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님, 독립운동가 후손의 응어리진 한을 풀어주십시오.”
경남 하동군 악양면에 거주하는 재야사학자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소장이 광복 75주년을 맞아 의령군 출신 3·1독립운동가 박재선(朴載善·1888∼1951·부림면) 선생 등 6명에 대한 서훈을 청와대에 청원했다.
정재상 소장은 국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독립운동가 박재선 선생의 독립유공 서훈을 위해 선생의 며느리인 정옥이(87·창원시 마산합포구)씨의 요청으로 후손을 대신해 의령군 신반리 3·1만세운동 주동인사 6명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께 청원서를 올렸다고 3일 밝혔다.
이같은 청원은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가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독립운동가를 발굴한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박재선 선생의 며느리 정옥이 씨가 윤상기 하동군수와 정재상 소장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면서 이뤄졌다.
정 소장은 청원서에서 “의령군 출신 박재선 선생은 100년 전 일제의 침탈에 항거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몸을 던졌다”며 “3·1운동 101주년이 지나고 광복 75주년을 맞은 이 시점에도 아직 독립운동가의 예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분이 있어 그 사연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선생과 함께 활동하다 징역 10월을 치른 정주성(鄭周成), 징역 6월 김용구(金容九)·이동호(李東浩), 태형 90대를 받은 최영열(崔永烈)·박우백(朴又伯) 선생도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줄 것을 청원했다.
정 소장은 “선생의 며느리 정옥이 씨는 시아버지의 명예를 찾아드리지 못해 한평생을 죄인처럼 자책하며 괴로워하고 있다”며 “한 노파의 절규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며느리인 정옥이 씨의 사연을 전하니 반드시 서훈이 이뤄지길 소원한다”고 했다.
정옥이 씨는 청원서에서 “합천군 삼가면에서 의령군 부림면 신반리의 박 씨 집안으로 시집갔으나 당시 시아버지(박재선)는 거동이 불편해 홀로 몸을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였는데, 이는 일제에게 당한 태형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삼일운동사(국가보훈처 전자사료관)’와 ‘의령군지’ 등에 의하면, 박재선 선생은 1919년 3월 15일 의령군 신반리 장터에서 정주성, 황상환, 최한규, 장용환, 김용구, 이동호, 최영열, 박우백 등과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검거돼 태형 60대를 선고 받았다.
하지만 선생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함께했던 이들 중 최한규(건국훈장)·황상환(대통령표창)·장용환(대통령표창) 선생 3명만 독립유공자로 인정됐다.
정옥이 씨는 시아버지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게 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녔다. 의령군과 의령문화원으로부터 받은 ‘3·1운동 참여확인서’, 선생의 이름이 기록된 ‘의령군 신반리 기미 3·1독립운동기념비’ 등 자료를 모아 국가보훈처에 제출했지만 허사였다. 당시 기록이 부재하다는 게 답변이다.
한편 정 씨는 “시집온 뒤 시아버님이 ‘네 재산이다’라며 한 보따리를 주셨는데, 그 안에 당시 만세운동을 위해 자금을 댔던 자료와 백범 김구 선생과 찍은 사진이 들어 있었으나 남편을 여의고 이리저리 이사를 다니다가 그만 잃어버렸다”고 자책했다.
정재상 소장은 청원과 관련 “박재선 선생 등 6명의 독립지사에 대한 명예회복을 위해 독립운동 자료를 수집해 대통령께 청원했다”며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응어리진 한이 풀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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