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사실은 근대의 질주가 좌초하고 근대성의 패러다임이 더는 적용되지 않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것이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식의 한가한 기존 논의 틀로는 해명되지 않을 미래가, 공포영화의 괴물처럼 상상하지 못할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덤벼들고 있다는 뜻이어서, 인류는 수사(修辭)가 아니라 정말로 진화의 최종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들어가며' 중에서, 5~6쪽)
코로나바이러스는 전세계에 대전환이라고 불릴 만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눈에 보이는 변화뿐 아니라 세계와 인간 존재를 지탱해온 가치, 사상, 패러다임을 흔들었다.
변화는 그간 보이지 않던 모순을 상처처럼 드러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애써 무시해 왔던, 혹은 덮어 두었던 모순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인류는 마치 당황한 듯 스스로의 민낯을 마주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최근 발간된 <코로나 인문학>(안치용, 김영사)은 팬데믹의 원인과 변화상을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팬데믹으로 드러난 균열과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인문학적인 자세를 제안한다. 방역과 경제·경영 분야의 관점을 넘어 코로나 시대를 역사적, 정치적, 사회학적, 철학적 관점에서 복합적으로 사유한다.
저자는 코로나19로 인한 변화를 불가역적이고 세계사적인 사건이라고 정의하며 "인류는 근대를 넘어서는 획기적인 비약을 이루거나 아니면 근대 이전으로 추락할 것이며 극단적으로는 문명 종언의 길에 접어들 개연성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이 책은 코로나19라는 기나긴 터널을 지나는 우리의 의지를 다지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방향성을 점검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총 2부 9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코로나19 이전에 인류 문명에 변곡점을 만들어낸 전염병의 역사를 개관한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병이었던 흑사병이 종교 개혁과 근대 자본주의로 가는 문을 열었던 아이러니를 지적한다.
2부에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단초를 찾아내며 코로나 시대를 총체적이고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미국에서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 반대하여 시위가 일어났다. 왜 미국인들은 마스크 착용을 기피할까?(3장) 한국의 확진자 이동 동선 공개를 비난했던 서구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이동금지령과 봉쇄령 같은 극단적인 조치를 위했다. 선진국이라 불리던 나라가 방역에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보건을 위해 이동할 권리를 얼마나 제한할 수 있을까?(4, 5장) 초고도 연결사회에서 개별 국가는 탈세계화, 역세계화 등 한계가 드러나는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언택트는 어떻게 가능할까?(8장) 비대면 결제, 브이커머스 등 언택트 기술은 끝없이 진화하고 있지만 늘어난 택배 물량을 감당하다 택배 기사가 과로사하고 드론은 감정 없이 인간을 쏠 수도 있다.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킬 수도 있는 언택트의 딜레마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9장)
이 책은 팬데믹을 받아들이는 인간이 어떤 의지를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미래가 펼쳐질 수 있음을 보여주며, 감염과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좋은 변화에 대한 의지를 강조한다. 저자는 인간 존재의 최종 심급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라는 말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알려준다.
저자 안치용은 경제학, 경영학, 신학 등 여러 분야를 꾸준히 공부해왔다. 학문적으로 지식을 쌓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을 깊이 응시하며 문학, 영화, 페미니즘, 현실정치 등 다양한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 <지속가능저널> 발행인이자 한국 CSR연구소 소장이기도 한 저자는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지속가능 및 사회책임 관련 의제로 토론하고 공유하는 일에도 노력을 기울여왔다.
저자 소개
안치용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 CSR연구소 소장.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지속가능 및 사회책임 관련 의제를 확산하고 10~20대와 미래 의제를 토론하고 공유하는 데 힘 쏟고 있다.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 집행위원장,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이다.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한다. <경향신문〉에서 20년 이상 기자로 일했다. <예수가 완성한다, <한국 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50대 인문학>, <지식을 거닐며 미래를 통찰하다> 등 30여 권을 쓰고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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