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열 기자 | 2020-09-08 17:34:25 | 2020-09-08 21: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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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일과 삶을 사랑하던 '잘 노는' 여행작가 이동미 작가가 베를린 이야기를 꺼냈다. 이동미 작가의 책 <동미>(모비딕북스)가 출간됐다. 베를린 행을 계획했으나, 그 곳에서 만난 남자와 베를린에서 살 줄은 몰랐다는 48세 이 작가의 삶 속으로 인도한다.
이 작가는 요즘엔 보기 드물다는 '잡지쟁이' 출신이다. 컬처 매거진 <The Bling>과 영국의 글로벌 시티 라이프 매거진 <TIME OUT SEOUL>, <프라이데이 콤마>의 편집장을 거쳤다. 독일의 크리에이티브 그룹 플래툰 쿤스트할레 홍보 디렉터를 지냈다. <다시 베를린> <이태원 프리덤> <길 위의 내 집 게스트하우스> <싱가포르 홀리데이> 등의 여행서를 냈다.
여행 작가로서 첫사랑인 베를린에서 이 작가는 생각지도 못한 사랑을 만나 다 늦게, 갑자기, 그 도시에서 살게 됐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는 다 늦게, 갑자기, 베를린에서 살게 됐다. 거창한 계획도 없이, 베를린에서 만난 남자의 집으로 옮겨와 살고 있다."
이 작가는 그의 '인생 다음 챕터'를 베를린에서 시작하게 됐다. 베를린에서 한국식 치맥집 '꼬끼오'를 운영하는 친구와 함께 지내다 데이팅앱을 통해 만난 스벤이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급기야 베를린에서 살기 시작했다. 이 작가 표현을 빌리면 스벤은 '잘 노는' 자신과 달리 '잘 우는' 남자였다.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던 서로 다른 성격의 남녀가 베를린에서 만난 것만 해도 사건이다. 이 책은 이 작가의 베를린 살이를 담은 에세이다.
일반적인 여행 에세이는 아니다. 낯선 도시에서 낯설었던 사람과 사랑에 빠져 그와 함께 지낸 삶의 이야기를 담은만큼 이 작가는 에세이 제목을 자신의 이름인 <동미>로 정했다. 새로운 인생을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사람과 함께 시작하는 '이야기'에 집중하고자 한 것 같다.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매력도 빠지지 않는다. 여행작가로서 '첫사랑'인 도시라고 소개하는 이 작가는 스벤과 함께 베를린의 대규모 혼욕 사우나 '바발리',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에게 영감을 받은 칵테일 바 '베케츠 코프', 어둠 속에서 식사하는 다크 레스토랑 '노치 바구스' 등 "쿨한 회색빛 도시" 베를린의 곳곳을 소개한다.
인생의 첫 챕터를 끝낸 후 일상에 결핍을 느낄 30, 40 여성들은 물론 남성들에게서도 깊은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만 하다.
"여행을 많이 다녀서 이런 골목이 낯설진 않거든. 근데 출장으로 다닌 거라 가끔 연인이랑 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하지만 상상만 했지 가능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지. 남자를 만나는 건 이번 생엔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았거든. 근데 너랑 이렇게 아무도 없는 낯선 골목을 걷고 있으니, 갑자기 꿈만 같다. 남자친구와 처음 온 도시의 밤 골목을 걷고 있다니! 꿈이 이루어진 건가?!" 말을 하고 나니 감정이 더 벅차올랐다. 나는 스벤에게 뛰어오르듯 매달려 목을 감싸고 먼저 키스했다. 바렌에는 밤새 입맞추고 서 있어도 좋을 그런 골목이 있었다. _ '밤새 입 맞추고 싶은 바렌 골목' 중에서
그릇을 치우는 둥 마는 둥 놔두고 늦은 밤 마실을 나섰다. 캄캄한 공원을 가로지르고, 짧은 터널 밑을 지나고, 아무도 지나지 않는 나무 사이를 걷고 또 걸었다. 양파 냄새가 나는 입술로 잦은 입맞춤을 하고, 땀이 가득 찬 손바닥을 놓지 않고 오래오래 걸었다. 문득 이런 게 사랑인 건가 싶었다. _ '스벤이 해준 저녁식사, 케이제 슈페츨레' 중에서
우리는 돗자리를 깔고 엎드려 음악을 들으며 일을 하고 간간히 키스를 했다. 가끔은 키스를 주로 하고 일도 간간히 했다. 스벤은 티셔츠를 훌렁 벗은 지 오래다. 엎드려 있는 그의 엉덩이에 누워 스테레오 랩(Stereo Lab)의 노래를 듣는다. 후두둑 갑자기 내리는 비는 높은 나뭇잎들이 막아준다. 일을 핑계 삼아 오늘도 멍하니 공원에 누워 있다 갈 것이다. 저녁 7시가 넘자 사위는 더욱 고요하다. 음악과 바람, 나무로 둘러싸인 공원. “파라다이스가 따로 없군.”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_ ‘우리들의 은밀한 작업실, 라이제 파크’ 중에서
처음엔 그가 아프니 내가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주, 그의 말에 내가 위로받고 울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초반에 나는 자주 울음을 삼켰다. 감정을 숨겼다. 남자 앞에서 우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한참 사랑했을 땐 모든 걸 같이 공유한 것 같은데, 그게 언제였는지도 가물가물했다. 연애 따위 사랑 따위 잊고 산 지 오래였다. _ ‘나의 불안이 감기처럼 찾아온 것뿐이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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