울증 위험이 1.7배 높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기능이 조금씩 떨어집니다. 저희 부모님들도 저도 언젠가는 나이가 들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겠지요. 그럴 때 사랑하는 가족이 돌봄에 대한 부담으로 힘들고 지쳐 정떨어지지 않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돌봄이 가족과 어느 정도는 분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환자와 감정적으로 얽히지 않고,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전문 돌봄 인력이 필요합니다. 돌봄 제공자가 치매 환자를 제대로 돌볼 수 있도록 교육도 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거동이 힘들고 인지기능도 떨어지는 어르신들을 돌보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입니다. 우리나라 요양보호제도는 급여나 전문성에서 아직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젊고 의욕적인 분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어르신들을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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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수료했다. 현재 대전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가정의학과 원장 및 지역사회의료센터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엄마의사 야옹선생의 초록처방전>, <아이를 위한 면역학 수업 : 감염병, 항생제, 백신>, <야옹의사의 몸튼튼 비법노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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