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여전히 '트럼프들의 나라'임을 보여주는 징후들

김동석 KAGC 대표 "BLM 시위가 보여준 미국의 핵심 모순은 빈곤"

지난 8월 위스콘신주 커노샤에서 열린 인종차별 반대시위에서 총을 쏘아 시위대 2명을 살해하고 1명을 다치게 한 10대 소년 카일 리튼하우스가 200만 달러(약 22억 원)의 보석금을 내고 20일(현지시간) 풀려났다.

시위대 2명 살해한 10대 소년, 유명 배우와 CEO 도움으로 22억원 내고 풀려나

이 거액의 보석금은 후원을 통해 모금됐다고 리튼하우스 변호인이 밝혔다. 지난 8월 23일 커노샤에서 흑인 남성 제이컵 블레이크 씨가 세 아들이 보는 앞에서 경찰에게 총 7발을 맞은 사건을 계기로 인종차별 항의시위가 일어났다. 그러자 이에 반대하는 일부 백인들이 지역 상점 등을 보호하겠다며 총으로 무장하고 모여들었다. 이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일리노이주에서 커노샤까지 찾아온 리튼하우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유세에 참여하는 등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이자 백인우월주의자로 밝혀졌다. 8월 25일 밤 무장한 백인들과 시위대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리튼하우스가 시위대 2명을 총을 쏴서 죽이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올해 17세인 리튼하우스는 사건 직후 경찰에 체포돼 1급 살인죄로 기소됐지만 일부 백인인종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영웅'으로 떠올랐고, 트럼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도 지난 9월 1일 커노샤를 방문해 리튼하우스에 대해 정당방위일 수 있다며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리튼하우스도 언론 인터뷰에서 시위 현장에 총을 소지하고 간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면서 총을 쏘지 않았다면 자신의 생명이 위험해졌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의 보석금을 마련하는데 198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배우 리키 슈로더와 미국에서 매우 인기 있는 침구업체 '마이 필로우(My Pillow)'의 마이크 린델 대표가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1급 살인죄'로 기소된 이 10대 소년이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보여주는 일이다.

▲배우 리키 슈로더가 커노샤에서 시위대 2명을 살해한 리튼하우스의 거액의 보석금 마련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사진에서 가운데가 리튼하우스, 오른쪽이 슈로더. ⓒ트위터 갈무리

'큐어넌' 당선자, 소말리아 출신 오마 의원에게 "오빠랑 결혼했다" 거짓 주장

같은 날 트위터에서는 조지아주 상원의원과 이번에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두 여성의원이 소말리아 난민 출신인 일한 오마(민주당, 미네소타) 의원에게 트위터를 통해 "오빠와 결혼했다", "알 카에다와 9.11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웃었다" 등 인종차별적 공격을 퍼부었다. 이번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오마 의원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의원 등과 함께 '트럼프 저격수'로 나섰던 여성의원 4인방(스쿼드) 중 한명이다.

켈리 레플러 공화당 상원의원은 20일 자신의 트위터에 "일한, 우리는 알 카에다와 9.11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웃고 있는 당신의 영상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글을 올렸다. 또 이번 선거에서 오마 의원이 남편의 컨설팅 회사에 캠페인을 맡긴 것에 대해 금전적인 의혹을 제기하면서 "의회에서 제명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11월 3일 선거에서 당선된 마저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 당선자(조지아)는 한발 더 나아가 오마가 이민 계획의 일환으로 "오빠와 결혼했다"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린 당선자는 트럼프 지지자들 다수가 믿는 '음모론'인 큐어넌(Qanon) 신봉자이기도 하다. 큐어넌은 힐러리 클린턴 등 민주당 정치인 다수가 사탄을 찬양하는 아동 성애자이며 트럼프는 이들과 맞서는 유일한 정치인이라는 허무맹랑한 내용의 음모론이다.

오마는 이들 의원들의 주장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면서 특히 레플러 의원에게는 "당신은 곧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공격했다. 오는 1월 초 결선투표에서 조지아 상원의석 2석의 당선자가 결정된다. 조지아주는 전통적으로 공화당 지지자가 많은 '레드 스테이트'로 분류됐는데, 이번 대선에서는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 1만2000여표 차이로 승리했다.

