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출신 교수 "피식민지 10대 여성이 '자발적 매춘 계약'을?"

"램지어, 가짜 뉴스를 학문이라 포장"...'램지어 사태'가 美 학계에 던진 질문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국 대 일본 문제가 아니다. 일본이 전쟁범죄를 저지른 유일한 국가라는 지적도 아니다. 이 문제는 남자들이 특히 전쟁 때 여성을 어떻게 다뤘는지에 관한 것이다. 강간과 성폭력은 인류 문명에서 알려진 가장 오래된 전쟁범죄 중 하나다. 현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제2차 세계대전과 유럽 등지에서 일어난 최근까지의 전쟁에서도 성폭행이 발생했다. 이 문제는 남성들이 여성을, 특히 남성들이 가장 공격적일 때 여성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한 굉장히 광범위하고 오래된 문제다. 따라서 이 문제가 일본의 극단적 민족주의자들과 한국인들 사이의 줄다리기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백악관 윤리 담당 변호사를 지낸 리처드 페인터 미네소타대학교 교수는 13일(현지시간) 저녁 열린 화상 세미나에서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교수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역사 왜곡 논문으로 불거진 사태에 대해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미국의 위안부 운동단체 '케어'(CARE, Comfort Women Action for Redress and Education )가 주관한 이날 세미나에는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 데이비드 민(SD 37) 의원도 사회자로 참석했다.

▲ 13일 화상 세미나 패널로 참여한 리처드 페인터 미네소타대 교수ⓒ프레시안(전홍기헤)

램지어 교수는 최근 일본군 ‘위안부’가 "전쟁 성노예"가 아니라 “자발적 계약에 기반한 매춘부”라는 주장을 하는 논문(‘태평양전쟁에서의 성 계약’)을 학술지 <법경제학국제리뷰>(IRLE)를 통해 발표했다. 온라인을 통해 공개된 이 논문은 원래 이 학술지 3월호에 실릴 예정이었으나, 역사학자-경제학자-법학자 등 관련 학자 수천명의 비판이 쏟아지면서 학술지 3월호 자체의 출간이 미뤄졌다. 이 학술지는 램지어 논문에 대한 반박 입장 등은 받고 있지만 '램지어 논문 출간을 취소하라'는 요구는 수용하지 않고 있다.

페인터 교수는 역사에 관한 논문은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램지어 교수가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인한 것에 대해 페인터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범죄나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최근에 저지른 고문과 같은 전쟁범죄들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페인터 교수는 또 램지어가 '자발적 계약'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로 당시 일본의 10살 소녀 '오사키'의 사례를 제시한 것과 관련해서도 문제를 지적했다. 램지어 교수는 이 사실을 근거로 조선인 위안부의 계약서는 하나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라는 주장을 제기했고, 이런 문제에 대해선 본인도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위안부' 피해자 중에는) 일본에 수십년 동안 식민 지배를 받았던 나라에 살고 있던 10대 소녀들도 있었다. 미국에서도 14세 이하 아동의 계약은 반드시 법적 대리인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다른 나라의 군대에 예속되어 하루에 40-60명의 병사와 성관계를 갖는 '계약'을, 식민지 지배를 받는 나라의 10대 여성이, 심지어 다 큰 어른이라고 해도 이런 계약을 (자발적으로)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나?"

"램지어와 학술지는 왜 이 논문 출판을 끝까지 원하는지 물어봐야 한다"

페인터 교수는 '위안부' 문제가 미국의 노예제와도 관련이 있는 지배와 피지배, 착취와 피착취의 문제이며, 때문에 학문이 지배와 착취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돼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 문제는 여성 착취, 일본 제국의 식민지 착취에 관한 것이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유대인을 착취한 것, 미국에서 아프리카 미국인을 노예로 착취한 것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은 노예를 거느린 농장주 출신이다. 이는 인간의 역사에서 몇번이고 되풀이해서 일어난 현상이다.

