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유행 1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은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본격 심사·허가와 시판에 들어갔다. 코로나 백신만 하더라도 선두 주자인 화이자·모더나 백신뿐만 아니라 시노팜, 스프트니크V 등 여러 종류가 이미 40여 국가에서 본격 접종에 들어갔다. 이어 존슨앤존슨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도 뒤를 따를 전망이다.
일부 경증 환자들을 치료해주거나 치료 기간을 줄여주는 것으로 확인된 기존 약물인 렘데시비르와 항체치료제 등 몇몇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제 등도 긴급사용 승인을 받아 환자를 대상으로 투약하거나 긴급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3일 셀트리온의 항체치료제 임상 2상 시험 결과가 공개되면서 치료제에 대한 기대를 걸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아스트라제네카가 제출한 코로나19 백신 허가신청을 식약처가 접수받고, 제출자료 요건을 검토하는 예비심사를 거쳐, 본격적인 제출자료 심사에 들어갔다. 식약처는 또 17일 검증자문단 회의를 열어 셀트리온의 코로나19 항체치료제인 ‘렉키로나주’의 임상시험 자료에 대한 검증을 벌이기로 했다.
백신과 치료제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생명이다. 이들은 코로나 유행을 획기적으로 막거나 환자의 생명을 지켜낼 수 있는 희망이기 때문에 항체 형성률과 치료 효과가 어느 정도 되느냐와 함께 백신·치료제를 맞은 뒤 정말 안전하냐에 눈귀가 쏠리고 있다. 이들 백신과 치료제는 개발 제약회사들에게 엄청난 부를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기업들은 허가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접종·투약 대상자들, 즉 시민들의 신뢰는 허가 당국이 전문성과 함께 얼마나 공정하고 투명하게 안전성과 유효성을 심사하느냐에 달려 있다.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 기업 또는 기업 관계자와 얼마나 독립적으로 전문가와 허가 당국이 투명하게 심사하느냐가 관건이다.
식약처, 코오롱 인보사 사태 때 불투명·불공정으로 추락
우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바이오신약 허가와 관련해 국민한테서 손가락질을 받은 바 있다. 코오롱의 유전자치료제 ‘인보사’ 사태 때다. 지지난해 4월 사망 사례가 보고된 인보사의 유전자 항암 신약 임상시험을 중단시킬 것인지 결정하는 회의에 코오롱 주식을 가지고 있는 교수가 참석했다. 식약처는 이를 알고도 그를 제척하지 않고 참석시켰다. 해당 교수도 스스로 회피하지 않았다.
식약처의 이런 행태는 이전에도 있었다. 2017년 인보사 허가를 다루는 중앙약사심의위원회 1차 회의 때 위원 대부분이 반대해 무산됐다. 식약처는 위원 다수를 바꿔 두 달 뒤 2차 회의를 다시 열어 통과시켰다. 이때 같은 업계 대표와 인보사 개발 책임자와 학연이 깊은 교수도 참여시켰다. 투명성과 공정성을 내팽개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나중에 조작된 신약으로 드러나면서 국내외에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투명성과 공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준 결정적 사건이었다.
대한민국은 혈연, 학연, 지연뿐만 아니라 이익으로 얽히고설킨 나라이다. 거의 모든 부문에서 그 폐해가 아직도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끼리끼리의 문화가 고질병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인보사 사태도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전문가 협의체와 중앙약심 과연 공정·투명하게 운영할까?
그렇다면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심사·허가에서는 그런 행태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까? 식약처는 지난 2일 코로나19 백신·치료제의 허가·심사 과정을 소개하면서 국내 백신·치료제의 개발을 촉진하고 외국의 백신·치료제를 철저하게 심사하는 동시에 신속하게 도입하기 위해 지난해 4월부터 ’고강도 신속 제품화 촉진 프로그램‘(고-신속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식약처는 전문심사자들로 구성된 ’허가전담심사팀‘을 구성해 허가 신청 전에 사전상담과 사전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바이러스벡터 백신팀에선 아스트라제네카·얀센(존슨앤드존슨)의 코로나19 백신을, 핵산 백신팀에선 화이자·모더나 백신을, 항체 치료제팀에선 셀트리온 코로나19 치료제를 전담한다는 것이다.
식약처는 전문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감염내과 중심의 임상 전문가, 품질·비임상·임상통계 분야 등의 외부 전문가로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했다. 이와 함께 자문 안건의 내용에 따라 전문가 자문을 추가로 실시하며 식약처 자문기구인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 기업이 제출한 자료의 타당성을 자문 받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어떤 제도적 장치와 원칙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가 없다. 전문가와 중앙약사심의위원 가운데 어떤 사람을 이해관계자로 볼 것인지, 제척 대상은 어떤 경우에 해당하며 제척 대상인데도 회피하지 않았을 경우 어떤 불이익을 줄 것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친인척·학연·이익으로 조금이라도 얽혀 있으면 제척해야
신청 기업 대표 또는 핵심 관계자와 친인척 관계일 때 4촌 이내 등 어느 수준에서 제척 대상으로 삼을 것이냐를 석약처는 미리 정해놓아야 한다. 또 학연의 경우도 지도교수, 제자, 고교 동기나 동문 또는 같은 학과 출신 등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
백신과 치료제의 승인은 개인과 기업의 이익과도 직결된다. 따라서 전문가와 심의위원이 관련 주식을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제척 대상이 되어야 한다. 식약처 담당 공무원의 경우 당연히 관련 제약회사 주식을 취득하고 있지 않겠지만 최근 주식 열풍으로 전문가 가운데에도 외국 기업을 포함해 제약회사 주식을 지닌 이들이 많을 수 있으므로 이 부분을 특히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또 신청 기업의 백신·치료제에 대한 임상시험을 맡아서 수행했거나 최근 몇 년간 해당 기업한테서 연구비를 받고 연구 용역을 한 전문가 등도 심사나 자문에서 빠지는 것이 당연하다. 해당 기업의 사외이사, 자문위원 등을 맡은 적이 있는 전문가도 이해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에 식약처가 이런 세부적인 공정성·윤리성 원칙과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다면 이를 미리 국민에게 알려 불필요한 오해나 불신을 막아야 한다. 만약에 없다면 즉각 만들거나 보완해야 할 것이다.
또 백신과 치료제 심사·허가를 하면서 정치적 일정이나 유불리 등에 조금이라도 신경을 기울여서는 안 된다. 방역과 백신·치료제 문제만큼은 정치적 논란이나 정치적 이유가 개입하지 않는 무풍지대가 되어야 한다. 효과와 안전성이 부풀려지거나 축소되면 안 된다. 최근 정치권에서 백신 수급과 관련한 공방이 과열됐기 때문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