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랑 그시간에 뭐해' 감독의 성적 모욕, 결국 하키 그만뒀습니다"

[이변의 예민한 상담소 2] 열다섯 번째 이야기

"과거 대학 하키부에 소속되어 현역 선수로 활동했었는데, 당시 감독이었던 A로부터 폭행과 성적 모욕을 주는 폭언에 시달렸습니다. 하루는 쉬는 날 전날 새벽까지 놀았다가 걸렸는데, A가 '남자랑 그 시간에 만나서 뭔 짓거릴 하냐' '몸을 굴리고 다닌다'라는 등의 폭언을 했습니다. 훈련하면서 '여자 선수가 뒤룩뒤룩 살쪄서 어떻게 뛰려 그러냐' '네가 뛰는 걸 보면 어디가 출렁거린다'와 같은 말도 했습니다. 훈련 도중 선배에게 맞았는데, 이걸 보고 있던 A가 저를 부르더니, 제 골반을 발로 찼습니다. 이 장면을 본 목격자들도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 결국 하키를 그만두게 됐습니다. 하키를 그만두면서 반강제로 대학 자퇴서까지 제출해야 했습니다. 하키부 활동을 조건으로 해당 대학에 진학한 거라서요."

최근 김해시청 여자하키팀 감독이 대학에서 감독으로 재임하던 시절 여자선수들에게 성적 모욕을 가하고 폭행을 가했던 일이 논란이 되고 있다. 체육계 성폭력 사건들이 주기적으로 불거지고 있고 그 내용들에 상당한 유사점이 있지만, 늘 한발 늦게 한발 미진하게 처리되는 아쉬움이 있다. 관련 보도를 바탕으로 사연을 정리했다.

우선 피해자가 당한 일은 손해배상 청구의 대상이 되는 민사상 불법행위에 해당함은 물론이고, 당시 신고했다면 기본적으로 폭행죄, 모욕죄 등은 물론, 더 나아가 협박죄나 상습폭행죄, 폭행치상 등으로 의율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피해자는 피해 당시 바로 신고하지 못했다. 피해자가 신고 등 법적인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일가? A에게는 실형이 선고되었을까? 내부에서 신고를 했으면 대학 하키부 내에서, 대학에서, 대한하키협회에서 A를 제대로 조사하고 합당한 징계를 내렸을까? 피해자는 계속 그 학교 하키부에 소속되서 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대학을 졸업 후에 실업팀에 무난하게 갈 수 있었을까?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대게가 이에 대하여 비슷한 답을 내릴 것이다. 나이도 어리고 지위도 열악한데 그런 이유로 여러 종류의 폭력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피해자는 이보다 훨씬 더 비관적인 답을 내렸을 것이다. 피해자가 피해를 입을 당시에 문제제기를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이유는 하키를 계속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평온한 삶을 살아온 대로 살아오기 위함이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운동을 계속하려면 폭력을 감수하는 것 외에는 출구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피해자는 폭력에 시달리다가 이제 그만 폭력에서 벗어나기로 했고, 운동을 그만둬야 했다. 운동선수에게 운동을 그만둔다는 것은 운동만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가 학생이었다면 학교를, 직장인이었다면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 된다. 그렇게 일상을 다 걸고 나서야 폭력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가해자는 쉽게 폭력을 저지르고, 피해자는 쉽게 폭력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더구나 이런 일은 표면적으로는 직접 가해진 폭력만이 아니라 피해자의 일상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피해로 이어진다.

그러나 사회가 변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지도나 훈련이란 명목으로 폭력을 당하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꼭 말하고 싶다. 심신이 망가지는 것은 운동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다. 범죄피해를 입었다면 더구나 피해가 단발마로 그친 것이 아니라면, 공소시효가 지나기 전에 고소를 해야 한다. 특히 학교나 직장 및 상급기관에 피해사실을 고지하여 피해자 지위를 부여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이후 문제가 제대로 조치되지 않거나 불이익으로 이어지는 경우, 가해자에게만이 아니라 각 기관에 사용자책임이든 그 고유의 불법행위 책임이든 물을 수가 있게 있다.

폭력을 벗어나는 길에 평온한 일상이 흔들리는 상황이 생기는 안타깝지만. 폭력에 밀려 운동을 그만두는 지경이라면 정식으로 권리구제에 나서는 것이 훨씬 낫다. 폭력이 난입한 순간 평온한 일상 따위는 진즉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권리구제가 평온한 일상을 깨는 것이 아니라 폭력으로 이미 평온한 일상이 깨졌음을 환기하고 용기 내야 한다.

* 이은의 변호사의 칼럼 '이변의 예민한 상담소'가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일상생활 속 성희롱·성폭력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언제든, 어떤 사연이든 언니에게 털어놔!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은의 변호사 메일(ppjasmine@nate.com)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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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의

이은의 변호사(ppjasmine@nate.com)는 이은의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위 글의 내용에 대한 추가적인 문의 사항이나 법률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메일이나 아래 전화로 연락을 주십시오. (평일 오전 9시 30분~오후 6시 : 02-597-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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