▲트위터로 설전을 벌인 마저리 테일러 그린과 일한 오마. ⓒ트위터 갈무리

공화당 의원들이 오마 의원을 공격하고 나선 것은 1월에 있을 상원선거를 앞두고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1월 선거 결과에 따라 상원 다수당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3일 선거로 현재 민주당이 48석, 공화당이 50석인데, 조지아주 2석을 민주당이 모두 가져간다면 민주당 50석, 공화당 50석이 된다. 이럴 경우 상원의장을 겸하는 부통령이 민주당(카멀라 해리스)이므로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이 된다.

지난 11월 3일 선거 이후 트럼프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선거 불복'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최근 미국 내 백인인종주의가 여전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들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25만 명 이상의 미국인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지만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 유권자가 47.2%(7400만 표)나 됐다. 이번 대선은 역대 최고 투표율로 바이든이 600만 표를 더 얻어 승리하기는 했지만, 트럼프 역시 만만치 않은 득표를 했다. 트럼프가 '선거 불복'을 고집하며 백악관에서 물러나지 않은 듯한 태세를 보이는 것도 지지자들을 등에 업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이 공화당이 트럼프의 '선거 불복 쇼'에 책임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은근슬쩍 동조하거나 모른척 침묵하고 있는 것도 '7400만 표'를 의식해서다. 트럼프는 선거 직후 이번 선거에서 패하더라도 2024년 대선에 또 한번 도전할 것이라고 참모진들에게 직접 말했다고 한다.

바이든의 상대는 여전히 트럼프...공화당 중심엔 여전히 그가 있다

"백악관에 트럼프가 없는 상황에서 공화당이 어디로 갈 것인가. 전문가들이 전망이 엇갈리는데, 저는 트럼프가 공화당의 중심에 한동안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트럼프는 2024년에 다시 나올 것으로 이미 결심했다고 합니다. 트럼프가 만들어낸 정치세력의 중심은 2024년에도 여전히 트럼프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바이든이 내년 1월 20일 취임한 뒤에도 바이든의 정치적 상대는 트럼프가 될 것입니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Korean American Grassroots Conference) 대표는 22일 '섀도우캐비닛'(대표 김경미) 온라인 강연에서 향후 공화당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전망했다.

"현직 대통령이 재선을 도전하는 선거에서는 보통 대통령을 평가하는 표심이 지배적입니다. 근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캠페인은 2016년에 이어 이번에도 동일한 주장을, 동일한 방식으로 했고, 4년 전 지지자들의 일부만 이탈해서 승패가 갈렸습니다. 미국 전체 인구구성과 달리 유권자들 중 백인이 아직도 다수(70%)를 차지합니다. 이들 백인들의 다수는 미국을 '자신들의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트럼프는 이런 정서를 끊임없이 자극해서 정치적인 힘을 얻었고, 동시에 트럼프를 통해 이런 생각에 기반한 극우 인종주의 세력이 가시화되고 세를 불려나갈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지만 밋 롬니(유타), 수전 콜린스(메인), 리사 머우코스키(알래스카) 상원의원 등 합리적인 공화당 정치인들은 당내 소수로 남고 공화당 중심은 여전히 트럼프일 것입니다."

BLM, 미국의 핵심 모순은 빈곤 문제다

미국에서도 "사회주의자"라는 공격이 잘 먹힐 정도로 유권자 전반이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기대할 만한 흐름은 분명 존재한다. 2020년 대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이슈 중 하나가 '인종차별'이었다. 지난 5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여름 내내 인종차별 항의시위가 전국 각지에서 들불처럼 일어났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동참했다.

"올해 BLM(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이 크게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인종에 빈곤 이슈까지 결합됐기 때문입니다. 올해 코로나19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본 계층도 도시 빈곤층입니다. 이들의 분노가 BLM 운동에 결합됐고, 이번 대선판을 흔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이 민주당으로 모아질 수 있었던 것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덕분입니다.

샌더스를 포함해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AOC) 등 민주당 내 진보진영 의원들이 이번 대선 때는 매우 헌신적으로 바이든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또 바이든을 움직여 대선공약에 환경, 의료보험 등 핵심적인 정책들에 진보적인 입김을 집어넣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민주당 내 진보그룹이 다음 대선에서 집권을 하거나 당장 주류가 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현재의 변화는 2011년 있었던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에 영향을 받은 이들이 정치권으로 진출하면서 일어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AOC가 올해 민주당 내에서 후원금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다음으로 가장 많이 모았습니다. 그런데 이 돈이 다 '스몰머니'(유권자들의 소액 후원금)입니다. 이런 힘들이 모아져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프레시안(전홍기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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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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