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돈 넣자마자 쌍용차 재무구조가 망가지기 시작한 이유는?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2019년 3~4분기, 쌍용차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안타깝지만, 최근 10년간 누적적자가 1조원이 넘는 회사에 단순히 돈만 넣는다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지속가능한 사업계획이 반드시 필요할 것임"

지난 2월 2일 산업은행이 기자 간담회 직후 배포한 보도자료에 나오는 표현이다. 쌍용차가 법정관리 또는 파산할 경우 산업은행이 조기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책임론도 대두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이 무엇인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대목이었다.

산업은행 잘하는 건 칭찬해줍시다

저 문장만 보자면 <인사이드경제> 독자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리라. 그래, 돈만 넣는다고 모두 살아난다면 회생시키지 못할 기업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 코로나19 시대에 기업 경영이 그렇게 만만한 일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이날 산업은행이 가장 강조한 내용은 '지속가능한 사업계획'이었다. 특히 잠재적 투자자 측이 구체적인 계획을 제출하지 않았기에 금융 지원을 검토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계획이 제출될 경우에도 외부전문기관의 타당성 평가를 거치겠다고 한다.

구체적인 사업계획에 대한 검토와 재검토를 꼼꼼하게 해서 지원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산업은행 태도는 매우 정당하고 바람직하다. 금융 지원의 종잣돈이 국민 세금인데 이걸 허투루 사용한다면 그게 오히려 문제 아니겠는가. 조사하고 실사하고 꼼꼼히 따져본 후에 판단하는 것이 옳다.

아니, 산업은행 하는 짓이라면 뱁새눈을 뜨고 보는 <인사이드경제>가 웬일이냐고 묻는 독자들의 눈초리가 느껴진다. 그동안 내가 그렇게 편파적이었나? 하지만 잘하는 건 잘한다고 쿨(cool)하게 인정하는 태도가 토론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

2019년 산업은행의 1천억 금융 지원

그런 취지에서 <인사이드경제>도 속 좁게 째려보기보다 툭 터놓고 얘길 해보고 싶다. 불과 1년 반 전에 산업은행이 쌍용차에 무려 1000억 원 가량의 금융 지원을 집행한 바 있기 때문이다. 쌍용차 분기별 재무제표를 토대로 산업은행 차입금과 채권최고액(담보로 잡은 액수)의 변화를 보면 언제 지원이 이뤄졌는지도 명확하다.(아래 표)

▲ 2019년 3~4분기 산업은행의 쌍용차 금융 지원.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위 표를 보면 산업은행의 신규 대출이 이뤄진 시점은 2019년 3분기와 4분기이며, 대출 금액은 최소 800~900억 원에 달한다. 그에 따라 담보로 잡은 액수도 기존 1950억 원에서 3000억 원으로 1000억 이상 늘어나게 된다. 2분기 말 기준 산업은행 대출금이 1000억 원이었다가 2019년 신규 대출로 1900억 원으로 두 배 가까이로 껑충 뛰어 산업은행이 쌍용차의 '주 채권단'으로 올라서게 된다.

산업은행의 1000억 규모 금융 지원이 벌어지던 2019년 3분기는 어떤 시점인가. 2016년을 제외하면 쌍용차는 2011년 이후 한번도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으며, 2018 회계연도까지 누적 적자만 무려 4000억 원이 넘는 상황이었다. 2019년 2분기까지로 범위를 넓혀보면 누적 적자는 5000억 원에 육박한다. 바로 그런 시점에 산업은행의 막대한 금융 지원이 있었던 것이다.

2019년 검토한 사업계획은 무엇이었나

이 정도 규모의 금융 지원이라면 당연히 산업은행 수장인 이동걸 회장 승인 절차를 거쳤을 것이다. '지속가능한 사업계획'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산업은행 아닌가. 돈만 넣는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를 철의 원칙으로 내세우는 기관 아니던가 말이다. 그렇다면 충분한 사업계획 검토와 실사를 거쳤을 것임에 틀림없다.

어디 그뿐인가. 2018년 9월에 10년 묵은 과제인 해고자 복직 합의 후 쌍용차에 설치된 일종의 노사정 협의기구인 '상생발전협의회'에서 수시로 쌍용차 노사는 물론이고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과 일자리위원회,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참여하여 쌍용차 경영현황 논의를 진행한 바 있다.

실제로 산업은행 관계자들이 2019년에 쌍용차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강도 높은 실사도 진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당시 차입금 총액에 맞먹는 규모인 1000억 수준의 금융 지원을 결정하게 된 배경에는 '지속가능한 사업계획' 확인이 있었을 것 아닌가?

산업은행 지원 직후 망가지는 재무구조

쌍용차는 2019년 2분기까지 10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산업은행의 막대한 금융 지원이 이뤄지기 직전까지의 실적이다. 그런데 산업은행 지원이 시작된 바로 그 시점, 2019년 3분기부터 쌍용차 적자폭은 갑자기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2019년 2분기까지 평균 250억 원 가량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는데 이 수치는 2019년 3분기부터 1000억 원대로 4배나 치솟는다.

▲ 2019년 3분기 이후 1000억 원대로 치솟은 쌍용차 영업손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아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면밀한 실사와 검토 끝에 '지속가능한 사업계획' 확인 후에 이동걸 회장이 직접 승인했을 금융 지원 아닌가 말이다. 2019년 3분기라면 팬데믹 이전이므로 코로나19 탓도 아니다. 무려 1000억 원의 금융 지원이 이뤄진 직후부터 오히려 적자폭이 4배로 뛰었다면 뭔가 의심해봐야 할 상황 아닐까?

