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는 농사만 짓는다? 농촌의 진짜 잠재력!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OECD 저밀도 경제(low density economy) 논의와 농촌의 잠재력

산업화 과정에서 농업이 국가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했으며, 대도시 및 주요 국가산업 거점이 성장하는 가운데 농촌은 안정적인 식량 생산의 공간으로 그 역할이 제한되어 왔다.

농공단지를 조성하는 등 농촌의 산업 구조를 다각화하기 위한 노력들이 추진되었으나,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농촌의 쇠퇴를 막기엔 한계가 있었다. 일자리 감소-인구 과소화‧고령화-기초‧생활서비스 수요 감소로 이어지는 농촌의 낙후와 쇠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경험한 사회 문제들이다.

그런데, 최근 OECD는 여러 회원국들의 사례들로부터 농촌이 농업 외에도 다양한 산업이 성장함으로써 통해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잠재력을 가진 공간이라는 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OECD는 2000년대 중반 금융위기 이후 각국들의 경제회복을 견인한 지역은 대도시나 첨단산업 집적지와 같은 기존의 핵심지역이 아니라 농촌을 비롯한 주변부 지역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저밀도 경제(low-density economy)' 논의를 촉발시켰다.

일반적으로 농촌 지역은 생산과 고용이 감소하는 것으로 여겨졌으나, 특정 농촌 지역에서 1인당 총생산과 고용이 증가했다. OECD 회원국 중 23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OECD 지역 구분 중 우리나라 광역자치단체 구분에 해당하는 TL3 기준으로 살펴봤을 때 농촌을 포함한 저밀도지역이 해당 국가가 창출한 전체 부의 43%를 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OECD 각 회원국에서 저밀도‧농촌 지역이 차지하는 기존 인구·경제 비중을 고려할 때 높은 수치이다.

저밀도‧농촌지역임에도 산업이 성장하고 생산성이 향상되는 지역은 다음과 같은 산업 전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핀란드 북부지역은 농림어업, 식품, 목재‧펄프 제조 등 일차산업과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의 저밀도 지역이지만, 최근 핀란드 정부의 새로운 바이오산업 육성 정책 결과로 바이오소재, 의약품 제조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이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 렌(Rennes) 지역은 도시와 농촌 지자체 간 공식적인 협력관계를 맺고, 도시의 수요와 농촌의 생산 영역을 연계한 로컬푸드 활성화, 고부가가치 식품산업 육성으로 도‧농 상생 발전을 이루어냈다.

아일랜드 최남단 지역인 스키베른시는 ICT 인프라 구축으로 도시와의 접근성을 향상하여, 창업 기업들을 위한 거점 공간을 조성하고 농촌 지역에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다양한 창업 기업을 육성함으로써 지역 경제의 활력을 높이고 있다.

언급한 사례처럼 저밀도‧농촌 지역임에도 산업 성장이 가능한 배경은 글로벌 가치사슬이 공간적으로 보다 분화되고 제품‧서비스별 시장 수요가 다변화되는 가운데, 교통‧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에 따라 농촌과 핵심지역 간의 접근성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OECD는 언급한 지역들을 포함해 새롭게 산업이 성장하는 여러 사례들로부터 저밀도 경제 성장의 공통적인 특징을 제시했다. 다른 지역 특히 도시 등 핵심 지역이 보유할 수 없고, 지리적으로 이동 불가능한 농촌의 자원과 자산에 기반하여 지역 산업의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농림어업과 천연 자원 외에도 농촌이 보유한 문화유산, 기존 산업의 자산 등을 활용하여 고유한 재화나 서비스를 창출하는 등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각 농촌지역에 맞는 틈새시장(niche market)의 발견이 강조된다.

아울러 불리한 농촌 지역의 입지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도시 및 핵심 지역과의 기능적 연계를 효과적으로 형성하는 것 또한 중요한 특징이다. OECD는 이를 '차용된 집적 효과(borrowed agglomeration effect)'로 명명하고, 단순히 도시‧시장과의 물리적인 접근성 향상에 따른 생산 비용 상의 이익뿐만 아니라 인력 및 지식의 이동과 교환, 혁신의 확산 등 여러 부문에서 형성되는 도시와의 연계가 농촌의 경제적 기회를 확대하는데 기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최근 통계자료와 여러 지역의 사례들은 우리나라 농촌에서도 OECD의 저밀도 경제 성장에 해당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총생산이나 1인당 지역총생산 수치 모두 농촌 지역의 증가율이 도시 지역의 증가율을 상회한다. 제조업을 비롯한 사업체수 종사자 수 증가율 또한 농촌에서 보다 높게 나타난다. 우려와는 달리 농촌에서 증가하는 산업 다수는 국가적으로 성장 추세에 있는 산업이며, 기술적으로도 다양한 층위의 산업 모두를 포함한다.