'게임이론'(램지어 교수는 '자발적 계약'이라는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게임이론을 차용했다)은 한쪽이 협상력이 없을 때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자로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이런 주장을 학문이라고 가장할 때, 이를 비판하는 것이다.

이 논문은 '동료 평가'(학술지에 게재되기 위한 과정으로서 다른 학자들의 검토)를 통과하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는 이 저널 편집자들에게 계속 물어봐야 한다. 그들이 왜 믿을 만한 경제학자나 역사학자들이 반대했을 때도 이 논문을 계속 출판하기를 원하는지 말이다."

'게임이론' 전문가인 마이클 최 UCLA 교수도 램지어가 존재하지 않는 '거짓 역사'를 주장하기 위해 '게임이론'이란 분석틀을 활용한 것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최 교수가 시작한 램지어 논문 비판 성명에는 13일까지 3300명의 학자들이 서명했다고 한다.

"이것은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일과 마찬가지다. 홀로코스트는 집시나 게이, 유대인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우리 모두에게 의미가 있다. 우리는 이 이슈를 단순히 아시아나 한국, 또는 일본 사이의 문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저는 일어난 일에 대한 강력한 설명을 통해 이론이 강력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론이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끔찍한 주장을 포장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은 정말 나쁜 일이다. 이 논문에서 최악은 아주 피상적인 방식으로 게임 이론을 이용하고 이를 전문성을 위장하기 위해 썼다는 것이다."

"30년 전으로 시계를 돌린 램지어, '학문 자유' 뒤에 숨지 말아야"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학교 교수(현대 일본·한국·국제역사 전공)는 "램지어 교수의 주장은 전혀 새롭지 않다"며 램지어 교수가 일본 극우의 '역사 부정주의'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램지어 교수의 주장은 일본 집권당의 주장과 똑같다. 이는 일본의 언론과 주류를 지배하는 입장이다. 일본도 미국이나 오늘날 세계의 많은 곳처럼 분열된 사회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 '위안부'는 일본 사회를 분열시키는 주제 중 하나다.

그럼에도 나는 램지어 논문의 첫 단락부터 충격을 받았는데, 이는 특히 '매춘부'라는 용어의 사용 때문이다. 이는 1990년대 유엔을 통해 인정된 '성노예'라는 표현 이전으로 되돌린다. 우리는 원점으로, (위안부 운동이 시작된) 30년 전으로 돌아왔다."

더든 교수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대해 "증거가 없다"고 못 박으면서 "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잘못된 정보와 가짜 뉴스를 사실로 꾸미고 이를 학문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대학에서 종신 교수로 있을 만큼 충분히 특권을 갖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이를 비판하고 이는 학문의 자유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학문의 자유) 민주주의에서 특권 중 하나가 아니다. 램지어는 그 뒤에 숨어 있고 그것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증거가 없다면 학문적 자유도 얻지 못한다."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 교수ⓒ프레시안(전홍기혜)

페페 추 배서칼리지 석좌교수(일본학.중국학)도 램지어의 논문이 그간 축적된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 등 사료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추 교수는 "램지어가 위안부 여성의 성노예 이야기가 허구라고 말했을 때 희생자들과 말하거나 그들의 증언을 읽으려 해봤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램지어 사태와 관련해 "우리 할머니들이 증언하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며 "학자들께서도 두려움 없이 나서 주시기 때문에 거짓이 드러나고 진실이 승리했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역사 부정이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 "일본이 한 번도 국제법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판결을 받은 게 없지 않으냐. 그래서 망언을 계속하니 국제사법재판소(ICJ)로 가서 판결을 받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미국의 역할'에 대해 "미국 학교에서 이 문제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 위안부 문제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의 여성 인권 침해였고 범죄였다"며 "과거를 잊으면 반복되니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또 데이비드 민 의원에게 "미국 의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켜 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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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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