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교육권', 학생은 '학습권'?...교육권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교사의 교육권이란 없다

교사들과 학생인권을 주제로 한 교육이나 토론을 할 때면 자주 받게 되는 질문 중 이런 것이 있다. "수업 중에 학생이 자거나 딴짓을 하는 건 교사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 아닌가요?" 이런 인식은 의외로 널리 퍼져 있다. 교사는 '교육권'을 갖고 있으며, 학생이 교사의 교육 활동을 방해하거나 혹은 그에 협조하지 않으면 그러한 교사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고, 이에 더해 학생인권만 강조하다가는 교사의 교육권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교사의 교육권이란 게 대체 뭘 말씀하시는 건가요? 교육권은 학생의 권리인데요?"

교사는 '교육권', 학생은 '학습권'?

"학생도 교육의 주체"라는 말은 이제는 제법 여기저기서 들어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는 교육의 주체는 교사이고 학생은 교육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즉, 교육을 교사, 교수, 강사 등 '가르치는/교육하는' 주체 그리고 학생 등 '배우는/교육받는' 대상이라는 구도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교육에 관한 권리를 표현할 때도 드러난다. 우리 사회에서는 '교육권'이라는 말은 대개 교사를 주어로 하여 사용된다. 또는 부모(보호자)에게 교육권이 있고 이를 교사가 위임받았다는 식으로도 이야기되곤 한다. 반면 학생의 권리로는 '교육권'보다는 '학습권'이라는 말이 더 자주 사용된다. 말하자면 교사나 보호자에게는 '가르칠 권리'가 있고 학생에게는 '배울 권리', '공부(학습)할 권리'가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그래서일까, 학생을 주어로 한 '교육권'이란 말이 사용될 때는 '장애인 교육권'이라거나 '난민 아동 교육권' 등 학교 교육 자체에서 배제되거나 접근이 어려운 사례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마치 교육권은 학교 교육 제도 안으로 들어올 권리이고, 교육 제도 안으로 들어온 뒤로는 '교육권'이 '학습권'으로 변신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본래 헌법과 국제인권법 등에서 교육권은, 국민/사람의 보편적인 '교육받을 권리', 나아가 '교육에 대한 권리(rights to education)'를 의미한다. 헌법 제3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교육권을 기본권으로 선언한다. '교육기본법'은 제3조에서 모든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학습권"이라는 제목하에 명시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역시 제26조 제1항에서 "모든 사람은 교육에 대한 권리가 있다(Everyone has the right to education)."라고 밝힌다.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협약'도, '아동권리협약'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인권으로서의 교육권이란 본질적으로 배우는 측, 그러니까 교사와 학생 중에서는 학생의 권리이다. 또한 '교육에 대한 권리'라는 개념은 교육의 내용이나 방식 등에 관해 더 포괄적인 내용의 권리들을 담고 있다. UN아동권리위원회는 '교육은 형식적인 학교 취학을 넘어서 광범위한 학습 과정을 아우르는 것'이고 '교육에 대한 권리는 단지 교육 제도에 접근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해설한 바 있다.(일반논평 1호, 2001년)

교육권에 대한 오해와 착각

그러므로 교육권을 교사/보호자의 가르칠 권리로 가져오는 것은 일종의 가로채기이며 보편적 인권으로서의 교육권을 가리거나 혼란스럽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또, 교사에게는 '교육권'이 있고 학생에게는 '학습권'이 있다는 식의 인식은 학생의 교육권 등 인권에 대한 착각과 오해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첫째, 교사의 '가르칠 권리'와 학생의 '배울 권리'가 대등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오해이다. 인권으로서 보장받고 실현되어야 할 교육권은 학생의 권리 쪽이며, 교사/보호자의 '가르칠 권리'는 학생/청소년의 권리 실현을 위한 수단적인 것이다. 물론 교사/보호자의 인권이나 학생/청소년의 인권은 둘 다 평등하게 고려되고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교사의 '교육권', '가르칠 권리'는 결코 학생의 교육권과 대등한 위치에 있지 않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도 2000년 판결문을 통해 "부모의 자녀교육권은 자녀의 행복이란 관점에서 보장되는 것이며, 자녀의 행복이 부모의 교육에 있어서 그 방향을 결정하는 지침이 된다. (……) 부모의 자녀교육권은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의 책임'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라고 그 성격을 확인한 적이 있다.

둘째, 교사의 '가르칠 권리'가 학생을 상대로 한 권리라는 착각이다. 이러한 착각으로부터 앞서 말한 학생이 교육에 협조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교사의 권리가 침해당한 거 아니냐는 말이 비롯된다. 그러나 본래 교육권의 주체는 학생이며 교사는 학생의 교육권을 실현하기 위한 업무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이 교육 활동에 성실하게 참여하지 않는다 해도 이는 교사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의 전문성이나 자주성, 수업·평가에 대한 권한, 보호자의 '교육할 권리'가 인권이나 법의 차원에서 보장되는 부분도 분명 있다. 다만 그러한 권리는 대체로 권리인 동시에 책임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표현되고, 국가가 보호자의 교육기관 선택권이나 문화적·도덕적·종교적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등장한다. 즉, 교사/보호자의 가르칠 권리는 국가나 사회에 대해 내세울 수 있는 권리이지, 교육권의 주체인 학생/청소년에 대해 내세울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이는 학생의 '학습권'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교육에 대한 권리는 국가와 사회 전체에 의해 종합적으로 보장받아야 하는 인권이지, 교사 개개인에게 학생이 원하는 대로 가르치라거나 따르라고 요구할 권리는 될 수 없다.)