▲ 그래프. 기술 수준에 따른 제조업 유형별 사업체·종사자 수 증가율 (2007~2016) ⓒ정도채 외 (2019)

미분양 농공단지를 활용하여 농식품 가공과 체험, 휴양을 위한 복합단지를 조성하고, 일자리 창출과 지역 활성화에 기여한 전남 구례의 자연드림파크, 원격지역이라는 지리적 불리함을 역으로 활용하여 농생명 바이오산업과 백신산업을 동시에 육성하고 있는 안동 및 경상북도 북부 지역, 그리고 수산물 가공업으로 시작하여 해양바이오·의료산업을 육성해오고 있는 강릉 및 주변 지역 모두 농촌을 비롯한 주변부 지역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들 지역은 기존 국가 산업거점과 발전 축에 속해있지는 않지만, 농촌이 강점을 보일 수 있는 농림어업, 농촌융복합산업(농식품 가공, 체험)관련 산업 기반에서 출발하여 효과적으로 지역 산업을 육성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농촌의 잠재력을 활용하여 국가 성장 동력산업을 육성하고 낙후된 지역의 활력을 도모하는 것은 국가균형발전 정책 차원에서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과제다. 물론 과거에도 농업‧농촌의 자원을 활용하여 산업 육성과 지역 활성화를 꾀한 여러 시도들이 있었으나, 여러 이유로 제한된 성과만을 창출했다.

농촌은 코로나 19 확산 이후 여러 측면에서 그 잠재력을 재평가 받을 가능성이 높다. 비대면 경제구조와 저밀도 생활방식이 확산되고, 기존산업 부문과 도시의 고용 충격을 완화할 필요성이 증가하면서 대안적 공간으로서 농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OECD 저밀도 경제 논의에서 제시한 다음과 같은 전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업가 정신에 입각하여 각 농촌 지역의 특성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순히 특화도가 높거나 양적으로 풍부한 지역 자원을 관성적으로 활용하는 기존의 농촌산업 육성 전략을 지양하고, 철저하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제품, 서비스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농산물 가공 등 전통적인 농촌산업 영역 외에도 농촌이 보유한 문화‧역사‧환경‧경관 등 다양한 지역 자원을 활용한 산업 부문으로 농촌산업 육성 대상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농촌이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 층위의 지역 간 연계‧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농촌의 불리한 여건을 인정하고, 자원, 인력 지식의 실질적인 흐름을 반영한 도‧농 간 연계를 활성화하며 행정구역을 넘어서는 농촌산업권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전라북도 남원시‧순창군‧임실군의 협력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세 지자체는 각 지역이 보유한 인프라와 자원을 활용하여 기존 컨벤션 산업과는 차별화한 농촌형 MICE 산업을 함께 육성해오고 있다. 농촌의 특화자원을 활용한 기업세미나, 전시행사 등을 유치하고, 기존 특화 산업 육성을 통해 조성된 세 지자체의 인프라와 주변 관광지를 연계한 연수‧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 순창군과 남원시, 임실군이 지난 2017년 7월 14일 농촌특화자원활용 MOCE 산업 육성사업 일환으로 서울 창동 하나로유통센터에서 농산물 판촉행사를 진행했다. ⓒ순창군

그리고 기업과 인력을 농촌으로 유입하기 위한 여러 정책의 통합적 추진이 중요하다. 구례 자연드림파크가 농촌융복합산업의 거점으로 성장하고, 종사자들이 구례군으로 이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자리 뿐만 아니라 양질의 주택, 교육, 보건, 문화‧여가 시설들이 함께 입지했기 때문이다. 농촌은 아직까지 도시에 비해 정주환경이 열악하고, 기업 지원 서비스가 발달하지 못했다. 농촌산업 육성 시 기존의 산업 육성 정책 수단뿐만 아니라 주거, 문화, 보건 등 다양한 지역 정책 수단들이 통합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 정도채 연구위원은 서울대 지리학과에서 지리학 박사 학위(경제지리학)를 취득했으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삶의질정책연구센터에 재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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