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 가장 오래되고 거대한 권력을 건드리다

[시민정치시평] 녹색당이 마주한 지방선거의 장벽들

선거가 끝났다. 선거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극적인 순간이고, 인류가 축적한 정치의 기술들이 발현되는 장면이라는 통념이 있다. 선거를 통해 우리 사회가 성숙한다고 믿는 흐름도 굵직하게 존재한다. 그런데 과연 이번 지방선거는 그렇게 극적이었는지, 민주주의의 하이라이트라고 부를 만한 시간이었는지 복기해보고 싶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최대치라면 너무 절망적이라고 생각될만한 순간들이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장벽으로 가득한 선거정치의 한계적 장면들을 먼저 짚어보도록 하자.

선거, 첫 번째 걸림돌 : 돈, 돈, 돈.

일단 돈이 없으면 출마를 할 수 없다. 이번 지방선거를 기준으로 기탁금을 살펴보자. 기초의회 의원은 200만 원, 광역의회 의원은 300만 원, 기초단체장은 1000만 원, 광역단체장은 5000만 원의 기탁금을 내야 한다. 기탁금 제도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는 '입후보자의 난립을 방지하고 후보자의 성실성을 담보하기 위한 목적과 정치문화와 풍토에 있어서의 현실적인 필요성 등을 감안할 때, 필수불가결한 제도'라고 이야기한 바 있는데(2001헌마687), 십분 양보해 그런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그 비용이 너무 크다는 생각은 도저히 사라지지 않는다.

일단 어찌어찌 노력하여 과한 기탁금을 내고, 광역단체장 후보로 등록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선거공보물이 또 돈이다. 선거공보는 최대 쪽수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에 맞게 넣을 수도 있다. 그래서 여러 쪽의 선거공보물도 들어오고, 한 쪽짜리 선거공보물도 들어오는 것이다. 그런데 아예 공보물을 안 넣을 수는 없다. 공직선거법에서 규정한대로 모든 선거공보물은 2면에 후보자의 인적사항과 전과기록, 학력, 재산 등을 공개해야 하는데, 이 후보자 정보공개 자료는 필히 각 세대로 들어가야 한다. 이 자료가 들어가지 않을 경우, 후보자 등록 취소 사유가 되기도 한다. 서울의 경우, 이번 지방선거에서 460만 세대 정도에 공보물이 들어가야 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한 페이지의 후보자 정보공개 자료는 후보자 혹은 선거캠프가 마련한 비용으로 460만 부를 출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공보물을 각 구의 선거관리위원회로 배송하는 것 역시 후보자의 몫이다. 이렇게 서울에서 서울시장을 나가려면, 후보자로 등록하고 숨만 쉰다고 해도 1억 원은 있어야 투표용지에서 후보자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선거, 두 번째 걸림돌 : 법대로라는 관념, 권력의 문제를 우회하는 정치

정치는 우리 사회의 한정 된 자원을 분배하는 권위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그리고 자원의 한계가 존재한다는 조건 하에서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의 규칙들을 정하는 것이 정치다. 어느 날 하늘에서 우리 사회의 그 규칙들이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법이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과 같은 자연의 규칙도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정치는 법 바깥의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을 심하게 망설이기 시작했다.

시장의 공약이 시장의 권한 밖이라면 그 공약은 무의미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법의 틀 안에서 지방정부의 재정을 그대로 집행하는 사람을 우리가 왜 선거로 뽑아야 하는가? 법 바깥을 상상할 수 없는 관료를 뽑는데, 우리가 왜 이렇게 우리의 한정된 자원을 낭비해야 하는가?

이런 점에서 법의 경계에서 우리 사회의 새로운 규칙에 대해 제안하는 정치인과 정치세력의 출현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그런데 보통 법의 경계에서 발화하는 정치인에 대해 우리는 추상적이라거나 이상적이라고 판단해버린다. 물론 추상적이고, 이상적으로만 들리는 정치 메시지라는 것은 그 메시지를 발신하는 후보자의 정치세력의 역량의 문제와 직결되기도 하지만, 그 메시지가 추상적이고 이상적이라고 판단하는 사회적인 감각에 대해서는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겠다.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대안과 다른 '실현 가능성이 높은 대안'을 판단하는 준거점을 '법'과 '주어진 권한'에 잡는 오류를 우리는 범하고 있지 않은가? 진짜 해법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들로부터 발견되기 마련이다.

녹색당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의 도전

이런 조건 중에 도전한 녹색당의 서울시장 선거였다. 다행히도 수많은 시민들과 당원들의 후원으로 최소한의 비용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라는 슬로건만으로도 누군가의 분노를 샀고, 벽보는 훼손되었으며, 실력을 의심받았다. 후보자의 사진과 포스터의 컨셉에 문제제기하는 이도 있었고, 서울시장의 권한을 모르는 것 아니냐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고, 정치인이 불법을 부추기는 거냐며 비판하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 여성의 몸을 여성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지방선거에서는 할 수 없는 것일까? 비상식적으로 상승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나는 거주자들, 상인들이 존재하지 않도록 우리 법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는 지방선거의 이슈가 아닌 것인가? 그러한 법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법의 테두리 안에서 문제의 해법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가 정치인에게 기대하는 역량인가? 우리의 가장 일상적이고, 존재론적이며, 절박한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구호가 존재하지 않는 선거가 대체 민주주의에 어떤 기여를 하는가?

녹색당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의 출현은 다양한 사회적 토론을 야기했다. 혐오폭력부터 녹색당의 정체성에 대한 토론까지 다양한 형태이다. 우리가 확인한 걸림돌처럼, 정치는 권력의 문제를 우회하며 때로는 "법대로"의 함정에 빠지고, 때로는 행정서비스기업처럼 구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변해버린 것 같다. 시민은 고객이 되었고, 그렇게 시민을 고객으로 만들어 민주주의를 축소한 것도 지금까지의 정치가 저지른 일이다.

녹색당의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 신지예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거대한 권력에 문제제기 하며 "가난해서 아프지 않고, 폭력 때문에 죽지 않고, 차별 때문에 병들지 않는 서울", "덜 일하고 더 많이 쉬고, 서로 돌보고 사랑하는 서울"이라는 미래를 제시했다. 법 뒤에 숨지 않고, 권력의 문제를 우회하지 않는 이 정치의 과정이 말들을 만들어냈다. 오히려 다행이다. 말들이 만들어져야 우리는 생각을 시작하고, 세상이 바뀔 틈이 만들어질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지향과 그 경로에 대한 더 나은 토론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어쩌면 2년 전 세상을 뒤집겠다 선언한 녹색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페미니스트 정치인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장 오래되고 거대한 권력의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 어디까지 바꿀 수 있을지 보여주겠다는 신지예 후보의 발언과 행보는 더할 나위 없이 녹색당의 지금을 잘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설정한 지금의 자리에서 후퇴하지 않고 여기서부터 이어가야 할 사회적 토론이 있을 것이다. 녹색당과 녹색정치를 통해 사회의 미래를 구성하려는 사람들, 페미니즘 정치로 권력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들의 시간의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태영 녹색당 정책위원장은 6.13 지방선거 당시 녹색당 서울시장 선거운동본부 사무장을 역임했습니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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