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 민족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선

[시민정치시평] 코로나19와 지식 생산체제의 대전환 : 독점에서 협력으로

코로나19 종식은 치료제와 백신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동안 제약 분야는 승자독식의 시장 방식으로 개발되었다. 경쟁에 이긴 제약사가 '지적재산권'(주로 특허권)을 통해 시장을 독점하는 방식이었다. 개발된 의약품의 생산과 분배도 독점권자가 통제했다. 그래서 필요한 사람에게 지불가능한 가격으로 의약품이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이윤이 확보되는 방식으로 의약품이 생산되고 분배되었다. 코로나19는 이러한 독점 방식에 균열을 냈다. 독점을 향한 경쟁이 아니라 협력 방식이 치료제와 백신 개발과 생산체제의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다.

협력 방식은 여러 곳에서 추진되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추진하는 3가지 프로그램이다. 첫째, 연대 방식의 임상시험(Solidarity Trial) 프로그램으로 3월 18일 시작되었다. 여기에는 서로 다른 방법론을 사용한 여러 임상시험을 따로 진행하는 것보다 과정과 결과를 공유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란 전제가 깔려있다. 둘째,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보건 기술과 관련된 지식, 지적재산, 데이터를 한데 모아 공동으로 관리하는 프로그램으로 C-TAP(COVID-19 Technology Access Pool)으로 불린다. 기술의 독점보다는 기술의 본래 성격에 맞게 공공재로 관리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는 점에서 연대 방식의 임상시험과 일맥상통한다. 셋째, 코로나19 진단, 치료, 백신의 개발·생산·공평한 이용을 가속화하기 위한 글로벌 협력 프로그램으로 ACT-A (Access to COVID-19 Tools (ACT) Accelerator)로 불린다. ACT-A에는 세계보건기구,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프랑스, 게이츠 재단 등이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CEPI(감염병대비혁신연합), Gavi(세계백신면역연합), UNITAID(국제의약품구매기구)를 비롯해 IFPMA(국제제약협회연합)과 IGBA(국제 제네릭 및 바이오시밀러 의약품 협회)도 협력 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다.

WHO 외에도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주도하는 민관 협력 방식의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연구 프로그램인 ACTIV(Accelerating COVID-19 Therapeutic Interventions and Vaccines)가 있다. 민간이 주도하는 프로그램으로는 공익단체(Creative Commons)와 학계(스탠퍼드 법과대학과 아메리칸 대학) 주도로 IT 기업(인텔, 페이스북, 아마존, IBM,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주로 참여하는 지재권 무상이용 프로그램(Open COVID Pledge)과 미국 3개 대학(스탠포드, 하버드, MIT)이 시작하여 수십 개 대학으로 확대된 지재권 무상이용 프로그램(COVID-19 Technology Access Framework)이 있다.

기존의 경쟁 방식이 아닌 협력 방식이 강력한 대안으로 등장하는 현상은 지적재산권 제도의 근간이 되는 유인이론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지재권이 보장하는 독점 이윤을 노리고 기술 혁신을 도모한다는 유인이론을 코로나19 위기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면 독점의 크기를 키워서 기술 혁신의 속도를 높여야 하지만, 누구도 이런 제안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협력 방식을 통해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더 나아가 독점 방식을 대체할 기술지식의 생산체제 전환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먼저, 치료제 확보 경쟁을 촉발한 자국우선주의와 백신 민족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국제무대에서 강력한 행위자인 미국과 서유럽 국가가 자국우선주의를 주도한다는 점에서 해법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WHO나 유엔인권기구를 포함한 국제기구를 통한 해법과 시민사회의 정치적 압력을 통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자국우선주의는 자원의 희소성 때문에 생기는데,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되면 생산량을 충분히 늘려 자원의 희소성을 소멸시켜 자국우선주의를 일시적 현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치료제와 백신의 특허 독점을 없애 충분한 생산량을 확보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특허 독점을 그대로 인정한 다음 특허 기술의 이용허락에 기대는 방식보다는 백신의 글로벌 공공재 운동이나 국경없는의사회(MSF)의 주장처럼 코로나19 대응 기술에는 특허권 취득을 위한 신청도 하지 말고, 신청이 있더라도 정부는 특허권을 부여하지 않는 방식이 더 낫다.

지식 생산체제의 전환을 위해서는 특허에 의존하지 않은 기술 개발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특허 제도는 독점권을 주지 않으면 기술 개발이 일어나지 않는 일종의 시장실패를 보정하기 위한 제도다. 전환을 위해서는 시장실패가 발생하지 않는 영역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영역이 공공연구와 상아탑 연구다. 이들 영역의 연구성과에 대해 특허권 취득을 의무화한 현행 법률('지식재산기본법')부터 고쳐야 한다. 1955년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소크 박사가 백신에 특허는 없다고 얘기한 것은 개인의 철학이 아니라 당시의 제도가 그랬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연방정부의 자금을 받아 의과대학 연구원이었던 소크 박사는 특허를 자신이나 자신의 연구기관 명의로 특허를 낼 수 없었다. 이런 방식을 확대해야 소아마비가 퇴치된 것처럼 질병의 퇴치를 앞당길 수 있다. WHO 총회에서 코로나19 백신의 글로벌 공공재를 주장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실천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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