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신고가 기가막혀' 설립신고만 100일 넘게 걸리는 나라

30일 라이더유니온, 노조 설립 신고...노동계 "법률에 특고 노조 권리 명시해야"

대리운전기사노조 428일,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조 코디코닥지부 103일, 한국마사회기수노조 118일.

올해 들어 고용노동부가 노동조합 설립 신고를 받아들인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조합과 신고가 받아들여지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아직 신고 절차를 진행 중인 노동조합도 있다. 작년 9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노조 설립 신고서를 낸 전국보험설계사노동조합이 대표적이다. 30일에는 배달기사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도 노동부에 노동조합 설립을 신고했다.

법적으로 노동조합 설립은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어 고용노동부나 지방자치단체에 설립을 신고하면 행정기관은 서류 누락이 없는 한 3일 안에 신고를 승인해야 한다.

그런데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조합 설립 신고에는 100일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노동부가 설립 신고를 받아들여도 회사가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다시 수년 동안 법정공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 사이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린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가 법률에 명시되지 않아 생기는 문제다. 관련 법을 개정해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조합 설립 신고를 둘러싼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과 갈등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라이더유니온 회원들이 30일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노조설립신고 제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고노동자 노조 활동, 설립 신고에 몇 백일, 법정 공방에 또 수년

대리운전기사, 배달기사,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등 특수고용노동자는 사용자의 지휘 감독을 받으며 노동자처럼 일하지만 형식적으로는 근로계약이 아닌 사업계약을 맺고 일한다. 일차적인 법적 신분은 개인사업자인 셈이다.

노동조합법은 노동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받는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특수고용노동자는 계약서상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노동조합 활동을 하려면 행정관청에 자신들이 사용자의 지휘 감독을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라는 사실을 따로 입증해야 한다.

여기에 긴 기간이 소요된다. 지난 20일 노동부의 설립 신고 승인을 받은 대리운전노조는 작년 5월 노조 설립 신고를 한 뒤 2개월 동안 노동부의 노동실태 실사와 수차례에 걸친 서류 보완 요구를 받았다. 이 과정이 모두 끝난 뒤에도 신고필증을 받기까지 다시 1년여를 기다려야 했다.

설립 신고가 승인됐다고 바로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회사가 끝까지 노동자성을 부정하면 몇 년에 걸친 법정공방이 이어지기도 한다.

김주환 대리운전노조 위원장은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노동조합 설립 신고필증 교부 이후에도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문제 삼으며 교섭에 나오지 않는 업체가 있다"며 "이들은 어차피 질 거 알지만 대법원까지 갈 거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 사이에 대리운전기사들이 지쳐 나가떨어지길 기다리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22일부터 '법률에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명시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노동조합 설립신고증은 휴짓조각에 불과하다'며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관련 법 개정 등 요구를 걸고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재능교육 학습지교사들은 대리운전기사들과 비슷한 일을 앞서 겪었다. 1999년부터 학습지교사들과 노동조합을 통해 단체협약을 맺었던 재능교육은 2007년 교사들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며 단체협약을 해지했다. 2010년에는 학습지교사들을 계약해지 형태로 해고했다.

이후 재능교육 학습지교사들은 대법원에서 승소한 2018년까지 9년여에 걸쳐 자신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해달라는 소송을 벌여야 했다. 그 기간 해고된 학습지교사들은 복직을 요구하며 6년여 간 거리에서 농성을 하기도 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구몬, 대교 등 다른 학습지회사는 지금도 학습지교사의 노동자성을 부정하고 있다. 단체교섭을 하려면 또다시 대법원 판결을 받아오라는 식이다.

▲ 서울고용노동청 앞에 쳐진 대리운전노조 천막. 이들은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노조할 권리 보장, 고용보험 전면 적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대리운전노조

정부, 여당은 약속대로 특고노동자 노조할 권리 보장해야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었다. 여당의 법률 발의도 있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다른 자의 업무를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그로부터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자'를 노조법상 노동자로 정해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자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지난 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정부의 ILO 핵심협약 비준안의 노동조합법 개정안에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가 포함되지 않았다.

노동계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대선에서 약속한대로 관련 법을 개정해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 위원장은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든 대리기사 입장에서는 노동조합을 만든 뒤 회사가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버틸 때 5년, 10년에 걸쳐 법정대응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가 법에 명시되지 않아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직종의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도 그런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민희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장은 "노동법에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했다면, 회사의 일방적인 단체협약 해지나 부당해고, 6년간의 거리 농성은 안 겪어도 됐을 것"이라며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조법 2조를 개정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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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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