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여성비하에도 끄떡없던 '테프론 트럼프', 군인 비하 발언은?

<애틀랜틱> 보도 일파만파...트럼프 "전사자는 패배자, 호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별명 중 하나가 '테프론(teflon)'이다. 테프론은 미국 듀폰사가 개발한 불소수지로 일상 생활에서는 음식물이 잘 달라붙지 않는 프라이팬 제품명으로 알려져 있다.

성추문, 인종차별 발언, 여성 비하 발언, 야당 정치인 폄훼 발언, 살균제 주사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비과학적 주장 등 트럼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이 온갖 '망언'에도 지지층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 상황을 비꼬는 말이다.

트럼프는 또 미국 역사상 세 번째로 하원에 의해 탄핵(소추) 당한 대통령이란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겼는 데도, 2020년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대선후보로 재신임 받는 것에 성공했다.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를 공식 선출하는 것이 올해 초부터 각 주별로 치러진 예비경선 결과에 기반한 요식행위에 가깝기 때문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수도 있지만, 트럼프는 지난달 24일 공화당 전당대회 첫날 대의원 2550명 '만장일치'로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이런 트럼프를 제대로 저격한 '폭탄급(bombshell) 보도'가 나왔다. 트럼프가 참전용사를 "패배자(lose)", "호구(sucker)"라고 비하했다고 시사주간지 <애틀랜틱>이 지난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은 애국주의를 중시하고, 군인, 특히 참전용사들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등 미군이 참전한 전쟁도 많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군인이 목숨을 잃거나 영구적인 장애를 입었다. 실제 참전용사(veteran)들에 대한 실제 보상 여부와는 별개로 전국민이 이들을 '영웅'으로 칭송하고, 이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다. (참전용사에 대한 연금 등 복지 혜택은 중요한 정치적 의제로 여겨지나 실제로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런데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 입에서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을 "패배자", 더 나아가 "호구"(미국인들 사이에서는 훨씬 더 심한 욕이다)라는 발언이 나왔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뉴스다. 또 이런 발언이 나온 맥락도 경악을 금치 못할 수준이다. <애틀랜틱>의 제프리 골든버그 기자는 이런 사실을 4명의 취재원으로부터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트럼프 "전사자는 패배자, 호구...매케인 의원-부시 전 대통령도 루저"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11월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을 때, 원래 인근의 미군 묘지를 방문하려고 했으나 취소했다. 당시 취소 이유에 대해 비가 내려 헬기 등 이동 수단이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트럼프는 빗길에 머리가 헝클어질 것을 우려해 방문을 거부했다고 한다. 트럼프는 방문 예정일 오전 고위 참모진들과 대화에서 "내가 왜 묘지에 가야 하나? 거기엔 패배자들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트럼프는 미국 전몰자를 추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또 다른 자리에서도 2차 세계대전 당시 목숨을 잃은 1800여 명의 해병대원들에 대해 "호구"라고 말했다고 한다.

<애틀랜틱>은 트럼프의 이런 발언이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군대와 참전용사에 대한 뿌리 깊은 '비하 의식'에 기반한 것임을 다른 사례를 통해 보여주려 했다. 트럼프는 베트남전 포로로 고문당하고 귀환한 미국의 대표적 전쟁영웅이자 공화당 정치인인 고(故) 존 매케인 상원의원도 "패배자"라고 비난한 적이 있다. 그는 2018년 매케인 의원 사망 소식을 참모진이 전하자 "그 패배자의 장례식은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앞서 트럼프는 2015년에도 매케인 의원이 베트남전에서 포로가 된 사실과 관련해 "그는 포로가 돼서 전쟁영웅 호칭을 얻었다"고 폄훼하면서 "나는 잡히지 않은, 패배자가 아닌 사람들이 좋다"고 발언한 바 있다고 <CNN>이 6일 당시 발언 영상을 바탕으로 보도했다.

트럼프는 또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비행기가 격추당한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조롱하는 발언을 했다고 <애틀랜틱>이 보도했다.

친 트럼프 매체인 <폭스뉴스>도 별도 확인 취재...트럼프 "베트남전 참전용사는 다 호구"

물론 트럼프와 백악관은 이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 "가짜뉴스"라고 즉각 부인하고 나섰다.

하지만 트럼프의 발언은 친 트럼프매체인 <폭스뉴스>에서도 별도의 확인 취재를 통해 보도하기도 했다. 이 방송사의 국가안보 담당기자인 제니퍼 그리핀은 4일 트럼프가 2018년 프랑스 방문 당시 미군 묘지에 왜 다녀와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폭스뉴스>는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에 대해 멍청한 전쟁이며, 참전한 사람은 누구든지 간에 호구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또 2017년 백악관에서 열린 독립기념일(7월4일) 관련 행사 계획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트럼프는 군사 퍼레이드와 관련해 "상이 군인은 보기에 좋지 않다. 미국인들은 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전투 참여로 부상당한 군인들은 퍼레이드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트럼프는 발끈하며 자신의 트위터에 "그리핀은 해고돼야 한다. 폭스뉴스는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애틀랜틱> 보도 후 만 하루가 지나자 <MSNBC>,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주요 언론도 <애틀랜틱> 보도 내용의 핵심 정황(프랑스 방문 당시 미군 묘지 방문을 트럼프가 반대했다)에 대해 확인 취재해 보도했다. 또 트럼프가 과거 참전용사나 상이군인 등을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발언들에 대해서도 보도했다.

트럼프는 한 참모진들에게 미국 정부가 실종 군인의 유해를 찾는 일과 관련해, 실종은 자신들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마땅히 개인의 책임인데 왜 정부가 이런 일에 관여하는지 이해햘 수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WP 보도)

또 트럼프는 2017년 당시 비서실장인 존 켈리와 함께 '전몰장병 추모일'에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해, 국립묘지에 묻힌 켈리 비서실장의 아들의 묘지 앞에서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이게 그들에게 대체 무슨 의미인가"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AP 보도)

이처럼 트럼프의 '군 비하, 조롱' 발언 보도가 쏟아지는 것에 대해 <MSNBC>는 6일 "트럼프와 백악관은 <애틀랜틱> 보도를 부인하고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을 트럼프 자신이 이미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군인 출신 장남 내세워 맹공...애국심 중시하는 보수 표심에 영향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애국심을 중요시하는 보수 지지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설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당장 참전용사들의 권익을 위한 비영리단체인 '보트벳츠'(VoteVets)는 5일 "군 통수권자에게서 나온 지독한 발언"이라는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 참전용사와 그 가족 등이 트럼프 발언에 배신감을 표하는 게시물들도 잇따랐다.

2015년 암으로 사망한 장남(보 바이든)이 이라크전 참전용사인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도 "내 아들은 호구가 아니었다"며 맹공에 나섰다. 바이든은 "아프가니스탄에 자식을 보냈던 사람들은 기분이 어떻겠나. 아들을, 딸을, 남편을, 아내를 잃은 이들은 어떻겠나"라며 "역겨운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트럼프는 모든 군 가족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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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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