하지만 쌍용차가 위기에 처하고 매각작업 역시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은 지금까지도 산업은행은 금융 지원의 배경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있다. "단순히 돈만 넣는다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유체이탈에 가까운 워딩만 있을 뿐이다.

산업은행의 워딩은 지지받아야 할 얘기라고 미리 언급한 바 있다. 그러니까 말이다. 2019년 3~4분기에 산업은행이 단순히 돈만 넣은 게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당시에 분명히 회생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으니 막대한 규모의 금융지원을 한 게 아닌가!

보면 볼수록 수상한 2019년 3~4분기

쌍용자동차 재무제표에서 각 분기말 현재 '현금 및 현금성자산' 규모의 추이를 그래프로 한번 그려보았다. 거기에다 <인사이드경제>가 파악 가능한 현금 유입요인, 이를테면 현금대출이나 유상증자 혹은 자산매각 등의 이슈를 표시해 보기로 했다.(아래 그림)

▲ 2018년 4분기부터 2020년 3분기까지 쌍용차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 추이와 현금 유입요인.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2019년 2분기까지는 그럭저럭 현금 및 현금성자산 적정규모를 유지하다가 3분기 말에 엄청난 규모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이 시점, 그러니까 2019년 3분기에 산업은행과 우리은행 대출만 1000억 원 이상 발생해 현금 유입이 되던 시기인데, 전체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오히려 2000억 원 이상 감소한 것이다.

그 뒤의 진행과정은 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내용들이다. 현금 소진 상태에서 2020년 초에 해외차입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양산물류센터와 구로정비사업소 부지를 매각해 2분기 말에 현금사정은 개선되었다. 하지만 2020년 3분기 말에 현금이 다시 급감하면서 해외차입금도 꽤 줄어든 것으로 미루어, 자산매각 대금 상당부분이 해외은행 빚 갚는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 상황은 코로나19 대유행까지 겹쳐진 상황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2019년 3~4분기 상황은 여전히 미스테리이다. 2019년 1분기에 뷰티풀 코란도, 2분기에 티볼리 에어 등 신차 출시가 이어지며 쌍용차는 장밋빛 전망을 쏟아내던 시점이었다. 산업은행 역시 쌍용차 미래를 낙관하며 금융 지원을 했던 시기 아닌가 말이다.

대주주와 경영진 책임은 묻지 않나

"쌍용차 부실화 원인은 대주주의 경영실패에서 기인한 것인데, 왜 산은의 책임인지 오히려 반문하고 싶음. 안타깝지만, 최근 10년간 누적적자가 1조 원이 넘는 회사에 단순히 돈만 넣는다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지속가능한 사업계획이 반드시 필요할 것임"

산업은행 책임론을 제기하는 질문에 2월 2일자 보도자료에서 산업은행이 답변한 문장 전체이다. 그래, 산업은행 정말 말 한번 잘했다. 쌍용차 부실의 원인은 대주주 마힌드라의 경영실패에서 기인한 것인데 어째서 대주주와 경영진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가 말이다.

게다가 2019년 3~4분기는 여러 가지로 면밀한 조사·실사 내지 수사가 필요한 시기이다. 산업은행이 국민 혈세 1000억을 지원한 시기이기도 하니, 실제로 대주주와 경영진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지점 아닌가.

이 시기에 노동자들은 복지 혜택 중단·축소(3분기), 성과급·상여금 반납(4분기) 등 무려 1000억 원 이상의 임금을 삭감하는 희생을 치른 바 있다. 그런데도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은 대주주도,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만 무쟁의 서약서, 임·단협 유효기간 3년 연장 등의 추가 양보만 강요하고 있는 꼴이다.

국책은행 산업은행이 해야 할 일

이제 산업은행은 유체이탈 화법을 중단해야 한다. "돈만 넣는다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 했으니 2019년에 분명한 턴어라운드(회생) 계획을 확인했을 터이다. 그렇다면 2019년 막대한 금융 지원의 배경이 되었던 실사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당시 산업은행이 쌍용차 미래 전망을 낙관했던 이유를 밝혀야 한다.

만일 그런 내용을 하나도 갖추지 못한 채 금융 지원을 한 것이라면, 국민 혈세를 멋대로 낭비한 책임을 다름 아닌 산업은행이 져야 한다. 그럴 경우 "돈만 넣는다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은 산업은행이 할 말이 아니라 들을 말이 되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산업은행의 일성처럼 '대주주의 경영실패'에 기인한 것이라면, 그 내용이 무엇인지 (실사 또는 수사를 통해) 분명히 밝혀내야 한다. 2019년 1천억 금융 지원이 정당한 근거를 갖고 있었는데 대주주와 경영진이 망가뜨린 것인지, 아니면 산업은행의 판단 착오에 의한 투자 실패였던 것인지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다.

산업은행 금융 지원이 이뤄지자마자 쌍용차 재무구조가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희생해온 노동자들에게 또다시 책임을 묻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국민 혈세가 도대체 어떻게 쓰였기에 이꼴이 되었는지 밝혀내고, 책임져야 할 이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 국책은행이 해야 할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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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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