셋째, 학생의 '학습권'이 협소하고 제한적인 것으로만 이해되는 문제이다. 학생의 권리를 주어진 대로 배우고 공부하는 것으로만 인식하다 보니, 더 적극적이고 풍부한 권리들은 아예 이야기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저 '공부할 권리'로서 '학습권'을 강조하는 것은, 어떤 경우라도 정해진 교육과정과 학사일정을 진행해야만 하고 학업 성적 향상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경직된 교육관과 연결되곤 한다. 무언가 면학 분위기에 부정적인 영향이라도 끼치면 곧 신성한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심지어 학생이 수업 진행에 문제라도 일으키면 곧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하지만 인권으로서의 교육권이란 더 포괄적이고 유연한 권리들을 가리킨다. 학생이 교육권의 주체라는 것은 수업 '서비스'를 빠짐없이 제공받고 진도를 나가야 한다든지 하는 소비자적 의미가 아니라, 학생들이 교육 전반을 함께 만들어가고 결정하고 참여하는 주체라는 의미인 것이다.

교육이 학생의 권리가 된다면

의사는 환자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실현하기 위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의사의 진료권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만, 환자가 의사의 말을 잘 따르지 않아 치료에 실패한다고 해서 이를 의사의 진료권 침해라고 하는 일은 없다. 또 다른 예로, 체포·구속되거나 기소를 당한 사람은 헌법에 명시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받는다. 자기 돈으로 변호사를 선임할 사정이 안 되면 국가가 국선변호사를 붙여준다. 하지만 피고인이 변호사의 방침을 따르지 않거나 협조하지 않는다 해서 변호사의 권리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하는 일은 없다.

이런 사례들과 비교해 보면, 교사에게 '교육권'이 있다며 학생이 교육 활동에 협조·참여하지 않아 교사의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얘기하는 것은 상당히 이상한 경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사도 자신의 직무 수행을 위해 필요한 권한을 적절히 보장받아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권한은 의사의 진료권이나 경찰의 수사권, 변호인의 변호권 등과 같은 직업적인 권한이라 봐야 할 것이다. 만일 교사가 자기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 교육 활동이 자꾸만 실패하는 상황에 처했다면, 그것은 국가나 교육당국에 더 적절한 지원을 요구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하여 풀어야 한다. 예컨대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인다든지, 부적절하고 과중한 교육과정을 바꾼다든지, 인력을 충원한다든지 하는 방법을 추구해야 할 문제이다.

우리 사회는 긴 세월 동안 교육의 주체는 교사라고 여기며 학생은 교육 대상의 자리에 위치시켜왔다. 교육권이 교사의 것이라는 믿음에서는, 학생에게는 교사가 시키는 대로 따르고 가르치는 대로 배울 의무가 있다는 전통적인 관념이 엿보인다. 즉, 교사의 교육권이라는 잘못된 개념을 내세우는 것은 학생을 교육권의 주체로 진지하게 인정하고 그 권리를 보장하려고 하지 않는 태도이다. 그 결과 학생은 피교육자 또는 서비스를 고르는 소비자로만 생각되고, 가르치는 대로 학습하고 공부할 협소한 권리만이 학생의 권리로 인정되고 있다. '학생이 교육의 주체'라는 표어가 떠돌지만 마치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란 말처럼 거기에는 실상 별다른 내실이 없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교사(/보호자)의 교육권'이라는 개념을 쓰지 말 것을 제안한다. 교사의 직무상 권한이나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구체적으로 혹은 다른 방식으로 논해야 할 것이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나 수업권이나 평가권 등으로 말이다.

물론 교사 역시 교육의 주체이다. 소위 '교육 3주체'인 학생, 교사, 부모(보호자)는 물론, 학교의 노동자들이나 시민들 모두가 교육의 주체라 할 수 있다. 그들 모두가 학교 또는 더 넓게는 사회 전반에서 함께 협력하여 교육 활동을 만들고 실행해 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권의 주체, 교육권을 보장받아야 할 주체는 다른 누구도 아닌 학생, 그리고 교육에 참여하여 배우고 성장하는 입장에 있는 이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육이 학생 그리고 모든 사회 구성원의 보편적 권리로 인식되고 학생의 교육권이 온전하게 보장되는 것은 교육과 사회에 중대한 전환이다. 학교 교육이 학생의 인권 보장과 교육권 실현을 우선순위에 둔다면 교육과정이나 방식, 학교의 문화는 크게 바뀔 것이다. 가령 학생들에게 학교 운영이나 교육 관련 결정에 참여할 권리, 교육과정을 변화시킬 권리, 반인권적이고 비교육적인 교육을 거부할 권리 등이 '교육에 대한 권리'란 이름으로 보장되는 것을 상상해본다. 그런 변화를 위해, 우선 교육권을 제대로 학생의 것으로 돌려주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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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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