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간호사 등 보건의료분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덕분에’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간호사들의 노동환경은 바뀌지 않고 여전히 인력부족과 괴롭힘으로 고통 받고 있다. 작년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발효됐으나 간호사들이 일하는 현장은 바뀌지 않았다. 또한 서울시는 서울의료원에서 직장내괴롭힘으로 사망한 고 서지윤간호사에 대한 진상조사와 대책안을 권고했으나 이 또한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 않다. 이에 서울의료원 직장내괴롭힘에 의한 고 서지윤간호사사망사건 시민대책위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행동하는간호사회가 공동으로 병원현장에서 간호사들이 체감하는 직장 내 괴롭힘의 실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변화 방향을 담은 글은 6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벌써 고 박선욱 간호사가 떠나간 지 2년하고 5개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고 박선욱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 날 이후,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소위 ‘태움’이라 불리는 병원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졌고, 보건복지부에 의해서 교육전담간호사 지원사업이 진행되었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었습니다. 이런 변화들은 간호사들의 현실을 바꿀 수 있었을까요?
여전히 변화 없는 병원현장, 죽어가는 노동자들
아쉽게도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병원 내 괴롭힘이 알려지면 개인 간의 문제로 좁혀지고, 교육전담간호사제도가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신규간호사들은 부족한 교육과 살인적인 업무량에 사직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의료연대본부와 행동하는 간호사회가 조사한 <직장 내 괴롭힘금지법 1주년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노동조합이 없는 병원의 경우에는 77%가 ‘변화가 없다’라고 응답하였으며, ‘안전하지 않다’는 응답자 역시 76%나 되었습니다.
고 박선욱 간호사가 떠난 이후에도 알려지지 않은 간호사들의 죽음이 이어졌습니다. 서울의료원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사망한 고 서지윤 간호사 이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간호사들의 죽음이 있었고 대부분의 죽음은 진상규명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병원 현장은 간호사들의 눈물과 고통으로 하루하루 흘러가고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의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고 박선욱 간호사와 고 서지윤 간호사를 죽음으로 몰고 가거나 퇴사를 고민하게 되는 이유인 직장 내 괴롭힘의 구조적 문제는 무엇일까요?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표면적으로 보면 신규간호사와 경력간호사 사이에 개인적인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고 그 문제를 병원이 해결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서 구조적인 문제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완전히 다릅니다. 신규 간호사에 대한 교육도 아무런 대가 없이 도맡아서 하고 일당백으로 일하는 경력간호사를 계속 일하게 하는 것이 병원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값싼 신규간호사를 계속 붙들어 두는 것도 비용 절감을 위해서 병원에게 꼭 필요한 일입니다. 경력간호사와 신규간호사를 충분히 배치하고 업무분담을 분명히 하면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력은 부족합니다. 정부 통계로도 간호인력은 인구 1000명당 7.2명으로 OECD 평균(8.9명)보다 1.7명 적습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열악한 인력/과중한 업무로 인해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괴롭힘 해결 주체인 병원은 쉬지 않고 돌리기에 급급한 공장과 같습니다. 병원을 돌리기 위해 그 누구도 처벌하지 않거나 가해자를 피해자와 분리하지 않습니다. 병원 내 구조를 바꾸지 않고 가해자 몇명의 잘못으로만 몰아가며 계속 일하게 하는 것입니다. 인력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간호사들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계속 벌어질 것입니다.
아직도 사과하지 않는 서울아산병원
편의상 짧게 부르고 있는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공동대책위의 정식 이름은 <故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입니다.
작년 3월, 고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은 업무상 사유에 의한 산업재해라고 판정되면서 공대위의 세가지 요구 중 하나인 산재인정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이외의 요구인 진상규명 그리고 재발방지는 아직도 제자리걸음입니다.
어떻게 보면 서울아산병원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해결만 요구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겠지만, 이 사건의 해결은 우리나라 전체 간호사들의,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권과 연결된 것이기도 합니다. 국내 최고의 병원이라 자부하는 서울아산병원에서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하는 상징은 엄청난 것입니다.
이것이 보여주는 바는 명확합니다. 간호사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대형병원들조차 간호사들이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조건으로 그들을 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서울아산병원은 고인과 유가족에게 사과조차 하고 있지 않으며 고 박선욱 공대위와 유가족이 몇 차례 면담요청을 하였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그리고 민사소송 중인 지금도, 여전히 서울아산병원은 해당 사건은 개인의 문제이고 병원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고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이 병원 내 괴롭힘 문제를 알려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줄이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문제 해결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도 많은 공감대를 얻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서울아산병원이 고인의 죽음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하고 해당 사건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기를 다시 한번 요구합니다. 우리는 더이상 간호사들의 희생을 바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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