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남친이 '사진이 있다'며 성관계 요구...전 패닉에 빠졌어요"

[이변의 예민한 상담소 2] 여덟 번째 이야기

A.
"저는 늘 동영상이나 사진을 찍는 게 싫었어요. 분명하게 말도 했구요. 그런데 제가 잠들었을 때나 제가 잘 모르는 동안 찍은 게 있는 것 같았어요. 사랑해서 만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는 만나기 어려워졌고, 결국 헤어지게 됐어요. 그런데 남자친구가 '사진이 있다'고 했어요. 그 말뿐이었지만 저는 패닉에 빠졌어요. 그리고는 저를 불러냈고, 나가니 성관계를 요구했어요. 저는 남자친구에게 있다는 사진이 뭔지 알아야 했고, 불안했어요. 우선은 응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하지만 남자친구가 사진을 보여주지도 않았어요. 강간과 협박으로 신고하고 싶은데 들은 말이 '사진이 있다'는 말뿐이라 어렵다고 해요."

B.
"사귀는 동안에도 힘들었어요. 성관계를 한 적이 있는 사이지만, 어느 날은 술에 잔뜩 취해 찾아와서는 싫다는 데도 강제로 성관계를 했어요. 싫다고 하는 대도 막무가내였고 주먹으로 치고받고 할 수도 없으니 하게 됐어요. 좋아서 응한 게 아니에요. 화가 났지만 남자친구를 신고할 수도 없고. 그땐 좋아하는 마음이 컸구요. 그런데 나중엔 남자친구가 연락도 씹고(무시하고) 잠수를 탔어요(잠적을 했어요). 그러니까 더 화가 나면서도 집착하게 되더라구요.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너무 화가 나요. 강제로 했던 성관계인데, 강간으로 고소할 수 없나요?"

연애를 하기까지, 또 연애 초반부에는 당사자 간에 크게 반목하지 않는다.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인 만큼 서로의 기분을 살피며 상대가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당사자 간 갈등은 서로가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 고개를 든다.

갈등이 일어나는 시기, 즉 '나'의 욕구와 상대방의 욕구가 충돌할 때 우리는 '나'의 욕구에 충실하게 된다. 문제는 '나'의 욕구에 대한 충실성이 적정선을 넘어 상대방의 인격을 훼손시키는 수준에 이르는 경우다. 그렇게 연애가 익숙해지면 자칫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잃기 쉽고, 예의를 잃어버린 언행은 상대방을 심각하게 훼손시킨다.

예의가 실종된 연애는 결국 이별의 빌미가 된다. 동시에 민사상 불법행위가 될 수도, 형사법상 범죄 구성의 요건이 될 수도 있다.

A의 경우, 남자친구가 A가 모르는 성적 수치심이 들만한 사진을 실제로 찍은 것이라면 그 자체로 범죄가 성립한다. 그렇지 않고 거짓말한 것이면, 형법상 협박이나 강간에 해당하기는 어렵지만 사기 여부를 검토해 볼 수 있다. 만약 A의 동의 없이 남자친구가 몰래 촬영한 것이라면,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반대로 거짓으로 촬영물 운운하며 성관계를 요구한 것이라면, A의 남자친구는 예의를 벗어난 범죄 혹은 불법 행위든 저지른 것에 해당한다. 전자든 후자든 A의 남자친구는 '사랑해서 그랬다'라고 변명하겠지만, 사실은 욕망에 충실했던 것에 불과하다.

B의 경우, 역시 연애와 이별 과정에서 상대방의 예의 없는 행동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건이다. 그런데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에 의한 간음이다. 강간죄 성립에 요구되는 폭행은 저항하기 어려운 정도의 물리적 유형력이다. 부부 관계나 사귀는 관계에서도 강간죄는 성립할 수 있지만, 여기서도 저항하기 어려운 수준의 폭행이나 협박이 전제되고 입증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런 특별한 관계에서는 통상 일반적인 강간 수준의 폭행까진 수반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이를 입증하기란 더욱 어렵다는 점이다. 관계가 지속되면서 피해자가 주장하는 강간 일과 이후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이 동반됐다면, 피해와 가해 상황이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B가 상대방에게 심적·물리적으로 훼손당한 것이 분명하더라도, 폭행 정도가 심하지 않고 관련 증거가 남아있지 않다면 고소를 해도 소명될 확률이 희박하다.

그렇다고 B의 상대방이 B에게 한 행위가 괜찮다는 것은 아니다. 연애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일반적인 폭력보다 더 나쁠 수는 있어도, 사랑 운운하며 이해될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다. 또 연애 관계에서의 폭력이 꼭 물리적 폭력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성(性)이나 감정을 향한 폭력 역시 물리적 폭력과 다르지 않다.

인간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 모두, 수사 기관과 법정으로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해지면 결국 한때의 사랑은 서로가 아닌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 연애를 연애답게 하고, 사랑을 사랑으로 남기기 위해서는 연애에도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 이은의 변호사의 칼럼 '이변의 예민한 상담소'가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일상생활 속 성희롱·성폭력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언제든, 어떤 사연이든 언니에게 털어놔!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은의 변호사 메일(ppjasmine@nate.com)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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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의

이은의 변호사(ppjasmine@nate.com)는 이은의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위 글의 내용에 대한 추가적인 문의 사항이나 법률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메일이나 아래 전화로 연락을 주십시오. (평일 오전 9시 30분~오후 6시 : 02-597-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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