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에서 그런 망언을 하다니 무시하라고 학생들에게 얘기했지만 오히려 이번 일이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 학생들이 너무 고마웠지만 그들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운동가인 이용수 할머니(92)는 2일 <프레시안>과 화상 인터뷰에서 최근 한국과 미국 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파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램지어 교수는 최근 발표한 논문('태평양전쟁에서의 성행위 계약')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자발적 계약을 맺은 "매춘 여성"이라고 주장해 2000명이 넘는 학자들이 반대 서명을 하는 등 파문이 일고 있다.
이 할머니는 지난 1월 있었던 한국 법원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일본 정부가 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 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거듭 부인하고 나서자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이 문제를 제소하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은 이런 상황에서 불거져 나온 램지어 사태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역사 왜곡과 망언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나올 수 있는 보여주고 ICJ 제소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해줬다는 지적이다.
이 할머니가 일본 정부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결을 받자고 주장하고 나선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시간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피해자가 한 사람이라도 살아있을 때 사죄를 하는 게 맞다. 피해자가 없는데 누구한테 사죄를 하는 것이냐. 언제까지 제가 살 수 있는 거면 살아서 보겠지만 세월이 저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제가 있을 때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아베 신조를 이은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도 정치적으로 '극우'에 속한다. 그는 지난 1월 한국 법원 판결이 나오자 크게 반발하는 등 위안부 문제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알아서 사과하기를 기다리는 일은 부질없어 보인다.
이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국에서 재판했다, 미국에서 재판했다, 일본에서 재판했다. 그런데도 일본은 법을 모른다"고 거듭 ICJ 제소 주장이 나온 이유를 설명했다.
"일본이 무법시대에 맘대로 끌고 가고, 뺏어가던 것을 지금까지도 무법인 줄 알고 계속 이러는데 국제사법재판소를 가서 한참 잘못이라는 것을 깨우치도록 하려고 한다. 그때는 무법이었지만 지금은 법이 있다. 우리 후대 사람들에게도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가 전심전력을 다해서 할 것이고 반드시 이길 것이다."
일본 정부가 반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 할머니는 "지은 죄가 있으니까 못 가는 것 아닌가. 죄가 없으면 당당히 나와야 한다. 그걸 알린 것만 해도 이겼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전날 신임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을 만난데 이어 3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을 만난다. 정영애 장관은 이 할머니를 만나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적극 검토하겠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전달했다.
"이제 막 부임한 여성부 장관이 마음을 모아서 도와주겠다는 한 마디만으로도 고맙고 믿음직스럽다. 내일은 외교부에 들어간다. 외교부 장관도 부임한지 얼마 안됐으니 인사도 드리고 다짐도 하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께도 만나서 일본의 스가 총리를 데리고 국제사법재판소까지 가서 분간을 지어주기를 바란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코로나 상황(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만 아니었으면 문재인 정부가 해결을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할머니는 "일본이 죄가 많지만 사죄 받으면 용서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위안부 문제를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 시작하셨다. 이 문제를 마지막으로 평화롭게 해결하는 것은 이용수가 하고 싶다. 우리 후세대를 생각해서라도 이 문제는 악으로 하지 말고 선으로 평화롭게 해결해야 한다. 제가 열네살 때 (위안부로) 끌려가서 대만까지 끌려가고 갖은 설움과 폭행을 당했는데 내가 안 끌려갔으면 또 다른 사람이 끌려가지 않았겠나. 나는 저들한테 나를 그대로 보이면서 끝까지 싸워서 이길 것이다. 두번 다시 이런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이다.
지금 일본 정치인들 때문에 자라나는 일본 학생들이 한국이 왜 사과를 요구하는지 모른다. 일본은 (위안부 관련) 서류가 나오면 다 태워버리고 학생들에게는 일본은 잘못이 없다, 한국이 거짓말을 한다고 교육시키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이웃나라인데 서로 교류하고 지내야하지 않겠나. 이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 교류하며 선하게 지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면 세계평화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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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onscar@pressian.com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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